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 1% 이상(전기비) 성장으로 빠른 회복세를 보였던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3분기 들어 0.3%로 급격히 둔화되면서, 정부와 한국은행이 제시한 올해 ‘4% 성장’ 목표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4분기 성장률이 1%초반대를 나타내야 달성 가능한 목표인데, 정부의 고강도 대출 규제 등으로 소비가 위축될 가능성이 있어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한은이 3분기 GDP 성장률 속보치를 발표한 26일, 정부는 가계의 대출 한도를 대폭 줄이는 가계부채 관리 방안을 발표했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을 기준으로 상한선을 정해 내년 1월부터 대출 총량 규제를 강화하겠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전세대출도 내년부터는 대출 총량 규제에 포함되고, 대출 심사는 더 까다로워질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금융당국의 고강도 대출규제가 경제 심리를 쪼그라들게 해 경기 하방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글로벌 공급 차질과 중국 경제의 불확실성, 국제 유가를 비롯한 에너지 가격 상승 등과 함께 정부의 대출 규제가 경기활력을 떨어뜨리는 경기하방 리스크로 작용할 전망이다.

그래픽=손민균

◇3분기, 가계·기업 모두 씀씀이 줄였다

이날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1년 3분기 실질 국내총생산(속보)’에 따르면, 실질 GDP는 전기 대비 0.3% 성장했다. 지난 2분기 성장률인 0.8%의 절반에 해당하는 수준으로 성장세가 쪼그라들었다. 0.3%는 시장 추정치였던 0.5~0.6%를 밑도는 수준이다. GDP는 1분기에는 1.7%의 성장률을 나타냈는데, 하반기 들어 성장세가 둔화됐다. 3분기 전년동기비 실질 GDP 성장률은 4.0%로 추산된다.

3분기 들어 경기가 급격히 둔화된 이유는 코로나 4차 대유행 등으로 내수 경기가 급격히 위축됐기 때문이다. 11조원 가량 5차 재난지원금을 뿌린 정부소비를 제외하고 가계와 기업 모두 씀씀이를 줄이면서 민간 경제 영역의 지출이 줄었다. 정부 소비가 지난 2분기에 비해 1.1% 증가했지만, 민간소비는 -0.3% 감소했다, 민간소비의 경우 코로나19의 4차 대유행으로 음식숙박, 오락문화 등 서비스업 부문의 타격이 반영되면서 이번 분기 들어 전기 대비 마이너스를 나타냈다.

또 글로벌 공급 쇼크로 인한 생산 차질과 부동산 규제 등으로 설비투자와 건설투자가 각각 2.3%와 3.0%씩 감소했다. 설비투자(-2.3%)는 2019년 1분기(-8.3%) 후 가장 큰 감소폭을 나타냈다. 건설투자 증가율은 -3.0%를 기록해 전 분기(-2.3%)보다 감소세가 더 두드러졌다. 3분기 건설투자 감소율은 작년 3분기(-3.9%) 후 가장 컸다. 원자재값 상승으로 철근 가격이 치솟자 댐과 교량 등 토목건설이 대폭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건설투자는 지난 분기에도 -0.3%의 성장률을 나타냈고, 지난해에도 2, 3분기에 각각 -0.4%, -0.6%의 성장률을 나타내는 등 부진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정규철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망실장은 “건설투자의 경우 2014년 중순에 당시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을 완화하고 건설 붐이 있었는데, 그 이후 현재까지 조정되는 국면이 이어지고 있다”며 “최근 들어 주택 착공이 시작되고 있어, 앞으로는 조금씩 부진 완화되는 흐름을 나타낼 것”이라고 분석했다.

◇”’대출 조이기’에 민간 소비도 감소할 것”

한은은 이 같은 3분기 경기둔화에도 올해 4% 성장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황상필 한은 경제통계국장은 “4분기 성장률이 1.04%를 상회하면 연간 4% 성장률 달성이 가능하다”면서 “11월 새로운 방역체제 전환은 대면서비스 중심으로 민간소비 확대를 통해 경제회복에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글로벌 공급쇼크 등 기존의 경기 하방 요인이 산적한 가운데. 금융당국의 고강도 대출 규제가 본격화된다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이날 발표된 금융 당국의 대출 조이기 방침이 경기 회복 저해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내년 1월부터 총대출액이 2억원을 초과할 경우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40% 규제가 적용되고 제2금융권의 DSR 기준 또한 강화된다.

정부가 민간소비를 부양하기 위해 유류세 인하, 소비쿠폰 발급 등을 추진하고 있지만, 고강도 대출규제로 경제 심리 위축 요인으로 작용해 정부의 당초 목표치였던 4.2%는 물론, 4%대 성장률도 달성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의 내수활성화 대책과 함께 대출 규제가 강화되는 양상에 대해 “경기 회복을 위한 엑셀을 밟으면서 동시에 대출 규제로 브레이크를 밟는 셈”이라는 반응도 나온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연내 추가 금리 인상이 예상돼 투자가 위축되고, 정부의 강력한 가계대출 규제 정책으로 민간 소비가 줄어들 것”이라며 “설상가상으로 유가 상승으로 인해 대외 여건도 좋지 않아 정부 목표인 연간 4% 성장 달성은 불가능해 보인다”고 내다봤다.

정규철 실장도 “가계 대출 규제는 금융 불안정 해소를 위한 것임은 분명하나, 경기 회복을 저해하는 요인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