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경제학자 56%가 5년 뒤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0~1%대로 하락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사실상 '제로(0) 성장'을 예고한 것이다. 저출산·고령화로 생산성이 감소하는 가운데 경직된 노동시장, 정부의 과도한 규제로 인한 기업 혁신 저해 등으로 한국 경제의 활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의견이 나왔다.
한국경제학회는 15일 이같은 내용의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경제 성장' 설문조사에는 경제학회 경제토론패널 소속 학자 63명 중 37명이 참여했다. 이번 조사는 1995년부터 10년 평균으로 구한 우리나라의 장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5년에 1%p씩 규칙적으로 떨어지는 '5년 1% 하락의 법칙'을 연구한 김세직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등이 작성한 설문 초안을 토대로 이뤄졌다.
실제 지난 30년간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은 꾸준히 하락하는 흐름을 보였다. 5년 이동 평균 기준으로 지난 1998년 5.9%였던 성장률은 2003년 5%, 2008년 4.3%, 2013년 3.1%, 2018년 2.1%로 내려왔다.
현 상태가 지속될 경우 5년 뒤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이 어느 수준을 기록할 것이냐고 묻는 질문에 응답자 49%가 1%대, 41%가 2%대라고 답했다. 0%대를 예상한 경제학자는 7%였다. 경제학자의 절반 이상(56%)이 한국 경제가 5년 뒤 제로 성장에 가까운 0~1%대로 주저앉을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은 것이다.
안재빈 서울대 교수는 '5년 1%P 하락 법칙'에 따라 2027년에는 5년 이동 평균이 0%대에 진입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허정 서강대 교수는 "높은 물가 상승률이 예상되는 만큼, 실질적인 경제성장률에 큰 성과가 있기 어려울 것"이라며 "현재 추세라면 5년 뒤 성장률이 1.5%로 수렴할 것"이라고 말했다.
2%대 성장률을 예상한 김희삼 광주과학기술원 교수도 "향후 취업자 수의 감소 전망과 물적자본의 기여도 저하 추세를 고려할 때 생산성이 반등하면 2%대를 유지하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1%대를 기록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 경제가 장기적 성장 하락 추세를 이어가고 있는 주된 원인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24%는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인구구조 변화에 따른 생산성 감소'라고 답했다. 이어 22%는 '인적자본 투자 효율성 저하', 17%는 '정부의 과도한 규제에 따른 민간 기업의 투자 및 혁신 유인 감소' 등을 꼽았다. '노동시장 경직성에 따른 생산요소 배분의 왜곡'이라는 답변도 15%에 달했다.
이종화 한국경제학회장(고려대 경제학과 교수)은 인구구조 변화와 노동시장 경직성을 장기적 성장하락의 원천적 배경으로 꼽았다. 그는 "노동력 증가율의 둔화와 자본축적률의 하락이 GDP 성장률 하락에 기여했으며, 정부 규제 외에 노동시장의 경직성 등 다양한 요인이 작용했다"고 평가했다.
이인호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정부의 과도한 규제로 인한 기업 혁신 위축을 성장률 하락의 핵심 원인으로 지목했다. 이 교수는 "한국 경제가 성장하면서 과거의 선진국을 베끼는 쉬운 성장 전략은 통하지 않게 됐는데, 이에 대한 대응을 기업들이 제대로 하기에는 우리의 경제 사회적 환경이 너무 적대적이다"라며 "이런 적대적 사회 분위기는 기업들에 대한 규제로 구체화되면서 기업의 창의성이 훼손되는 결과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이런 성장 하락 추세를 반등시킬 효과적인 정책 대응으로는 '노동시장 안전망 확보와 더불어 기업 고용의 유연성 증대'가 32%로 1위를 차지했다. '기업활동 제약 관련 규제 개혁'과 '창조형 인적자본 축적을 위한 재산권 보장 및 교육제도 개혁'이 각각 27%로 뒤를 이었다.
권남훈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디지털화된 경제에서 신성장 동력 발굴을 위한 서비스업 생산성을 높여야 하고, 신산업 발전에 걸림돌이 되는 규제개혁이 시급하다"고 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해소하고 기업 고용의 유연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반드시 해고를 의미하는 방향이 되어서는 곤란하다"며 "성과와 생산성에 부합되는 보상체계가 이뤄져야 하는 것이 정책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정책이 성장과 분배 중 어디에 더 중점을 둬야 하는지 묻는 질문에는 '분배보다는 성장에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과 '성장 하락과 불평등 증가를 동시에 추동하는 공통 원인을 식별해야 한다'라는 답변이 42%로 동일했다. 성장보다 분배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응답은 15%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