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부터 정치권의 '선심성 돈 풀기' 공약과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조기 긴축 우려가 맞물리면서 국고채 금리가 일제히 뛰었다. 여기에 한국은행이 지난 14일 기준금리를 연 1.25%로 인상한 뒤 연내 추가 인상을 강력하게 시사하면서 국채 금리도 상승 흐름을 이어갔다.
채권시장 전문가들은 연준이 이르면 연내 유동성 회수에 나서겠다고 시사한 만큼 한국을 포함한 글로벌 채권금리 상승이 불가피하고, 정부가 적자국채를 발행해 14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편성한다고 발표하면서 국채금리가 1분기 중 고점을 찍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이미 채권금리가 연말 기준금리가 1.5%까지 인상될 것을 선반영한 데다, 추경이 확정된 뒤에는 불확실성이 해소되면서 국채금리도 완만하게 하락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 대선 이후에도 추경 추진하면 10년물 금리 2.5% 돌파
17일 금융투자협회와 서울 채권시장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연 1.798%였던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지난 14일 연 2.044%까지 올랐다. 올해 들어서만 약 20bp(1bp=0.01%) 이상 뛰었다. 10년물 국채 금리도 새해 들어 연 2.4%를 돌파했다.
오는 3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새해부터 정치권에서 시작된 추경 편성 논의가 국채 금리를 밀어올렸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지난 4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설 전에 25조~30조원 규모의 추경 통과가 가능하다"고 한 발언이 시발점이었다. 곧이어 더불어민주당이 추경 편성을 서두르겠다는 입장을 밝혔고, 13일 문재인 대통령이 "초과 세수를 활용해 소상공인·자영업자의 어려움을 덜어드릴 방안을 신속하게 강구하라"고 지시했다.
대통령이 추경을 언급한 다음날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자영업·소상공인 지원과 병상확보 지원 등 방역역량 확충을 위한 지원을 중심으로 약 14조원 규모의 추경을 편성하겠다"면서 추경 편성을 공식화했다. 이에 따라 기재부를 중심으로 본격적인 추경 편성 작업이 시작될 전망이다.
채권시장이 추경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당장 추경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려면 적자국채 발행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적자국채란 세입 부족을 보전하기 위해 발행하는 채권인데, 시중에 국채 공급량이 늘면 그만큼 국채 가격은 하락하고 국채 금리는 오르게 된다. 홍 부총리는 "추경 재원은 일단 일부 기금재원 동원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적자국채 발행으로 충당된다"고 했다.
현재 시장에서 예상하는 적자국채 발행 규모는 10조~14조원 안팎이다. 일반적으로 추경 재원은 초과 세수, 각종 잉여금, 예산 지출 구조조정, 국채 발행 등으로 마련한다. 다만 연초에는 세계 잉여금 활용이나 지출 구조조정이 쉽지 않기 때문에 재원 조달에 있어 적자국채 의존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10조원 이상 적자국채 발행, 금리 10bp 이상 상승 유발
채권시장에서는 추경에 따른 적자국채가 1조원 발행될 때마다 장기금리가 1bp씩 오를 것이라고 분석했다. 문홍철 DB금융투자 연구원은 "국채금리는 추경과 인플레이션 우려가 가장 높은 1분기 중 고점을 찍고 하락하는 흐름을 보일 것"이라며 "10년물 국채금리 고점은 2.5% 안팎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다만 추경 규모와 내용이 어느 정도 확정된 이후에는 관련 불확실성이 해소되면서 채권시장 우려도 다소 누그러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안재균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국채 발행량 증대에 따른 금리 상승은 정부 의결 전후로 펼쳐지기 때문에 추경을 받아들이고 논의하는 과정에서 추가 금리 상승은 다소 제한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문제는 추경이 한 번에 그치지 않고 대선 이후에도 반복될 경우 국채금리가 추가 상승 압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임재균 KB투자증권 연구원은 "대선 후에도 추가 추경이 논의된다면 10년물 국채금리는 전고점인 2.575%를 상회할 가능성도 열어놓아야 한다"고 했다.
