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차로 20여분 달려 도착한 세종시 부강면. 인적이 드문 이곳에는 2000평의 부지에 12동의 비닐하우스가 나란히 설치돼 있었다. 비닐하우스 문을 열고 들어가면 한 동마다 2500주의 딸기 모종이 줄줄이 심어져 있었다.

이곳에서 ‘딸기 영웅’ 김태일(62) 박사(전 논산딸기시험장장)는 새로운 딸기 품종 개발에 도전하고 있는 한 육종회사의 연구를 돕고 있다. 김 박사는 지난 2005년에 현재 우리나라 딸기 보급률의 85%를 차지하고 있는 ‘설향’, 그리고 2001년에 최초의 국산 딸기 품종이자 해외 수출용으로 인기 있는 ‘매향’을 개발했다. 보급률이 90%에 달했던 일본 품종을 밀어내고 우리나라 딸기의 국산화를 이룬 주인공이다. 김 박사는 그 자신이 개발한 설향을 넘어설 더 맛있는, 더 키우기 쉬운, 더 품질 좋은 딸기를 개발하려 도전하는 사람들을 돕고 있다.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2005년 9.2%에 불과하던 국내 육성 딸기 품종 보급률은 2010년 61.1%로 외국 품종을 역전했다. 이후 국산 품종의 보급률은 2015년 90%를 넘어섰다. 지난해 9월에는 역대 최고치인 96.3%까지 올라섰다. 그중에서도 점유율 1위는 김 박사가 개발한 설향으로, 84.5%에 달한다. 점유율 4위 또한 김 박사가 개발한 매향이다.

국산 품종 딸기는 ‘귀하신 몸’이다. 방탄소년단(BTS)이 탈 법한 전용기도 탄다. 농림축산식품부와 산하 기관인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는 대한항공과 협업해 딸기 전용 항공기 노선을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4월까지 홍콩과 싱가포르에 띄우고 있다. 신남방 국가를 중심으로 우리나라 딸기 품종의 인기가 치솟은 ‘딸기 한류’를 이어가기 위해서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딸기는 지난해 1년 전보다 20% 늘어난 6450만불어치, 총 4821톤이 해외로 수출됐다.

27일 세종 부강면의 한 딸기 농장에서 만난 김태일 전 논산딸기시험장장. 그는 매향과 설향, 만향, 금향 등 토종 딸기 품종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개발한 '딸기 영웅'이다. /세종=이민아 기자

하지만 김 박사가 충남농업기술원 산하 논산딸기시험장(현 딸기연구소)에서 연구를 시작했을 때의 상황은 지금과는 완전히 달랐다. 우리 정부가 2002년 국제식물신품종보호연맹(UPOV)에 가입하면서, 2008년 이후 외국산 종자인 딸기의 출하분에 대해 로열티(품종 사용료)를 낼 의무가 생겼다. 당시 우리나라 농가에서 기르던 딸기는 85%가 ‘육보(레드펄)’ ‘장희(아키히메)’ 등 일본 품종이었다. 국내 농가들은 일본에 막대한 로열티를 내야 하는 위기에 처했었다. 김 박사가 개발한 매향과 설향이 널리 보급되면서 국내 딸기 농가를 구했다.

1959년생인 김태일 박사는 충남대 원예학과 대학원에서 원예학을 전공했다. 그는 논산딸기시험장이 만들어진 1994년 농업연구사로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딸기 연구를 지속하다 논산딸기시험장장까지 역임하고 2020년에 퇴직했다. 김 박사는 2년 전부터 한 육종회사에서 딸기 신품종 개발 업무를 이어가고 있다. 일주일에 두번씩 이곳에서 하루에 딸기 약 1000개를 하나하나 맛보고, 당도와 무름 정도, 크기, 모양을 빠짐없이 기록한다. 각기 다른 품종의 딸기를 교배한 후 맺히는 ‘자녀’ 과실 중에 품질이 우수한 개체를 솎아내는 작업을 7~10년간 반복하다, 운이 좋아야 신품종 하나가 탄생할까 말까라고 한다.

