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소수 사태 등 정부의 공급망 대응 부실이 현실화 된 가운데, 정부가 추진하는 ‘경제안보공급망기획단(공급망 기획단)’을 놓고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 외교부 등 관련 부처들이 신경전을 펼치고 있다.

기재부는 요소수처럼 소재·부품·장비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원자재나 범용 제품 등에 대해서 총괄 역할을 할 수 있는 조직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산업부와 외교부는 자체적으로 별도의 ‘경제안보 TF’를 운영하고 있어 자체적으로 대응이 가능하고, 기재부의 조직 신설이 ‘중복’, ‘옥상옥 의사결정’이 될 수 있다고 논리를 펴고 있다. 이러한 부처들의 기싸움에 일각에서는 부처들이 대선 시즌 ‘공급망 교란’ 상황을 조직 확대의 명분으로 활용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17일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 외교부 등에 따르면, 기재부는 이달 말 국(局) 단위의 경제안보공급망기획단 출범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이억원 기재부 1차관이 주재하고 있는 임시조직인 ‘경제안보 핵심품목 태스크포스(TF)’를 확대해 국장급의 정식 부서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현재 조직 규모나 인력 구성을 행정안전부와 협의하는 단계”라며 “훈령 작성과 국무회의 의결 등의 일정을 감안했을 때 이달 말이나 늦으면 다음달 초에 조직이 신설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왼쪽부터) 문승욱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정의용 외교부 장관 /연합뉴스

◇ 기재부 ‘공급망 기획단’ 신설... 산업·외교부 “자체 운영중”

공급망 기획단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4일 발표한 ‘경제안보공급망위원회’의 사무국 역할을 하는 조직으로 기재부를 비롯해 산업부와 외교부에 인력을 파견받는 범부처 방식으로 운영된다. 기재부는 조직 규모나 구성이 결정되는 이달 말쯤 산업부, 외교부 등에 인력 파견을 요청하겠다는 계획이다. 앞서, 지난 4일 문재인 대통령은 “공급망 안정에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달라”며 “정부의 TF를 뒷받침할 전담 조직과 제도적 기반을 신속히 마련해 달라”고 주문한 바 있다.

하지만 산업부와 외교부는 기재부 주도의 공급망 기획단 신설에 대해 불만이 쌓여가는 상황이다. 이미 산업부와 외교부 차원에서 TF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어, 업무 중복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그간 공급망 이슈에 주도권을 가진 만큼, 기재부의 참여가 달갑지 않다는 것이다.

산업부, 산업안보 TF 조직도 /산업부

실제 산업부는 작년 2월부터 ‘산업안보 TF’를 구성했다. 박진규 1차관을 TF 팀장으로 통상차관보(동향·협상반)와 무역투자실장(무역안보반), 산업정책실장(산업반), 에너지실장(에너지자원반) 등 사실상 주요 실국이 공급망에 투입된 상황이다. 외교부도 지난해 11월 ‘경제안보 TF’를 신설했다. 최근에는 올해 2~3월 가동을 목표로 TF 산하에 경제안보외교센터 신설을 준비 중이다. 조만간 전문인력 공모 절차에도 착수할 계획이다.

이에 산업부, 외교부 안팎에서는 자체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공급망 교란에 대해, 기재부가 총괄을 명분으로 이른바 ‘조직 확대’, ‘성과 가져가기’를 하고 있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특히 오는 5월 새 정부가 들어선 뒤에도 공급망 교란 문제가 중요 현안이 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사실상 기재부가 조직개편을 앞두고 조직유지·확장을 위해 공급망 교란을 활용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산업부 관계자는 “산업부와 외교부가 이미 작년부터 TF를 신설해 대응을 하고 있는 상황이고, 조직이 안정화 단계로 들어온 상태에서 새 조직을 꾸리는 게 효율적일지는 모르겠다”며 “공급망 기획단은 파견을 받는 조직으로 결국 일은 각 부처가 다하고 기재부는 안건 취합만 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 같다. 공급망 문제는 산업과 통상의 전문가 집단에서 주도적으로 해야 하는 업무”라고 했다.

◇인력 파견 놓고 불만 표출될 듯... 기재부 “요소수 사태 기억하라”

공급망 기획단이 신설될 경우, 인력 파견 문제도 부처 간 마찰이 예상되고 있다. 현재 산업부에서는 무역안보정책과, 소재부품장비총괄과, 산업정책과, 외교부에서는 북미유럽경제외교과, 동아시아경제외교과, 유라시아1과 등 주요 부서들이 자체 경제안보 TF에 투입된 상황이다. 인력 파견 요청이 들어올 경우, 주요 핵심 인력이 이탈할 수 있다. 또 공급망 기획단의 역할도 애매하다. 국장급 조직인 만큼, 파견 인력이 초임 과장 수준인 팀장급 인사들이 영입될 것으로 보이는데, 이들의 역할이 제한적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실제 지난 2019년 설립된 기재부내 혁신성장추진기획단도 산업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장급 인사를 파견 받으면서 시작됐다. 하지만 한걸음 모델 등 담당 사업의 효과가 미미해지자, 지난해 조직을 축소했고 파견 받은 인력은 모두 복귀한 상태다. 현재는 기재부 인력만 남은 상태다.

반면, 기재부는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소부장과 같은 전문성이 있는 품목에 대해서는 전문성을 갖춘 산업부나 외교부가 하는 게 맞지만, 원자재나 범용 제품 등 사각지대에 있는 품목의 경우, 공급망 체계를 총체적으로 감시·대응할 수 있는 조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조직 확대를 위해 ‘공급망 교란’을 활용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 지난 10월 시작된 요소수 사태의 경우, 산업부와 외교부의 늦장 대응이 빌미를 제공했다. 중국은 자국 내 석탄·전력난으로 요소 물량이 부족해지자 지난해 10월 15일 ‘요소 수출 검사’를 의무화하고 사실상 수출을 중단했다. 나흘 전인 11일에는 이미 검사를 예고한 상태였다. 하지만 산업부와 외교부 등 담당 부처들은 어떤 대응에도 나서지 않았다. 주중 한국대사관은 열흘 가량 시간이 흐른 뒤에 수출 중단 상황을 외교부에 보고했다. 외교부는 그제서야 산업부 등 소관 부처에 전달했다.

결국, 당시 청와대도 요소 문제와 관련해, 요소수가 아닌 ‘요소 비료’ 정도의 문제로 인식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차량용 요소수 부족 등 물류 대란의 가능성은 예측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결국 대외경제안보전략회의,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 등 주요 회의에서 요소수 사태가 안건에 오르지 못했다. 이후 사태가 확산되자, 11월 초 이억원 기재부 1차관이 주재하는 ‘요소수 범정부 태스크포스(TF)’가 가동되면서, 요소수 사태의 해결 실마리를 찾게 됐다. 사실상 산업부와 외교부 등의 늦장 대응과 부처 간 칸막이로 인해, 초기 대응을 할 수 있는 골든타임 기회를 놓쳤던 것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조직 신설과 인력 파견 등의 문제로 산업부, 외교부 등 관련 부처들의 불만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며 “경제안보공급망기획단은 조직확대나 옥상옥 의사결정을 위한 게 아니라, 공급망 교란 특성상 언제 어디서 발생하지 모르고 국민의 삻에 미치는 영향이 크고,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범부처 차원에서 사전감지와 빠른 판단·대응이 중요해지면서 신설되는 것이다. 조직 확장론으로 봐서는 안되는 주제”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