◇ '매파' 한은 금통위에 국채금리 상승
한국은행이 새해 첫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연 1.25%로 인상한 뒤 '매파(긴축 선호)' 목소리를 높인 점도 채권시장에 영향을 미쳤다. 이날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기준금리를 세 차례 인상해 코로나 위기 이전 수준인 1.25%로 돌아갔지만 지금도 실물 경제 상황에 비해서 금리는 완화적"이라면서 "금리를 한번 더 인상해서 연 1.5%가 된다고 해도 긴축으로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추가 금리인상이 필요하다고 시사한 것이다.
현재 채권금리는 연말 기준금리 1.5% 인상 가능성을 선반영하고 있는데, 이 총재의 발언으로 기준금리가 1.75%까지 오를 수 있다는 전망에 힘이 실릴 경우 단기 국채금리도 추가로 상승할 수 있다. 신얼 SK증권 연구원은 "연내 기준금리 1.75% 가능성이 높아지면 중단기물 금리도 상승할 것"이라며 "3년물 국채금리 상단을 2.15~2.25%로 본다"고 했다.
인플레이션 우려도 국채금리 상승 재료로 꼽힌다. 한국은행은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당분간 3%대의 높은 수준을 이어가고, 연간 물가상승률도 2%도 중반을 상회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평가했다. 김지나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물가에 대한 한국은행 금통위의 인식이 기존보다 경계 태세로 바뀌었다는 점도 채권시장 변동성을 높이는 요인"이라며 "국채 3년물 금리는 전고점 수준(2.1%)까지 금리 상단을 열어놓고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 미 국채 금리도 1분기중 고점 전망
연준이 긴축 시계를 앞당기고 있다는 점도 채권시장에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연준은 이달 5일 공개한 지난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록에서 인플레이션(지속적인 물가 상승) 대응하기 위해 올해 3차례 금리를 올리고 유동성을 흡수하는 양적긴축(QT·Quantitative Tightening)을 시행하겠다고 강력 시사했다.
시장 예상보다 공격적인 연준의 긴축 행보에 FOMC 회의록 공개 직후 미 10년물 국채금리는 1.8%선까지 뛰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양적긴축은 올해 하반기에 이뤄질 것"이라며 시장 안정에 나서면서 14일 10년물 국채금리도 1.6%대 후반까지 내려왔지만, 지난달(1.4%대)과 비교하면 여전히 높은 수준에서 움직이고 있다. 미 국채금리와 국내 국고채 금리는 동조화 현상을 보이기 때문에 미 국채금리가 급등하면 국내 채권금리도 상승 압력을 받는다.
미국의 지난해 12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7%로 1982년 6월(7.1%) 이후 39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하면서 연준이 올해 보다 공격적으로 긴축에 나설 것이란 전망도 힘을 얻고 있다. 미 투자은행(IB)인 골드만삭스는 "연준이 오는 3월, 6월, 9월, 12월에 총 4차례 금리를 인상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임재균 연구원은 "유동성이 회수된다는 점에서 한국 등 글로벌 금리도 상승세가 불가피하다"고 했다. KB투자증권에 따르면 지난 2013년 테이퍼 텐트럼(긴축 발작) 당시 미 10년물 국채 금리는 2.04%에서 2.99%까지 95bp 상승하는 동안 국고채 10년물 금리는 2.93%에서 3.70%까지 77bp 상승했다. 올해는 2013년과 같은 긴축 발작이 일어날 가능성은 낮지만, 과거 긴축 당시 채권금리 변동폭을 고려하면 양국의 국채 금리도 상승 압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민지희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미국 장기금리는 연준의 긴축 경계심을 반영해 1분기중 고점을 기록하면서 변동성 높은 장세를 이어갈 것"이라며 "다만 미국 경제 성장률이 연준이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빠르게 둔화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실제 금리인상이 실제 이뤄진 뒤에는 미 국채금리도 반락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