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선거 후보의 서울대 경제학부 금융경제세미나 초청 강연회 내용을 본 기획재정부의 경제 관료들은 대부분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기재부에서 서울대 출신을 찾는 것은 ‘서울에서 김서방찾기’라고 할 정도로 기재부 내엔 서울대 경제, 경영 계열 졸업자가 많다. 모교에서 유력 대선 후보의 강연이 진행된 만큼 이를 더 관심있게 지켜봤는데, 이 후보의 강연이 경제의 기본 작동 원리를 부정하는 내용으로 이뤄진 것을 보며 황당하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7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에서 열린 서울대학교 금융경제세미나 초청 강연회에 참석해 '청년살롱 이재명의 경제이야기' 경제정책 기조와 철학을 주제로 학생들에게 강연하고 있다./국회사진기자단

우선 이 후보가 “경제는 과학이 아니다”라고 말한 부분에서 가장 크게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반응이 나왔다. 이 후보는 전날 “경제는 과학처럼 보이지만 사실 정치”라며 “반론의 여지가 없는 진리가 아니라는 뜻”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얘기를 드리는 이유는 마치 어떤 통계나 어떤 경제적인 결과들이 마치 진리인 것처럼 말하는 경우가 있는데 진리는 아니라는 것”이라며 “정책적 판단의 결과물이고 얼마든 다른 해석이 가능한 일이라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서울대 경제학부 출신 한 기재부 간부는 “19세기 말 고전파 경제학자들은 ‘정치경제학(political economics)’으로 경제의 본질을 정의했는데, 20세기에 들어서는 경제학은 과학으로 정의됐다”며 “이 후보는 아무래도 경제학을 정치의 영역으로 정의하고자 했던 19세기 수준으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닌가 싶다”고 비판했다.

그는 “경제학은 엄연히 ‘사회 과학’으로 분류되는 학문이며, 다른 학문에서도 경제학에서 사용하는 방법론을 많이 차용하기도 한다”며 “훌륭한 경제학자들이 캠프에도 계시고, 이 후보는 본인은 포퓰리즘이 아니라 경제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이야기한다고 하시긴 했으니...”라고 말을 아꼈다. 경제학이 과학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 어불성설이라는 지적이다.

기재부 관료들과 이 후보가 경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보니, 그간 이 후보의 공약을 기재부에서 반대하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이를 의식한듯 이 후보는 이날 강연에서 기재부와의 의견 충돌을 직접적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이 후보는 “객관적 상황이 바뀌면 경제정책도 바뀌어야 한다”며 “투자할 곳은 없는데 투자할 돈은 남아도는 시대가 됐다. 수요가 부족한 시대가 됐으니 수요를 보강하는 정책이 필요한 시대로 본질적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이 후보는 “이 점에 대해 근본적으로 기재부와 의견이 다르기 때문에 가끔 기재부와 충돌이 벌어지는 것”이라고 했다.

기재부 일부 관계자들은 이 후보의 경제 정책이 근본적으로 시장 원리를 부정한다고 보고 있었다. 한 기재부 간부는 “이 후보의 이날 강연 내용은 전반적으로 전체주의적인 성향이 두드러지는데, 이는 대한민국 헌법에 적힌 자유시장경제 정신과 맞지 않는다”며 “경제는 정부가 돌리는 게 아니라 민간이 주체적으로 참여해 돌아가는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시장경제가 실패한 부분에서는 정치를 통해 도울 필요는 있겠으나, 그것이 아니라 정부가 다 하겠다는 것처럼 들려 이상하다”며 “예전 박정희 정부 때의 시대정신과는 맞을 수 있겠지만, 요즘에도 이런 방식이 적용되겠는가”라고 비판했다.

이재명 후보가 이날 강연에서 현재의 금융 시스템이 불합리하다면서 저소득층을 위한 기본대출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힌 논리에도 논쟁의 여지가 있었다. 이 후보는 “가난한 사람에게는 돈을 빌려주지 않고 부자에게는 돈을 원하는만큼 얼마든 저리로 빌려주는데, 정의롭지 않다”며 “금융의 신용은 국가권력, 국민주권으로 나오는 것인데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책임이 빠지는 것은 옳지 않다”고 했다.

한 기재부 과장급 관료는 “이 후보의 기본대출 등 금융 정책의 방향과 관련해 취지는 알겠지만, 지속 가능성을 간과하고 있다”며 “햇살론 등 서민금융상품의 경우 부실률이 높은데 이를 재정에서 메꾸면서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시스템을 아주 많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규모를 키워 장기적으로 운영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지속 가능성을 같이 생각하지 않는 측면에서 말장난처럼 느껴진다”고도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다른 나라 은행들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겪으며 영업이익률이 줄었음에도 우리나라 은행들의 영업이익률은 늘어난 점을 지적하며 “결국 정부 정책의 잘못이다. 공공적 기능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서울대 강연에서 한 학생은 “정부 정책이 시장 경제 원리를 넘어설 경우 긍정적 효과보다 부정적 효과가 더 클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국가금융이 해외서 성공한 적 없는 이유가 국가가 국민 니즈 전부 맞출 수 없기 때문이라고 알고 있는데, 이익 추구를 하지 않고 세금에 기반한 국가와 민간 기업이 경쟁을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 후보가 전날 일반 국민에게 국토보유세가 전가될 것이란 지적에 대해 “국토보유세로 대기업이 물건값을 올릴 지 모르지만, 그런 건 (국민에게 세금을) 전가(하는 것으로)라 할 수 없다”고 말한 데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반응이 나왔다. 한 기재부 관료는 “간접세 같은 경우는 전부 되겠지만, 직접세는 어떻게 전가될지는 알 수 없다”며 이 후보의 말대로 단언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이같은 기재부 공무원들의 ‘이재명 비판’을 바라보는 외부 시각은 싸늘하다. 지난 2년 가까이 기재부가 보였던 행보가 “경제는 정치”라는 이재명 후보 발언을 증명해주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내년 예산안만 보더라도 기재부는 지역화폐 증액, 광역버스 준공영제 국비 부담 등 이재명 후보의 요구를 국회 심의 과정에서 모두 수용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를 두고 ‘기재부의 ‘굴복’이라고 보는 따가운 시선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국가채무가 400조원 이상 늘어나면서 재정건전성이 급속도로 악화된 것을 제어하지 못한 기재부가 이재명 후보 주장을 반박할 자격이 있냐”라는 원색적인 비판도 나온다.

한 민간 경제연구원 관계자는 “그동안 청와대와 민주당 중심의 포퓰리즘적 퍼주기 정책에 제대로 된 저항도 못해 본 기재부가 ‘경제는 과학이 아니라 정치’라는 이재명 후보의 발언을 입증해준 것 아니냐”라면서 “‘자업자득’이라는 이야기를 들어도 (기재부 관료들은)할 말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