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부터 한국 경제에 드리운 그림자가 심상치 않다.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3.6% 뛰었고, 국제유가는 배럴당 90달러까지 치솟으면서 물가 상승 압력을 더 높이고 있다. 무역수지는 지난달 사상 최대 적자를 기록한 가운데 원·달러 환율마저 ‘위기의 징후’로 여겨지는 1200원 안팎에서 움직이는 중이다.

최근의 고(高)유가, 고물가, 원화 약세 흐름이 실물경제 타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물가가 오르면 가계의 실질소득이 줄어 소비가 위축되고, 유가 급등과 원화 약세로 원재료 수입가격이 오르면 국내 기업의 수익성이 악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재정수지와 경상수지가 동시에 적자로 돌아서는 ‘쌍둥이 적자’ 위험도 커졌다고 분석했다.

서울 서초구 하나로마트 양재점에서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 넉달째 3%대 ‘물가 비상’…국제유가 배럴 당 120달러 전망도

새해 들어 국제유가는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오미크론발(發) 코로나 재확산으로 인한 공급차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지정학적 위험 등이 맞물리면서 지난 4일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7년 만에 배럴당 90달러를 돌파했다. 북해산 브렌트유도 이날 배럴당 91달러를 넘어섰다. 유가는 올 들어서만 20% 가까이 올랐다.

산유국의 추가 증산이 없는 이상 국제유가가 조만간 배럴당 120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투자은행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오는 7월 브렌트유가 120달러, WTI가 117달러를 찍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한국 경제는 원유를 전량 수입하기 때문에 이런 고유가 흐름이 수입가격을 끌어올려 소비자물가 오름세를 부채질하고, 무역수지 적자를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실제 국제유가와 국제 곡물가격 급등의 파급효과가 확산되면서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6%를 기록했다. 4개월 연속 3%를 웃돌았다. 지난해 10~12월까지는 유가 상승이 직접적으로 석유류 가격·난방비 인상에 기여했다면, 새해 들어서는 외식비 등 서비스 가격과 공산품 가격까지 광범위하게 반영되기 시작했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두고 서방과 러시아 간의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러시아와 벨라루스는 오는 10일부터 20일까지 합동 군사훈련을 벌일 계획이다.

◇ 재정적자에 경상수지까지 적자 현실화?…‘쌍둥이 적자’ 우려 솔솔

시장에서는 ‘쌍둥이 적자’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이미 재정수지가 올해까지 4년 연속 10조원 이상의 두 자릿수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최근 무역수지 적자 추세가 예상보다 오래 지속될 것이란 전망이 힘을 얻으면서 경상수지도 적자로 돌아설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지난달 우리나라 무역수지는 48억9000만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사상 최대치다. 지난해 12월에 이어 2개월 연속 적자인데, 이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14년 만에 처음이다.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면서 수입액이 수출액보다 큰 폭으로 늘어난 영향이다. 올 1월 원유, 가스, 석탄 등 3대 에너지원의 총 수입액은 159억5000만달러로, 전년 대비 약 131% 늘었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120달러를 향해 계속 오르고, 미국을 포함한 주요국의 긴축 예고에 원·달러 환율이 상당기간 1190~1200원대의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경우 수입가격은 더 뛰고, 이에 따라 무역수지도 수개월간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단순한 시나리오로 오는 2~6월까지 수출증가율 20%, 수입증가율 30%를 가정할 경우 5월까지 무역수지 적자 흐름이 지속될 것으로 추정된다”며 “경상수지는 아직 흑자를 유지하고 있지만, 1월 무역수지 적자폭을 고려하면 1월 경상수지 역시 적자 전환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쌍둥이 적자 가시권에 진입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무역수지는 통관 기준 수출액과 수입액의 차이를 뜻하고, 경상수지는 상품 외 서비스 수출입 등도 포함한 지표다. 무역수지 적자가 반드시 경상수지 적자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경상수지에서 상품 수출입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에 무역수지 적자폭이 클수록 경상수지도 적자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아진다. 통상 경상수지는 국내 기업들의 외국인 배당이 집중되는 4월에 흑자폭이 크게 줄거나 일시적으로 적자 전환하는 모습을 보였다.

◇ 널뛰는 환율도 복병…”3월 FOMC·우크라이나 사태 지켜봐야”

원·달러 환율이 ‘심리적 지지선’으로 불리는 1200원 안팎에서 거래되는 상황도 경제 리스크 중 하나로 꼽힌다. 원화 가치는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긴축 행보에 달러화가 강세를 보이면서 하락했고, 지난해 12월 무역수지 적자 전환 충격으로 약세 흐름이 가팔라졌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 4일 전일대비 9.7원 하락한 1197원에서 거래를 마쳤지만, 지난달 27일 이후 사흘 연속 1200원대에서 거래됐다.

외환시장 전문가들은 연준이 첫 금리인상을 시사한 3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와 우크라이나 사태 전개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반영해 환율도 1분기까지는 1190~1200원대에서 오르내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 외환시장 전문가는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지정학적 리스크가 고조되면서 유가가 단기간에 배럴당 100달러를 달성하면 환율도 1200원대에서 급등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