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산업통상자원부가 민간 기업과 산업부 산하 기관이 참여하는 우주산업 소부장(소재·부품·장비) 발전 협의회를 꾸렸다.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성장하는 우주산업의 소부장 영역을 선점하겠다는 목표에서다.

그런데 우주 정책 주무 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등은 이 협의회에 초대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안팎에서는 산업부가 차기 정권에서 신설될 수도 있는 우주전략본부 주도권을 선점하기 위해 행동에 나선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위성종합관제실에서 연구원들이 인공위성이 보내오는 신호를 분석하고 있다. / 한국항공우주연구원

◇ 산업부 주도 우주산업 협의회에 한화·대한항공·현대차 등 참여

19일 정부에 따르면 산업부는 지난 15일 서울 삼성동 그랜드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민간 주도 우주산업 소부장 발전 협의회’ 발대식을 열었다. 산업부는 이 협의회에 대해 “우주 분야 핵심 소부장 개발과 군(軍) 우주기술 민간 이전 촉진 등을 목표로 한다. 뉴 스페이스(New Space) 시대에 급성장하는 우주산업의 소부장 경쟁력 제고를 위해 유기적인 협력 체계를 구축하겠다”고 소개했다.

협의회에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012450), 한화시스템(272210), 대한항공(003490), 케이티샛, 한국항공우주(047810)(KAI), LIG넥스원(079550), 현대차(005380), 아마존웹서비스 등 30여 개 기업이 이름을 올렸다. 한국자동차연구원, 민군협력진흥원, 한국산업기술시험원, 한국재료연구원,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한국전자기술연구원, 한국가스기술공사, 한국항공우주산업진흥협회 등 지원 기관까지 합치면 협의회 식구는 70여 곳으로 늘어난다.

발대식에 참석한 주영준 산업부 산업정책실장은 “우리가 만든 소부장으로 제작한 위성이 경제성 있는 국산 발사체로 발사될 수 있는 선순환 생태계가 형성돼야 한다”며 “우리의 소부장이 과기정통부의 대형 프로젝트와 국방부의 전력 체계 위성에 들어가고, 나아가 해외 우주산업에 당당한 참여자가 될 수 있도록 민간 우주산업 경쟁력 강화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산업부는 우주 관련 조직 개편을 추진하고, 우주와 민군 기술 협력 분야 프로그램디렉터(PD)를 신설할 예정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10월 20일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에서 열린 '2021 서울 국제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에서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개발한 누리호 엔진을 살피고 있다. / 연합뉴스

◇ 행사 알렸다는데…주무 부처는 “들은 적 없다”

이번 발대식 소식을 접한 과기정통부는 당황하는 분위기다. 우주 관련 정책 주무 부처는 자신들인데 산업부가 갑자기 소부장을 앞세워 영토를 침범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한 과기정통부 고위 관계자는 “우리가 우주에 관한 모든 걸 할 수는 없다. 산업부는 산업부대로 그들이 잘 할 수 있는 사업화 등을 모색하려는 것 같다”며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현재 우리가 그런 노력(우주 소부장 발굴과 사업화 등)을 안 하고 있다는 건 아니다”라는 말로 산업부를 경계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조선비즈에 ”기업·국회 등에서 산업부가 우주산업에 나서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았다”며 “소부장·에너지·모빌리티 등을 중심으로 우주산업에서 산업부의 역할을 모색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이번 발대식과 관련해 당연히 과기정통부에도 사전에 행사 개최 사실을 알렸다”고 했다. 그러나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산업부에서 발대식과 관련해 아무런 통보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또 산업부 관계자는 협의회에 과기정통부나 항우연 같은 기관이 참여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과기정통부와 국방부 사이에서 산업부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단계이다 보니 두 부처가 협의회에 들어와 있지 않은 것”이라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가운데)가 11월 14일 경남 사천 한국항공우주산업에서 연구원들과 대화하고 있다. / 연합뉴스

◇ 이재명 당선 시 조직 분할 위기에 놓인 산업부·과기정통부

우주산업을 둘러싼 산업부와 과기정통부의 엇갈린 반응과 묘한 신경전을 지켜본 정부 안팎 관계자들은 두 부처가 민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입을 모은다. 우선 두 부처는 여당 대선후보인 이재명 후보가 당선될 경우 조직 개편 대상에 오를 수 있다는 공통점을 지녔다. 이 후보 캠프는 집권 시 지나치게 비대해진 일부 부처의 몸집을 줄이는 방안을 검토 중인데, 산업부와 과기정통부가 여기에 포함된다.

우선 산업부의 경우 현재 산업·통상·에너지 부문을 모두 총괄하고 있는데, 이 후보는 에너지를 환경부의 기후 대응 부문과 합쳐 기후에너지부를 신설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통상 분야를 분리해 외교부에 돌려보내는 방안도 거론된다. 과기정통부는 과학기술 부문과 정보통신 부문을 분리·조정하는 안이 검토된다. 한 정부 관계자는 “두 부처 모두 여러 정권을 거치면서 조직이 쪼개지고 합쳐지는 풍파를 겪었다”며 “내년 대선 결과에 누구보다 예민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게다가 이재명 후보는 대통령 직속 우주전략본부 신설 검토까지 언급한 상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산업부의 이번 우주산업 소부장 발전 협의회 구성에 대해 “차기 정권에서 조직 개편 대상이 될 것에 대비해 우주전략본부 지분을 미리 확보해두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것이다. 한 정부 고위 관계자는 “산업부가 원래 해오던 일을 한 것이라고 해도 대선을 코앞에 둔 요즘 같은 시기에는 ‘오얏나무 아래에서 갓끈 고쳐 맨 격’ 또는 ‘참외밭에서 신발 끈 고쳐 맨 격’으로 보일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