김 박사는 “매일 딸기를 1000개씩 먹는다고 생각해보시라. 하도 먹어서 이젠 쳐다도 보기 싫다”며 손사래 쳤다. 30년 가까이 흙을 다지고 물을 주며 딸기를 기른 김 박사의 손은 농부처럼 두툼했다. 그는 “설향이 우리나라 마트에서 막 널리 팔리기 시작할 때 굉장히 기분이 좋았다”며 그때를 회상하는 듯 환히 웃었다. 농업계에 따르면 그가 만약 개인적으로 품종 개발에 따른 로열티를 받을 수 있었다면, 2000년대 초반부터 1년에 40억원씩 수익을 거뒀을 것이라고 한다.

-딸기 연구를 시작하게 된 배경은.

“공무원 시험을 봤는데 1994년에 딸기연구소로 배치가 됐다. 채소나 과일 연구소들은 산지 근처에 설립됐고, 산지는 시골에 있으니, 당시에 선배 공무원들이 아무도 안 가려해서 신규 취업자들을 그리로 보냈다. 처음 발령 받고 딸기 농사를 지을 줄 몰라서 농가에 가서 배웠다. 딸기를 심는 방법, 기르는 방법을 익혔다.”

-매향을 보급한 건가.

“그렇다. 그런데 매향은 사실 재배를 해보니 어려운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품질은 좋은데, 병에도 약했고 과일 크기가 작았다. 매향은 진주 수출단지에서 정착이 돼서 진가를 발휘했다. 당시에 딸기를 수출해야 하는데, 일본 품종으로 무단 재배한 건 일본이 수입을 거부해버렸다. 그러다 보니 우리 품종으로만 수출할 수밖에 없었다. 매향은 크기는 작은 대신 과육이 단단해서 수출용으로 제격이었던 것이다. 그 일대의 수출단지에서 매향이 널리 보급됐다. 그런데 일본은 자국 농가 보호 차원에서 생산량이 많을 때는 우리나라 딸기를 수입하지 않았다. 그래서 안정적인 해외 수출국을 확보해보자는 취지로 동남아시아 판로를 개척했다.”

-동남아시아 국가로의 수출은 어떻게 시작됐나.

“생산자들이 해당 국가 바이어들에게 샘플을 계속 보내고, 처음에는 저가로 공세했다. 일본 딸기의 50% 가격이었다. 해가 지날수록 우리나라 품종의 질이 좋아졌고, 고급화 전략이 먹히면서 현재는 일본 딸기 가격의 90%까지 올라왔다. 과육이 단단한 매향이 주된 수출 품종이다.”

품종 개량 과정에서 열매를 맺은 딸기의 봉투가 열려있는 모습. /세종=이민아 기자

-우리나라 딸기 역사의 변곡점을 꼽는다면.

“설향의 개발이 아닐까. 2005년에 개발했는데, 매향처럼 굳이 보급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는데도 1년에 점유율이 10%씩 쭉쭉 늘었다. 전국에서 설향을 가져다 키우기 시작하면서 딸기 품종 국산화가 자연스레 이뤄졌다. 이전에는 일본 품종의 보급률이 99%였다. 농촌진흥청 전체 역사를 통틀어도 이렇게까지 국산화에 성공한 과일, 채소는 없을 것이다.”

-설향이 ‘딸기 독립’의 주역인 것인가.

“그렇긴 하지만 설향이라는 단일 품종의 점유율이 85%로 10여년째 이어지고 있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안심할 수 없다. 외국에서 설향보다 과실도 많이 맺히고 질도 좋은 품종이 들어오면 다시 그리로 쏠릴 가능성도 있다. 설향을 뛰어넘는 국산 딸기 품종이 나와야 한다. 민간에서도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나도 새 품종을 만드는 작업을 하고 연구 노하우를 알려주고 싶어 지금 이 육종회사에 일주일에 두번씩 출근하고 있다. 그 외 충남마이스터대학에서도 딸기 육성 강의를 하고 있다.”

-그 당시 설향의 보급 과정이 궁금하다.

“보통, 한 품종을 만들면 농가를 몇 곳 지정해 경비를 일부 대주고 비닐하우스 한 두동에 시험 재배를 시켜본다. 그리고 다음해에 다른 농가들을 불러서 평가회를 한다. 농가 주인에게 심을 가치가 있는 품종이었는지를 물어보는 과정이다. 그런데 설향은 무른 품종이어서 2000년부터 농가실증시험을 했는데도 반응이 별로 없었다. 과실이 물러 저장하기가 어려워 사라질 운명이었다.

