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부터 정치권의 추가경정예산(추경)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추가 인상 가능성이 커지면서 국고채(국채) 금리가 치솟았다. 대출금리의 선행지표인 3년 만기 국채 금리는 연 1.9%를 돌파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조기 긴축 우려에 미국 채권금리가 뛴 점도 채권시장에 악재로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최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최대 30조원의 추경 편성을 요청하면서 적자발행을 통한 추경 추진이 본격화될 경우 당분간 채권시장 불확실성도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4일 오전 경기 광명시 기아 오토랜드 광명(옛 기아차 소하리공장)에서 신년 기자회견을 열고 대한민국 대전환과 국민 대도약을 위한 비전을 발표하고 있다.

◇ 정치권 추경 논의에 3년물 국채금리 연 2% 근접

6일 금융투자협회와 서울 채권시장에 따르면 이날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전 거래일보다 2.1bp(1bp=0.01%) 오른 연 1.985%까지 뛰면서 2% 수준에 근접했다. 3년물 국채 금리가 1.9%를 넘어선 것은 지난달 3일(1.9%) 이후 처음이다. 5년 만기 국채 금리는 7.2bp 상승한 연 2.224%,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4.4bp 오른 연 2.419%를 기록했다.

채권시장이 새해 들어 요동치고 있는 이유는 복합적이지만, 시장 전문가들은 정치권의 추경 논의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지난 4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추경 편성과 관련해 “설 전에 가능하고 25~30조원 규모가 실현 가능한 목표”며 “최소 1인당 100만원 정도는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명 후보의 추경 언급 이후 더불어민주당도 신년 추경 편성에 속도를 내기로 했고,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경청은 하겠다”면서 검토 가능성을 언급했다.

문제는 정부가 추경 편성에 필요한 재원 대부분을 적자국채를 통해 조달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채권시장에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적자국채란 세입 부족을 보전하기 위해 발행하는 채권인데, 시중에 국채 공급량이 늘면 그만큼 국채 가격은 하락하고 국채금리는 오르게 된다. 대출금리의 선행지표인 국채 금리가 오르면 시장 금리도 함께 상승하게 된다.

채권시장 전문가들은 25~30조원 규모의 추경을 편성하려면 20조원이 넘는 적자국채 발행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한다. 연초에는 초과세수를 활용한 추경 편성이 어렵기 때문이다.

이미선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지난해 발생한 초과세수 19조원 중 40%는 지방자치단체에 교부되고, 5조3000억원은 소상공인 및 취약계층 지원, 2조4000억원은 국채물량 축소에 배정된 것으로 알려졌다”며 “추경에 활용할 수 있는 초과세수는 4조원 이하로 추정되기 때문에 21~26조원에 달하는 적자국채 발행이 불가피해 보인다”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정치권의 추경 압박이 거세지면서 대선 이후 대규모 추경 편성이 반복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오는 3월 대선을 앞두고 여야 대선후보는 50조원에서 100조원 규모의 추경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이미선 연구원은 “선거 결과에 따라 2~3분기중 적자국채 발행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며 “대선 이후 상당 수준의 연속적인 추경이 현실화될 경우 이는 중립 기준금리를 2.00% 이상으로 상향시키는 재료가 되고 시장이 예상하는 올해 말 예상 기준금리는 1.75~2.00%로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12월 15일(현지시각)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 이후 온라인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블룸버그

◇ 美 연준 조기 금리인상 시사·한은 1월 금리인상 전망

연준의 조기 긴축 우려와 한국은행의 1분기 추가 금리인상 가능성도 국채금리를 밀어올리는 요인으로 꼽힌다.

5일(현지시각) 공개된 연준의 12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 의사록을 보면 회의 참석자들은 “경제, 노동시장, 인플레이션(지속적인 물가상승) 전망을 고려할 때 앞서 예상했던 것보다 더 일찍 또는 더 빠르게 기준금리를 올리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다”고 했다. 앞서 연준은 올해 3차례 금리인상을 예고했다. 시장에서는 이미 연준이 테이퍼링(자산매입 축소) 종료 시점을 3월로 앞당긴 만큼, 연준이 이르면 3월에 금리인상을 시작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아울러 연준은 현재 8조7600억달러에 달하는 보유자산 규모를 줄이는 양적긴축(QT·대차대조표 축소)을 시작하겠다는 뜻도 처음으로 밝혔다. 연준이 보유 중인 채권 만기가 도래하더라도 이를 재투자하지 않아 결과적으로 시중의 유동성을 흡수하는 방안을 의미한다.

시장 예상보다 매파(긴축 선호)적인 FOMC 의사록 결과에 이날 미국 10년물 국채금리는 1.7%를 돌파했다. 민지희 연구원은 “당분간 연준의 통화정책 긴축에 대한 경계심이 이어지면서 미 국채 금리는 변동성 높은 장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연준의 조기 금리인상 전망에 힘이 실리면서 한국은행이 오는 14일 열리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추가 금리인상을 단행할 가능성도 커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상훈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1.7%대를 유지하던 국채 3년물 금리가 올해 들어 3거래일 만에 11.2bp 상승하면서 1.9%를 넘어섰다”며 “미 통화정책 긴축 전망에 미 국채금리가 상승한 데다 국내 추경 가능성이 확대됐고, 1월 한국은행 금통위도 다가오는 상황에서 연초부터 채권금리 불확실성이 커지는 양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