‘탈원전 백지화‘를 앞세운 윤석열 후보의 당선으로 지난 5년간 쪼그라든 국내 원전 산업에 다시 활기가 돌고 있다. 원전 업계와 관련 학계는 윤 당선인의 원전 강국 재건 공약을 반기며 기대에 찬 모습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지역사회의 극심한 반발로 제자리걸음 중인 사용후핵연료 처리 문제를 차기 정부가 어떻게 풀어나갈지 주시하고 있다. 더 많은 원전이 돌기 시작하면 핵폐기물도 그만큼 쌓일 수밖에 없어서다.

대선 후보 시절 윤 당선인은 사용후핵연료 처리에 ‘파이로프로세싱’을 적용하겠다고 했다. 파이로프로세싱은 핵폐기물의 독성을 무력화하거나 보관 기간을 크게 단축할 수 있는 신기술이다. 그러나 이 기술은 아직 연구 단계에 머물러 있다. 새 정부가 파이로프로세싱 연구와는 별개로 핵폐기물 저장소 확보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경북 울진군 신한울 3·4호기 건설 중단 현장에서 관계자의 설명을 듣고 있다. / 연합뉴스

◇ 산업부, 대통령 인수위에 핵폐기물 현황 보고 예정

13일 정부·정치권 등에 따르면 에너지 주무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윤석열 당선인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를 꾸리는 대로 사용후핵연료 영구처분시설 부지 선정 계획을 보고하고,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 국회 통과의 필요성을 전달할 방침이다.

산업부는 지난해 12월 7일 ‘제2차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을 행정 예고한 이후 이해관계자·전문가·지역사회를 대상으로 토론회를 개최하며 사용후핵연료 저장 부지 선정을 위한 절차를 밟아왔다. 그러나 기본계획 추진을 위한 특별법이 정권 교체기와 맞물려 국회 계류 중인데다 시설에 대한 지역사회의 반발도 커 난항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부에 따르면 정부는 부지 선정 절차에 착수하고 37년 이내에 사용후핵연료 영구처분시설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37년 중 초반 13년은 조사 계획 수립과 부지 확정에 필요한 시간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뒤의 24년은 기술적인 부분이 크다”며 “결국 전반부의 13년 내에 부지를 선정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했다.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 방호복을 입은 연구원들이 로봇팔로 사용후핵연료 재활용 실험을 하고 있다. / 한국원자력연구원

◇ 9년 후 한빛 원전 핵폐기물 저장고 포화

사용후핵연료는 원전에서 사용하고 남은 폐연료봉이다. 엄청난 방사능과 열을 내뿜는다. 자연 상태로 돌아가려면 약 10만 년이 지나야 한다. 정부는 처치 곤란인 폐연료봉을 지하 깊숙이 묻어 영구 보관하기 위해 2013년 10월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공론화위원회는 박근혜 정부 시절이던 2016년 7월 1차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을 내놨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지역 주민과 시민사회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았다”며 재검토위원회를 꾸렸다.

재검토위가 작년 4월 정부에 제출한 권고안의 핵심은 ‘특별법을 만들어 부지 선정 절차를 법제화하라’는 것과 ‘독립 행정위원회를 신설해 정책 총괄을 맡겨라’라는 것이다. 산업부는 재검토위가 권고한 내용을 2차 기본계획에 모두 담았다. 하지만 권고를 제외한 나머지 로드맵은 박근혜 정부 시절 만든 1차 계획안과 대동소이했다. 5년 동안 크게 전진하지 못한 셈이다.

그 사이 원전 내 임시 저장시설에는 핵폐기물이 쌓여갔다. 한국방사성폐기물학회에 따르면 국내 원전 내 마련된 사용후핵연료 임시 저장소는 오는 2031년 영광 한빛 원전을 시작으로 순차적으로 포화할 전망이다. 지난해 기준 한빛 원전의 포화율은 74.2%다. 고리 원전도 2031년이면 저장 공간이 다 찬다. 이어 한울 원전 2032년, 신월성 원전 2044년, 새울 원전 2066년 등의 순이다.

월성 원전 단지 내부에 조성된 사용후핵연료 건식 저장 설비. / 월성 원자력본부

◇ “파이로프로세싱은 연구 단계…저장소 확보 시급”

윤 당선인도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대선 후보 시절 그는 핵폐기물 처리 방법으로 파이로프로세싱을 언급한 바 있다. 윤 당선인과 단일화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도 같은 공약을 제시했다. 안 대표는 “한·미 원자력 협력을 강화해 평화적인 사용후핵연료 재활용 기술(파이로프로세싱)로 핵폐기물 포화 상태를 해소하겠다”고 했다.

파이로는 사용후핵연료를 전기분해해 산소를 없애고 금속으로 되돌리는 ‘전해환원’, 이 중 재사용 가능한 금속 우라늄을 얻는 ‘전해정련’, 재사용 불가능한 잔여 우라늄과 초우라늄을 분리해 태워 없애기 위한 ‘전해제련’ 등으로 구성된다. 한국원자력연구원에 따르면, 파이로 과정을 거칠 경우 고독성·장반감기 물질은 바로 타 없어지거나 독성과 반감기가 줄어든다. 최종적으로 사용후핵연료의 95%를 재사용·연소 과정으로 없앨 수 있고, 나머지 5%도 보관 기간을 기존 10만 년 대비 300분의 1 수준인 300년으로 줄일 수 있다.

문제는 한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에서 파이로프로세싱 연구를 지난 수십 년간 이어왔으나 아직 상용화에 성공한 사례는 없다는 점이다. 방사성폐기물학회 관계자는 “차기 정부가 파이로프로세싱 도입을 추진하더라도 그와 별개로 핵폐기물 저장 공간 확보 노력을 기울여야 지속 가능한 원전 정책을 펼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