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국내 채권시장은 이례적인 탠트럼(긴축 발작)을 겪었다. 국고채 3년물 금리는 2.1%까지 치솟았고, 10년물 국채 금리는 2.5%를 돌파하면서 연고점을 경신했다. 한국은행의 추가 기준금리 인상 전망과 미국의 테이퍼링(자산매입 축소) 임박, 외국인의 국채선물 매도, 물가 상승 우려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전 국민 1인당 재난지원금 100만원’ 발언도 채권시장에 불을 지폈다. 전 국민 재난지원금을 마련하려면 대규모 재정 투입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이미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예산안에서 편성된 예산을 감액하거나 국채를 추가로 발행해야 한다. 통상 정부의 국채 발행량(채권 공급)이 늘면 국채 금리는 상승(국채 가격 하락)한다.

채권시장 전문가들은 당분간 국내외 통화정책과 대선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지속되면서 국채 금리도 상승 압력을 받다가 오는 25일 한국은행 기준금리 결정 이후 안정을 찾을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김성수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국채 금리가 안정되려면 대외 금리 상승세가 꺾이고 통화정책 불확실성이 해소되어야 하는데 당장 그럴 가능성은 낮아보인다”고 진단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2021년 10월 29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단계적 일상회복 점검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국채 3년물 금리 3주간 40bp 폭등

1일 서울 채권시장에서 대출금리의 선행지표인 3년 만기 국채 금리는 전날보다 0.9bp(1bp=0.01%p) 상승한 2.112%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 2018년 8월 2일(2.113%) 이후 3년 3개월 만에 최고치다. 5년 만기 국채 금리도 0.2bp 오른 2.407%에 거래를 마쳤다. 이 역시 3년 4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전날보다 6.2bp 내렸지만, 여전히 2.5%를 상회하는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국채 금리는 한국은행이 지난달 15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11월 기준금리 인상을 시사한 이후 상승 곡선을 그려왔다. 금통위 이후 3주간 국채 3년물 금리는 40bp, 국채 10년물 금리는 20bp 뛰었다. 통화정책 외 변수에 대한 민감도가 낮은 국채 1년물 금리도 29bp 급등했다. 강승원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한국은행의 공격적인 금리인상 신호와 채권 매수 실종 등의 영향으로 9~10월 국채시장이 탠트럼을 경험했다”고 설명했다.

국채 채권금리가 치솟으면서 투자 심리가 얼어붙자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이 지원에 나섰지만, 상승분을 되돌리기엔 역부족이었다. 기재부는 이달 국고채 단기물 발행을 축소하기로 했고, 한국은행은 이달 통화안정증권(통안채) 발행 물량을 줄이고 바이백(조기상환)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통안채는 한은이 시중 유동성을 조절하는 수단으로 발행하는 채권이다.

정부와 한국은행의 지원사격에 지난달 28일 국채 금리도 소폭 하락했으나, 하루 만인 지난 29일 이재명 대선 후보가 “전 국민 재난지원금 규모는 최소 1인당 100만원은 되어야 한다”는 충격 발언을 하면서 반등했다. 국채 10년물 금리는 이날에만 17bp 폭등한 2.575%를 기록, 3년 2개월 만에 최고치를 달성했다. 국채 3년물 금리도 8bp 상승한 2.103%에 마감하면서 연중 최고 기록을 세웠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국채금리 급등과 함께 나타난 채권시장 발작의 배경에는 수급 여건이 큰 몫을 차지했지만,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우려, 테이퍼링 경계감, 정부의 가계대출 규제 강화 분위기도 영향을 미쳤다”며 “국내 대선 이후 확장적 재정정책이 추진될 것이라는 우려도 금리 발작의 빌미를 제공했다”고 했다. 전 국민 재난지원금을 인당 100만원 지급하려면 50조원 이상의 재원이 필요한데, 확장 재정으로 국채 발행이 늘고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지면 금리는 추가 상승 압력을 받게 된다.

외국인 투자자의 국채선물 매도세도 금리 상승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꼽힌다. 국채 금리가 가파르게 상승(국채 가격 하락)하자 외국인이 투자 손실을 회피하는 차원에서 국채선물을 내다팔면서 금리를 추가로 밀어올리는 양상이다. 외국인은 지난 9월에만 3년 만기 국채선물을 15조원 이상 매도한 데 이어 지난달에도 8조원 가까이 팔아치웠다.

공동락 대신증권 연구원은 “8월 첫 기준금리 인상 이후 추가 인상에 대한 우려와 채권 수급 공백이 맞물리면서 금리 상승폭이 컸다”며 “아울러 손절이 손절을 부르는 현상으로 불리는 투자심리 불안은 한국만의 이례적인 금리 동향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 채권시장 “당분간 국채금리 상승세 지속”

다수 채권시장 전문가들은 한국은행의 추가 기준금리 인상이 예정된 가운데 미국, 호주 등 주요국도 긴축에 돌입하면서 국채금리가 당분간 오름세를 이어갈 것이란 관측을 내놓았다. 시장에서는 한국은행이 이달과 내년 1월 두 차례 기준금리를 인상해 내년 말까지 기준금리가 1.50~1.75%까지 오를 것으로 보고 있다. 국채금리가 한국은행의 금리인상 기대감을 선반영하면서 이달 말까지 채권시장 변동성도 확대될 것이란 설명이다.

김성수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기준금리를 인상하는 것은 확실해졌지만 언제, 어디까지 올릴지 시장 확실한 컨센서스가 형성되어 있지 않다”며 “오는 25일 금통위에서 만족할 만한 해답이나 실마리를 찾는다면 금리는 일시적으로 안정세를 보일 수 있다”고 했다.

미국을 포함한 선진국의 긴축 전환도 금리 상승 재료로 꼽힌다. 오는 2~3일(현지시각) 열리는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테이퍼링을 발표할 가능성이 크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를 포함한 주요 투자은행은 최근 광범위한 물가상승 압력 등으로 미국의 통화정책 정상화 일정이 빨라질 것으로 보고, 이미 연준의 첫 금리인상 전망을 내년 말로 앞당겼다. 골드만삭스는 연준이 테이퍼링 종료 직후인 내년 7월에 금리인상을 단행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