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제20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문재인 정부의 상징과 같은 ‘탈원전’ 정책은 동력을 상실할 예정이다. 윤 당선인이 ‘탈원전 백지화와 원전 최강국 건설’ 공약을 들고 나왔기 때문이다. 문 정부가 전국의 산·들판·건물 등에 태양광 패널을 깔면서 공격적으로 추진해온 신재생 에너지 전환도 속도 조절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에너지 정책 수립의 핵심은 사회적 비용 최소화와 에너지의 안정적 공급에 있다며, 그런 측면에서 윤 당선인의 탈원전 백지화 약속은 ‘비정상의 정상화’로 볼 수 있다고 했다. 지난 5년간 쑥대밭이 된 원전 산업 생태계 복원도 윤 당선인 앞에 놓인 과제다. 이미 많은 기술자가 직업을 바꾸거나 외국으로 나간 상황에서, 윤 당선인은 추가 인력 유출을 막고 망가진 인재 육성 시스템을 복구해야 하는 숙제를 안았다.

윤석열 당선인이 지난해 12월 29일 경북 울진군 신한울 3·4호기 건설 중단 현장을 방문해 탈원전 정책 전면 재검토와 신한울 3·4호기 건설 즉각 재개 등의 원자력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 신고리 4호기 단 하나 가동한 文정부

문재인 대통령은 임기 내내 탈원전을 밀어붙였다. 그는 취임 초기인 2017년 6월 19일 부산에서 열린 ‘고리 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 참석해 “탈원전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라며 “원전 정책을 전면 재검토해 원전 중심의 발전 정책을 폐기하고 탈핵 시대로 가겠다”고 선언했다. 문 대통령은 “준비 중인 신규 원전 건설 계획을 전면 백지화하고 원전의 설계 수명을 연장하지 않겠다”고도 했다.

그 결과 문 대통령 임기 중 신규 가동한 원전은 신고리 4호기 하나에 불과하다. 당초 2017년 4월부터 상업 운전에 착수하려던 신한울 1호기는 정부가 기자재 수급 문제와 안전성 평가 등을 이유로 지금까지 시운전 중이고, 신고리 5·6호기도 사회적 공론화를 핑계로 건설을 중단했다. 월성 1호기는 예정보다 3년 앞선 2019년 12월 영구 정지했다.

문 대통령은 석탄 발전도 감축하겠다고 했다. 2016년 기준 원자력과 석탄의 전력 생산 비중은 각각 30.7%·39.3%였는데, 문 정부는 이를 2030년까지 18%·25%로 줄이겠다고 했다. 대신에 같은 기간 액화천연가스(LNG) 비중을 18.8%에서 37%로, 신재생 에너지 비중을 4.7%에서 20%로 확대한다는 게 문 정부의 계획이었다.

정부 조직도 탈원전 기조에 맞춰 개편됐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작년 8월 에너지 전담 2차관 자리를 신설하면서 ‘탄소중립’ 정책을 주도할 에너지산업실에 힘을 실어줬다. 에너지산업실 산하에는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 에너지 발전 지원 조직이 대거 보강됐다. 반면 원전 담당 조직은 에너지 정책의 중점 과제를 다루는 에너지자원실에서 빠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24일 경남 합천군 합천댐물문화관에서 열린 합천댐 수상태양광 상업 발전 개시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 고급 원전 기술자 이탈…산과 들엔 폐모듈

갑작스러운 에너지 정책 전환과 고집스러운 탈원전 행보는 지난 5년간 숱한 부작용을 낳았다. 가장 큰 손실은 60년 동안 쌓아온 우리나라의 원전 경쟁력이 순식간에 무너진 것이다. 특히 전문 인력 손실이 컸다. 원전 산업의 강제 붕괴를 지켜보던 많은 기술자가 어쩔 수 없이 다른 진로를 택하거나 외국 원전 업체로 이직하는 엑소더스(Exodus) 현상이 가속화했다.

