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연 1.25%로 인상했다. 이로써 기준금리는 22개월 만에 코로나 위기 직전 수준으로 돌아갔다. 최근 물가 상승률이 3%대로 치솟는 등 인플레이션(지속적인 물가 상승) 압력이 여전히 크고, 가계부채 문제가 심각하다는 점을 감안해 내린 결정이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14일 통화정책방향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물가 상승 압력이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다”며 “국제유가 상승, 공급병목 현상, 근원물가 오름세 등을 감안하면 당분간 3%대 물가 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이날 기준금리를 인상했지만, 물가상승 압력을 낮추기 위해서는 추가 금리인상이 필요하다는 의중을 강력하게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14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기준금리 22개월 만에 연 1.25% 회복

이날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기준금리를 연 1%에서 연 1.25%로 0.25%포인트(p) 인상하기로 결정했다. 지난해 8월과 11월 각각 기준금리를 0.25%p씩 올린 이후 세 번째 금리인상이다. 5개월간 총 0.75%p 올랐다. 한은은 이례적으로 11월에 이어 이번까지 연속 인상을 단행했는데, 기준금리 2회 연속 인상은 2007년 7월과 8월 이후 약 14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한국은행은 이번에도 양호한 경기 회복 전망, 물가 안정, 가계부채 급증으로 누적된 금융불균형 완화, 주요국의 통화정책 변화 등을 고려해 기준금리를 인상했다. 금통위는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 확산에도 국내 경제는 견실한 수출 증가세, 민간소비 회복에 힘입어 올해 3%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은행의 물가 안정 목표(2%)를 크게 웃도는 물가 상승률을 억제해야 한다는 인식도 이번 금리인상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그간 한국은행은 인플레이션이 민간소비를 제약해 경제 성장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면서 추가 금리인상이 필요하다고 시사해왔다.

지난해 우리나라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연 2.5%로 10년 만에 최고치를 나타냈다. 월별로 보면 우리나라 물가상승률은 지난해 4월부터 6개월 연속 2%를 상회했고, 10월에는 3%를 넘어섰다. 이어 11월(3.8%)과 12월(3.7%)까지 3개월 연속 3%대를 기록했다.

한국은행은 당분간 소비자물가가 3%대의 높은 상승률을 이어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주열 총재는 “최근 물가 상승 압력이 광범위하게 확산되면서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상당 기간 3%대를 이어갈 것으로 본다”며 “연간으로는 2%대 중반을 상회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 달 만에 올해 물가 상승률 전망을 연 2%에서 2%대 중반으로 대폭 상향 조정한 것이다.

전망치를 크게 수정한 이유 중 하나로는 새해 들어 국제유가가 다시 80달러를 돌파했고, 글로벌 공급망 병목현상이 지속되면서 공급 측면에서 물가를 밀어올리는 대외변수가 여전하다는 점을 꼽았다. 여기에 민간소비 회복과 맞물려 수요 측 물가 상승 압력이 커질 것이란 관측도 나왔다.

그래픽=이은현

◇ “이자상환 부담 10조 늘어도 소비 위축 제한적”

이 총재는 누적된 금융불균형을 하루빨리 해소해야 한다는 입장도 재차 밝혔다. 그는 기준금리 인상으로 가중된 가계의 이자상환 부담이 소비 위축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전체 소비 규모를 감안하면 이자상환 부담이 가계 소비를 제약할 수준은 아니라고 판단한다”고 답했다.

이날 한국은행은 기준금리 0.75%p 인상으로 가계의 연 이자상환 부담이 9조6000억원 늘어난다고 추산했다. 그는 “가계는 부채 못지 않은 자산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며 “소득 수준에 비해 과도한 부채는 감축해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우리나라 가계부채는 지난해 9월말 기준 1850조원까지 불어났다. 지난해 하반기 정부의 ‘대출 옥죄기’와 대출금리 상승으로 최근 3개월 사이 가계부채 증가 속도가 둔화되는 모습이지만, 아직 안심할 수 없다는 게 한국은행의 입장이다. 이 총재는 “최근 주택가격 오름세와 거래 모두 둔화됐지만 대출 수요 자체는 여전히 높은 편이고 연초 금융기관의 대출이 재개되는 상황이라 가계대출 흐름 추이는 아직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14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에서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美 Fed 긴축 움직임 예의주시

한국은행은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긴축 행보도 예의주시하겠다는 입장이다. 이 총재는 “우리가 연준보다 한 발 앞서 선제적으로 금리인상을 했기 때문에 앞으로 통화정책을 운용하는 데 있어 국내 경제 여건을 고려할 여지가 생긴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연준의 통화정책 방향은 파급력이 크기 때문에 긴축 강도가 세질 경우에 대비해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연준은 지난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이르면 올해 3월부터 정책금리를 3차례 인상하고, 시중 유동성을 흡수하는 양적긴축(QT)를 연내 시행하겠다고 시사했다. 미국의 지난해 12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7% 급등하면서 인플레이션 우려가 고조되면서 월가에서는 ‘4차례 금리인상’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이제 시장의 관심사는 올해 추가 금리인상 횟수와 인상 시점이다. 대다수 시장 전문가들은 연말 기준금리 수준을 1.5~1.75%로 예상했다. 오는 3월 대통령 선거와 한국은행 총재 교체 등 주요 행사가 겹치는 2분기에는 정책 공백에 따른 금리동결 기조를 이어간 뒤 하반기부터 금리인상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이 총재도 현재 금리수준(1.25%)이 완화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기준금리를 세 차례 인상해 코로나 위기 이전 수준인 1.25%로 돌아갔지만 지금도 실물 경제 상황에 비해서 여전히 완화적”이라고 했다. 나아가 “만약 금리를 한번 더 인상해서 연 1.5%가 된다고 해도 긴축이라고 볼 수 없다”면서 연말까지 추가 인상이 필요하다고 시사했다.

김지만 삼성증권 연구원은 “한은이 이미 세 차례의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했고, 최근 가계와 기업의 대출이 소폭이나마 둔화되는 등 기준금리 인상의 영향이 가시화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기준금리 인상은 보다 점진적으로 진행될 것으로 판단한다”며 “추가 금리인상을 7월로 예상하며, 빨라진 미국의 금리인상 전망이나 상반기 중 2%대 물가 상승률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추가 인상시점이 5월 정도로 빨라질 가능성도 열려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