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오랜 시간 뜸 들여온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 신청에 속도를 내고 있다. 최근 들어 산업통상자원부는 물론 기획재정부와 외교부 수장도 앞다퉈 “CPTPP 가입을 서둘러야 한다”고 목소리를 냈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문재인 대통령이 CPTPP 가입 필요성을 언급한 이래 지속해서 CPTPP 합류의 유불리를 계산해왔다. CPTPP 전신인 TPP부터 따지면 가입 검토만 8년간 했다.

굼뜬 정부를 다급하게 만든 건 올해 9월 CPTPP 가입 의사를 밝힌 중국이다. 중국이 CPTPP 가입 신청을 공식화한 직후부터 한국 정부는 CPTPP 가입에 드라이브를 걸기 시작했다. 우리 정부는 왜 중국의 합류 시도를 이토록 의식할까.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절 TPP에서 빠져나간 미국은 과연 CPTPP에 돌아올까. 한국의 CPTPP 가입과 관련해 주목해야 할 관전 포인트를 네 가지로 정리했다.

CPTPP는 미국을 제외한 아시아·태평양 지역 11개 국가가 참여한 초대형 경제 협력체다. / AP연합

◇① 한국은 왜 가입을 망설였나

CPTPP는 일본·호주 등 아시아·태평양 지역 11개 국가가 참여한 초대형 자유무역협정(FTA)이다. 2017년 트럼프 행정부가 세계 최대 규모의 경제 블록을 지향했던 TPP에서 탈퇴하자 2018년 일본을 중심으로 나머지 11개 국가가 출범시킨 경제 협력체다. CPTPP 회원국의 국내총생산(GDP)을 모두 합치면 전 세계의 13%, 무역 규모를 합치면 15%에 이른다.

그간 한국은 CPTPP는 물론 전신인 TPP에도 들어가지 않았다. TPP에 가입하지 않은 건 이명박 정부 시절 이미 미국과 FTA를 발효했고, 미국을 뺀 나머지 TPP 참여국의 시장 개방 의지가 낮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TPP 가입 압력이 있었으나 한국 정부는 한·중·일 FTA와 아시아 16개국의 다자간 FTA 틀인 ‘역내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RCEP)’에 우선순위를 뒀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정권을 잡은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 우선주의’를 외치며 TPP에서 탈퇴했다. 한국 입장에선 미국 없이 출범한 CPTPP에 무리해서 가입할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한국은 11개 CPTPP 회원국 가운데 일본과 멕시코를 제외한 9개 국가와 이미 FTA를 체결한 상태였다. 한국 정부로선 CPTPP 가입에 따른 실익을 크게 기대하기 어려웠다.

민간 연구기관의 한 통상 전문가는 “중국 경사론(외교적 비중이 미국보다 중국에 기울어져 있다는 의미)의 시각에서 중국과 관계를 고려하느라 TPP와 CPTPP 가입을 망설였다는 분석도 있다”고 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 AP연합

◇② 중국의 가입 시도가 주는 메시지

당초 미국이 TPP를 주도한 건 중국을 견제하려는 성격이 강했다. 그런데 중심축이던 미국이 이탈했고, 바통을 이어받은 일본이 CPTPP를 구축했다. 중국으로서는 미국의 빈자리에 자신들이 들어가 미국을 고립시키는 시나리오를 짜볼 수 있는 상황이다. CPTPP에 합류하려면 전체 회원국의 동의가 필요한 만큼 중국이 가입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협정을 주도하는 일본이 미국과 동맹 관계를 고려해 방어적으로 나올 수 있다. 서진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CPTPP가 요구하는 높은 수준의 개방과 경제 정책의 투명성 등을 중국이 충족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고 분석했다.

어쨌든 중국이 움직인 이상 한국도 가입 신청을 서두를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였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올해 초 발표한 ‘바이든 시대 국제 통상 환경과 한국의 대응 전략’ 보고서에서 “한국이 최소한 중국보다는 먼저 CPTPP에 가입해야 한다”고 했다. KDI에 따르면 CPTPP에는 중국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항이 많다. 중국의 가입 협상이 시작되면 그 협상은 장기간 정체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KDI의 관측이다.

게다가 중국에 이어 대만까지 CPTPP 가입 의사를 밝힌 상태다. 한국은 우리의 최대 수출국이자 수입국인 중국이 CPTPP 내 지위를 먼저 차지하는 것도, 우리와 주력 산업 구조가 비슷한 대만이 CPTPP에 먼저 가입하는 것도 탐탁지 않게 됐다. 가입 조건이 만장일치인 만큼 회원국이 하나라도 적을 때 합류를 시도해보자는 논리가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여한구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이 21일 “역내 통상 질서의 변화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 CPTPP는 전략적 가치가 크다”고 발언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 AP연합

◇③ 미국은 다시 돌아올 것인가

그렇다면 TPP를 주도했던 미국은 CPTPP에 다시 돌아올까. KDI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CPTPP 재가입을 결정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KDI는 미국이 CPTPP에 가입하면 CPTPP 가입국을 중심으로 새로운 글로벌 공급망을 형성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상반된 전망도 많다. 국제 경제·통상 전문가인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바이든은 자유무역주의 신봉자가 아니다. 다자주의 수호자는 더더욱 아니다. 착각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허 교수는 “바이든은 ‘국내 투자를 활성화하는 데 정부의 마중물 역할이 필요하다면 세계무역기구(WTO) 정부조달협정을 동맹국들과 수정하겠다’고 말하는 사람”이라며 “미국 정책과 WTO 협정이 충돌하면 WTO를 수정하겠다는 것이 바이든식 해결 방안”이라고 했다. 그런 그가 CPTPP에 제 발로 돌아올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것이다.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도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 규정이 선진화돼 있기 때문에 현재 상태에서는 미국이 CPTPP에 가입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며 “만약 CPTPP를 업그레이드하고 명칭을 고친다면 가입할 수도 있다”고 했다.

부산항 신선대·감만 부두. / 연합뉴스

◇④ 그래서 한국은 가입할 수 있을까

정부가 CPTPP 가입 의지를 강하게 드러내고 있으나 걸림돌은 있다. 당장 내부적으로 농업계의 반발을 해결해야 한다. CPTPP에 가입하면 글로벌 경쟁력을 인정받는 일본산 농·축·수산물의 수입이 본격적으로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캐나다·호주·칠레·멕시코·뉴질랜드 등 농업 경쟁력이 센 다른 회원국이 한국 농·축·수산물 시장의 추가 개방을 요구할 가능성도 있다. CPTPP 회원국의 농식품 부문 평균 관세 철폐율은 96.3%에 달한다.

농업계는 이미 투쟁을 예고했다.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는 10월 19일 성명을 통해 “CPTPP는 앞서 체결된 어떤 FTA보다 우리 농업에 미치는 영향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며 “RCEP 국회 비준을 앞두고 농촌 현장의 불안감이 커진 상황에서 정부가 CPTPP 가입마저 선언한다면 이를 농업 포기, 나아가 먹거리 주권 포기로 간주하고 대정부 투쟁을 전개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이런 반발을 정부도 모르는 게 아니다. 정부는 이달 25일로 예정됐던 대외경제장관회의를 11월 초로 연기했다. 이 회의에서 정부는 CPTPP 가입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었다. 정부 관계자는 “부처 간 조율해야 할 부분이 더 있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