원자력산업실태조사에 따르면 2016년 2만2355명이던 국내 원전 산업체 인력은 2019년 1만9449명으로 3년 만에 13% 감소했다. 같은 기간 원자력학과 신입생은 802명에서 524명으로 34.7% 급감했다. 원전 공기업 3사인 한국수력원자력·한전KPS·한전기술의 자발적 퇴직자는 2016년 146명에서 지난해 231명으로 5년 새 58% 증가했다. 탈원전 정책 5년 동안 1189명의 전문 인력이 사표를 제출했다. 정부는 원전 수출로 위기를 돌파하겠다고 했지만, 문 대통령 임기 기간에 해외 원전 수주 실적은 ‘0′건이다.

무리한 신재생 에너지 확대 과정에도 문제가 많았다. 예컨대, 2020년 여름에는 집중호우로 크고 작은 산사태 피해가 잇따랐는데, 당시 10회 이상의 산사태가 태양광 시설이 설치된 곳에서 발생했다. 앞서 2019년 7월에는 태풍 ‘다나스’가 몰고 온 집중호우에 경북 청도군 풍각면 산지의 태양광 시설 옹벽 20m가 무너져 내리기도 했다. 인간이 통제하기 힘든 날씨의 영향으로 전력 생산이 들쑥날쑥하다는 점도 신재생 에너지의 한계다.

쓰레기도 골칫거리로 떠올랐다. 2018년부터 2021년까지 국내에 신규 보급된 태양광 용량은 15.6기가와트(GW)에 이른다. 2017년 말까지 누적 용량이 6.4GW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4년 만에 전국의 태양광 설비가 기존치 대비 2.4배가량 증가했다는 말이다. 한국태양광산업협회에 따르면 국내 태양광 폐모듈은 2023년 988톤(t)에서 2033년 2만8153t으로 10년 새 28.5배 급증할 전망이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건설이 중단된 경북 울진군 신한울 원전 3·4호기 예정지. / 조선 DB

◇ “원전 포함 모든 에너지원 조화 이루는 정책 필요”

이런 상황에서 발생한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과 글로벌 공급난, 그에 따른 원유·LNG 등 에너지 수입 물가 급등은 탈원전 정책 동력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여기에 최근 원전을 ‘그린 택소노미(Green taxonomy·녹색분류체계)’ 최종안에 포함한 유럽연합(EU)의 변심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에너지 수급 불안 확대 등은 차기 정부의 ‘탈탈원전’을 기대하게 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윤석열 당선인은 대선 기간 내내 탈원전 정책 폐기를 약속했다. 윤 당선인은 새 정부 에너지 정책의 중심을 원전에 놓고 신재생 에너지는 보조 수단으로 활용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는 2월 19일 경남 창원 상남분수광장 유세에서 “우리나라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값싼 전기 덕분에 수출 경쟁력이 생겨 먹고 살았다”며 “태양광이나 풍력으로 값싼 전기를 공급할 수 있는가”라고 했다. 2월 21일에는 “탈원전 정책을 백지화하고 원전 최강국을 건설하겠다”고도 했다.

윤 당선인은 ‘K-원전 발전 공약’을 통해 문 정부 시절 건설이 중단된 원전 개발을 다시 추진해 원전 발전 비중을 30%대로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신한울 3·4호기 건설을 다시 추진하겠다는 의미다. 또 현재 가동 중인 원전 중에서도 안전성이 확인된 경우라면 연장 운영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탈원전 정책 추진에 초점이 맞춰진 현 산업부 조직 구조도 새 정부가 손볼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문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망가진 국내 원전 산업을 일으켜 세우는 일이 시급하다고 했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국민적 합의에 근거한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와 내년부터 2029년까지 설계 수명이 종료되는 원전 10기의 수명 연장을 통해 우리 기술자와 원전 산업을 지킬 필요가 있다”며 “미국처럼 수소 생산에 원전을 활용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정부가 에너지 정책을 수립할 때 핵심은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하고 에너지의 안정적 공급을 보장하는 것”이라며 “그런 측면에서 문 정부의 무조건적인 원전 배제는 실패한 에너지 정책”이라고 했다. 정 교수는 “탈원전 백지화가 원전만 하겠다는 게 아니라 원전까지 포함한 모든 에너지원을 조화롭게 사용하겠다는 것”이라며 “이제서야 에너지 정책이 비정상에서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