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여파로 국제 곡물 가격과 석유류 등 원자재 가격이 올라가면서, 소비자물가 상승폭이 더욱 커질 전망이다. 소비자물가가 급등하면 화폐의 구매력이 떨어지고, 불확실성은 높아져 경제 활동이 위축된다. 인플레이션 발(發) 경제 위축으로 인해 올해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2%대로 주저 앉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정부와 한국은행, 글로벌 신용평가사 등에서 내다본 3%대 성장률을 달성하지 못할 수 있다는 의미다.
1일 통계청에 따르면 오는 4일 2월 소비자물가지수가 발표된다. 소비자물가지수는 지난해 10월부터 3%대 상승률을 이어갔다. 일각에선 월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월에는 10년 만에 4%대로 올라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치솟은 국제 유가로 인해 석유류 가격이 큰 폭으로 오를 것이라는 관측에 따른 것이다.
지난달 27일 한국은행 조사국 국제경제부에 따르면, 이달 1∼23일 두바이유의 평균 가격은 배럴당 92.3달러라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 2월 평균 가격(60.4달러)보다 53% 오른 것이다. 앞서 현대경제연구원은 국제 유가가 배럴당 연 평균 100달러를 기록하면 연간 소비자물가는 1.1%P(포인트)가 더 오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난해만 해도 소비자물가가 연간으로 상고하저(上高下低) 흐름을 나타낼 것으로 예상했던 한은도 소비자물가지수 전망치를 크게 올려 잡았다. 한은은 지난 24일 금융통화위원회 경제전망을 통해 최근 가파른 물가 상승세를 반영해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기존 2.0%에서 3.1%로 큰 폭 올려 잡았다. 한은이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3%대로 내다본 것은 지난 2012년 4월에 전망한 3.2% 이후 약 10년 만에 처음이다. 한은은 "근원 인플레이션율도 금년중 2%대 중반 수준으로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원자재 가격 인상 발 소비자물가 상승은 경제 전반을 쪼그라들게 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한은 금통위 기자간담회에서도 '이번 전망은 성장률 그대로고 물가만 상당폭 올렸다. 경기 하방 위험이 커지고 있는데 성장률을 하향 조정 하지 않은 구체적인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쏟아졌다. 한은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의 3%로 유지한 것에 의문을 가지는 시각이 많다는 의미다.
유가가 오르면 수출 중심의 한국 경제는 큰 타격을 입는다. 원자재 가격이 오르면 제품 가격에 반영돼 경쟁력이 떨어지고, 수출에는 악영향을 준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국제유가가 100달러로 오르면 기존보다 경제 성장률은 0.3%P 내리고, 경상수지는 305억달러 감소하게 된다. 유가가 120달러까지 오르면 경제 성장률과 경상수지는 각각 0.4%p 떨어지고 516억달러 줄어든다.
이미 민간 연구소와 국제 기구, 신용평가사들은 한국 경제가 기존에 예측했던 성장 경로를 벗어날 가능성이 유력한 것으로 보고 있다. 무디스는 이틀 전 한국의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3.2%에서 3.0%로 하향 조정했다. IMF도 지난해 한국 경제 성장률을 3.3%로 봤는데, 지난달 3%로 내려잡았다. 한국경제연구원(2.9%), LG경제연구원(2.8%) 등 민간 경제연구소들은 올해 경제성장률을 2%대로 내다보기도 한다.
우리나라 정부가 지난해 12월 내놨던 3%의 경제성장률도 하향 조정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12월 발표한 '2022년 경제전망'에서 3.1%의 성장률을 예상했지만, 전망치 산출의 근거가 되는 세계 정세는 시시각각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재부는 세계 경제 성장률 전망치는 국제통화기금(IMF)의 분석인 5.9%, 국제유가는 두바이유 연 평균 배럴당 73달러를 전제로 3%라는 전망치를 도출했다.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새 정부의 철학이 담길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서는 전망치가 2%대로 하향 조정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가라앉은 내수 시장 대신 경제 성장을 이끌었던 수출에도 비상이 걸렸다. 원자재 가격 폭등에 무역수지는 3개월 연속 적자가 유력하다. 지난달 무역수지는 원유·석탄·액화천연가스(LNG) 등 석유류 가격의 급등의 영향으로 48억9000만달러 적자를 나타냈다. 곡물가격 상승도 관찰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세계 옥수수 산지로 2020∼2021년 총 2386만t의 옥수수를 세계 곡물 시장에 공급한다. 이는 세계 옥수수 수출량의 13.3%다. 중국에서는 이미 옥수수 가격이 36.84%나 올랐다.
정민현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러시아유라시아팀 부연구위원은 "우리나라 전체 원유, 천연가스 수입에서 러시아산(産)이 차지하는 비중은 5~10%로 높지 않지만, 단기적으로 수요가 늘어나면서 가격 상승으로 순수출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2021년 기준 우리나라 원유 수입 국별 비중은 사우디(31.8%), 미국(12.5%), 쿠웨이트(10.7%) 순이며, 천연가스 수입 비중은 카타르(24.0%), 호주(22.7%), 오만(9.0%) 순이다.
정 부연구위원은 "장기적으로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는 제재로 인한 러시아 실물 경제 위축과 수출 통제로 인한 국가별·지역별 교역 구조 변동을 대비해야 한다"며 "세계무역 위축 가능성 등 글로벌 통상 환경 변화를 봐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