그러나 논산3호라는 이름으로 계통을 유지하면서 여러 농가에 계속해서 시험을 했다. 그중 도중엽 농가에서 딸기에 물을 조금 덜 주는 방법으로 단점을 보완했다. 설향은 딸기 전염병인 흰가루병에 강하고, 개수가 많이 맺힌다는 큰 장점이 있다. 비료를 많이 줘도, 적게 줘도 잘 큰다. 수분 관리를 좀 해주니 도중엽 농가에서 어마어마한 수량의 과실이 맺혔다. 설향은 1년에 10%씩 점유율을 늘려가며 자연스럽게 우리나라 농가에 널리 퍼졌다.

27일 세종 부강면의 한 딸기 농장에서 만난 김태일 전 논산딸기시험장장이 교배 중인 딸기를 따고 있다. 그는 매향과 설향, 만향, 금향 등 토종 딸기 품종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개발한 '딸기 영웅'이다. /세종=이민아 기자

-기분이 어땠나.

“당연히 나도 좋고, 도중엽씨도 좋았겠지. 설향이 좋다는 이야기가 전국에 퍼지면서 갑자기 딸기묘를 구하겠다고 문의가 쏟아졌다. 겨울에 심어놓고 관리 기술이 조금 부족해도 워낙 수량이 많이 나오고 잘 크니까 농사 실패 확률이 크게 줄어든다. 딸기 농가 수익이 설향을 심고 나서는 기존의 두배로 늘었다. 농사 기술이 썩 뛰어나지 않았던 농가도 쉽게 기를 수 있었다.”

-하나도 어려운 신품종 개발을 4개나 성공한 비결이 있나.

“방법이 특별하게 있는 건 아니다. 운도 좋아야 하고, 자연이 좀 도와줘야 한달까.(웃음) 물론 교배를 하고 좋은 종자를 선별하는 노력만으로 되는 건 아니더라.”

-근데, 왜 신품종에 ‘매향’ ‘설향’이라는 이름이 붙었나.

“그냥 내가 만들었다. 원래 개발 담당자가 만든다. 딸기에는 원래 조금 여성스러운 이름을 붙인다. 그래서 끝에 ‘희’자도 많이 붙인다. 계절에 따라 봄 춘(春)자를 붙이기도 하고, 영어로는 프린스(prince·왕자)나 프린세스(princess·공주)도 많이 붙인다. 딸기가 빨간색이니 레드(red·빨강), 붉을 홍(紅)이나 향기의 향(香)도 많이 쓰이는 단어다. 딸기 매(莓)에 향을 합쳐 매향을 붙였다. 설향의 경우 겨울 재배가 가능해진 품종이라는 점을 고려해서 눈 설(雪)자를 붙였다. 품질이 굉장히 좋고 단단한 금향은 금(金)을 붙인 것이고, 만향은 늦을 만(晩)자를 써서 겨울을 지나 늦게까지 과일이 맺힌다는 의미를 담았다.”

-가장 애착이 가는 품종은.

“아무래도 매향이다. 2001년 당시엔 우리가 종자를 개발할 수 있는 능력이 되는지도 몰랐던 상태였다. 첫 국산 종자를 보급하면서 보람도 느꼈지만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다. 농사 실패한 농가에 가서 쫓아다니면서 재배법 알려주고 그랬다.”

-공무원, 직장인 등 조직에 속한 많은 사람들이 단기간에 성과를 내지 못하면 압박을 받는다. 첫 성과가 나올 때까지 마음이 불편하지 않았나.

“연구소니까, 재배, 병리 등 여러가지 부문이 있는데 그중에 종자 개발은 성과를 내는 데에 오랜 시간이 걸리니 인기 있는 부서는 아니었다. 공무원 특성 상 매년 결과물이 있어야 하는데 종자 개발은 7~10년은 걸린다. 그래서 종자 개발은 주된 업무가 아니라 한동안 부수 업무였다. 종자 개발 외에 유전자원 특성 조사, 비료 실험 등 다른 실험을 병행했다. 결과적으론 도움이 됐다. 종자를 개발하려면 농사를 잘 짓는 게 기본이었으니 말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압박감이 들었겠다.

“아무래도 그랬지요. 첫해는 다들 이해해주는데, 시간이 3년, 4년쯤 흐르니 ‘몇년이나 지났는데 왜 아직도 성과가 없냐’는 식의 이야기가 좀 나오긴 했다.”

-딸기 연구가 급물살을 타게 된 사건은.

