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가계부채 규모가 국가 경제 규모를 고려할 때 세계 37개국 중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후 가계부채 증가 속도 역시 가장 빨랐다. 한국은행이 한국 경제의 뇌관으로 부상한 가계부채의 증가 속도를 억제하기 위해 이달 기준금리 인상을 예고한 가운데 일각에서는 추가 금리인상이 가계 이자부담을 높여 소비를 위축시키고, 경기 회복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15일 국제금융협회(IIF)의 ‘세계 부채(Global Debt) 보고서’를 보면 올해 2분기 기준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04.2%로, 세계 37개 나라(유럽은 단일 통계) 중 1위를 기록했다.

서울의 한 시중 은행 대출 상품 관련 안내문 모습.

가계부채 비율이 104.2%라는 것은 가계부채 규모가 GDP를 넘어섰다는 의미다. 조사 대상 국가 중 가계부채 규모가 GDP를 웃돈 국가는 한국이 유일했다.

이어 홍콩(92%), 영국(89.4%), 미국(79.2%), 태국(77.5%), 말레이시아(73.4%), 일본(63.9%), 유로지역(61.5%), 중국(60.5%), 싱가포르(54.3%) 등이 뒤를 이었다.

그래픽=이은현

1년 사이 가계부채 오름폭도 우리나라가 가장 높았다. 지난 2분기(98.2%)에서 1년 만에 6%포인트(p) 높아졌다.

국가별로 홍콩(5.9%p·86.1%→92.0%) 태국(4.8%p·72.7%→77.5%) 러시아(2.9%p·20.4%→23.3%) 사우디아라비아(2.5%·12.8%→15.3%)가 증가폭 기준 상위 5위 안에 들었는데, 홍콩과 태국 외에는 가계부채 비율 자체가 낮은 편이다.

IIF는 보고서에서 “주택 가격 상승과 함께 글로벌 가계 부채가 올해 상반기에만 1조5000억달러 늘었다”며 “이 기간 조사 대상 국가 가운데 거의 3분의 1에서 GDP 대비 가계 부채 비율이 높아졌는데, 특히 한국, 러시아 등에서 두드러졌다”고 설명했다.

한국 기업의 부채 비율과 증가 속도도 최상위권이었다. 기업의 부채 비율은 1년 사이 7.1%포인트(107.9→115.0%) 뛰었는데, 이 기간 우리나라 기업보다 상승 폭이 큰 나라는 싱가포르(7.6%), 사우디아라비아(7.4%)뿐이었다.

반면 정부 부문 부채 비율은 47.1%로 전체 37개국 가운데 26위로 하위권에 들었다. 정부 부채 비율 증가 속도 역시 1년간 2.2% 포인트 오름폭에 그쳤다. 정부 부채가 가장 많은 나라는 일본(242.9%)이었고, 부채 증가 속도는 싱가포르(11.3%p·140.0→151.3%)가 가장 빨랐다.

최근 시장 안팎에서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속도를 두고 갑론을박이 계속되는 가운데 한은이 가계부채 증가 억제에 중점을 두고 내년 1월 추가 금리인상에 나설지 여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가계부채가 지금처럼 가파르게 증가하면 향후 금리인상에 따른 가계의 이자 부담이 커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최악의 경우 소비가 위축되면서 경기 회복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 한국은행이 지난 9월 발표한 ‘금융안정상황’ 보고서를 보면 기준금리가 지난 8월 0.25%p 인상된 데 이어 이달 추가로 0.25%p 오르면 가계의 연 이자부담 규모는 지난해 말 대비 5조8000억원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계가 부담해야 할 이자가 불어나면 소비 여력도 줄어든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가계소비를 제약할 정도의 부채 ‘임계’ 수준은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과 LTI(소득대비대출비율) 기준으로 각 45.9%, 382.7% 수준이다. 대출이 이 비율 이상으로 늘어나면 가계가 소비를 줄일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이미 임계 수준을 초과한 대출자의 비중은 올해 1분기 DSR 기준 6.3%, LTI 기준 6.6%로 조사됐다.

반면, 지금 가계부채 증가 속도를 억제하지 않고 방치하면 나중에 경제 규모 대비 빚이 지나치게 커지면서 실물경제도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국은행은 현재의 금융불균형 수준에서 극단적인 실물경제 충격이 10% 확률로 발생할 경우 GDP 성장률이 –0.75%로 떨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최악의 경우 국내 경제가 2024년이면 -2.2% 역성장할 수 있다고 봤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8월 기준금리를 연 0.75%로 올린 뒤에도 금리 수준이 여전히 완화적이라고 언급하면서 추가 인상을 시사했다. 당시 이 총재는 “금리인상은 소비와 투자를 위축시키는 측면이 있지만 이번 인상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금리수준은 완화적인 상황”이라며 “통화정책은 거시경제여건을 보고 판단할 수밖에 없고, 금융불균형의 누적 상황을 완화하기 위한 노력을 지체해선 안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