“지난 2006년 일본의 로열티 요구가 결정적이었다. 정부가 2002년 UPOV(국제식물신품종보호연맹)에 가입하면서 2008년 이후 외국산 종자의 딸기 출하분은 로열티를 내야했기 때문이다. 일본이 당시 연간 30억~60억원의 딸기 종자 이용료를 내라고 압박하기 시작하면서 2001년에 처음으로 개발한 매향을 널리 보급해보자는 정책 목표가 주어졌다. 이때 딸기 사업단이 만들어졌다. 그 전까지는 무척 열악한 환경에서 연구를 해왔는데 그때부터 50억원씩 지원을 받아 연구에 속도가 붙었다. 농가에 시설 지원을 해주면서 ‘국산 품종을 심어보라’고 장려했다.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농사를 잘 지을 수 있게 지도도 해주고, 농가의 민원도 해결해줬다.

그 이후에 각 도에 딸기 품종 육성 담당자들도 생겼다. 지금은 충청북도와 제주도 등을 빼면 대부분의 도에서 딸기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1995년부터 ‘우리 것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종자 개발을 어느정도 시작한 상태에서 일본으로부터 로열티 요구를 받은 게 어찌보면 다행이었다. 매향 육성 당시에 일본에서는 ‘한국에 그런 육종 기술이 있겠느냐’며 의심해 논산에서 매향을 가져다 유전자 검사까지 실시한 후에야 매향을 한국 신품종으로 인정했다.”

-일본과는 딸기를 두고 묘한 신경전이 아직까지 있다. 지난 평창올림픽 때 일본 컬링 선수가 한국 딸기가 맛있다고 했다가 일본에서 난리가 난 적도 있지 않나.

“그때 그 사건 때문에 일본 NHK 등 방송사와 잡지사 등에서까지 연락이 왔다. 일본 품종을 기반으로 한국 품종을 만들었다는 말을 나와서 해달라는 요구였다. 그래서 며칠간 핸드폰도 꺼놨었다. 당시 일본 출장 일정이 잡혀있었는데 전면 취소되기도 했다.”

품종 개량 과정에서 열매를 맺은 딸기가 봉투에 싸여있다. 흰 봉투 위에 쓰여진 글씨는 교배한 두 품종의 앞글자를 땄다./세종=이민아 기자

-개발 과정에서 겪은 실패나 어려움은.

“일이 계속해서 늘어났다. 민간 연구소였으면, 결과가 영 아니다 싶으면 당장 그 해에 기른 것은 다 폐기하고 새로 시작했을텐데 공무원 특성상 다 폐기를 하지 못하고 계속 기르고, 기존에 기르는 딸기 묘에 새로운 딸기 묘를 추가하는 방식으로 연구했다. 일감이 매년 늘어났다. 게다가 윗사람들이 바뀔 때마다 기존에 하던 연구에 더해서 새로운 과업, 성과를 요구하니 힘들었다. 일에 일을 얹어주는 형태였다. 농림축산식품부 등 상위 기관의 담당자가 1~2년마다 바뀌는 것도 어려움 중 하나였다. 연구가 연속성을 갖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한때는 농촌진흥청이 성과가 없다며 없애야 한다는 정권도 있었다.”

-최근 딸기 트렌드는 어떤가.

“코로나19 이후 과육이 무른 설향을 택배로 부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판단에, 좀 더 단단한 형태의 딸기가 인기다. 수량이 적어도 품질이 더 우수한, 더 맛있는 딸기를 찾는 듯하다. 편의점에서 킹스베리 2개를 넣어놓고 2000원에 파는 것도 봤다. 무척 비싸지만 꽤 많은 사람들이 사먹더라.”

-가벼운 질문으로 마무리하겠다. 딸기를 씻으면 비타민이 날아간다는 속설이 있는데 사실인가.

“성분이 없어지는 건 아닌데, 맛이 좀 떨어진다. 딸기가 물에 닿으면 딸기에 물이 흡수되기 때문이다. 표면에 먼지 같은 것을 털어내는 차원에서 물로 씻고 빨리 말려서 먹는 게 좋다. 냉장고에는 안 씻은 상태로 넣어두고, 나중에 씻어먹는 게 더 좋다.”

-딸기를 씻을 때 꼭지를 따고 씻어야 하나. 남기고 씻어야 하나.

“안 따는 게 낫다. 꼭지를 딴 부분에 물이 더 많이 닿으니 맛이 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