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빅테크 기업과의 전쟁을 선포한 리나 칸 미국 FTC(연방거래위원회) 위원장의 파격 행보에 세계의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그간 소비자 후생을 최우선으로 중시한다는 원칙 아래 플랫폼 기업의 독점에 관대했던 기존의 관행을 뒤집어 엎고 아마존, 구글 등 빅테크 기업을 겨냥해 '반(反)독점' 기관으로서의 사정 역할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미국의 본격적인 빅테크 기업 규제 강화 움직임에 대해서는 우리 공정거래위원회에서도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는 상황이다. 그간 전통적인 경쟁법의 논리에 매몰돼 플랫폼과 같은 신산업 규제에 대응하기 어려웠던 것은 마찬가지인 입장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공정위 역시 플랫폼 산업 규제에 역점을 두고 있지만 온라인플랫폼공정화법(온플법) 등의 추진 법안이 방통위 등 타부처 반대에 막혀 지지부진한 상황이라, 내부에서는 미국처럼 경쟁당국에 플랫폼규제 권한을 부여하고 힘을 실어주는 분위기가 부럽다는 반응도 나온다. 미국의 이같은 규제 강화 흐름을 자원으로 삼아 한국도 본격적인 규제에 나서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지난 4월 21일 당시 지명자 신분이었던 칸 FTC 위원장이 미 상원 인준청문회에 출석해 증언하는 모습./AP연합뉴스

◇FTC 개혁나선 리나 칸…플랫폼 전쟁 선포

15일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최근 공정위 간부들 사이에서 칸 FTC 위원장이 2017년 예일대 로스쿨 재학 시절에 쓴 '아마존의 반독점 역설(Amazon's antitrust paradox)'이라는 논문이 화제다. 1986년생으로 올해 32살이 된 칸 위원장은 컬럼비아대 부교수로 재직하다 지난 6월 FTC 106년 역사상 최연소 위원장에 발탁됐다.

논문을 보면, 아마존과 금산분리를 예로 들면서 거대한 플랫폼 기업의 겸업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금산분리는 산업자본이 은행을 지배함으로써 생기는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기업이 소유한 은행을 통해 고객 자산을 빼돌려 자회사를 지원하거나 계열사를 늘리는 것을 막기 위한 규제다.

칸 위원장은 이러한 비슷한 문제가 온라인 플랫폼에서도 재현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온라인 플랫폼 독점기업도 금산분리 원칙과 비슷하게 겸업을 금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시장 역할을 하는 쿠팡이 직접 제조한 물건을 판매하거나 야놀자나 여기어때와 같은 숙박 플랫폼이 직접 호텔을 지어 사업을 하면 안된다는 의미다.

미국 정부는 이러한 플랫폼 산업 개혁의 적임자를 칸 위원장으로 보고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칸 위원장을 발탁한 것은 빅테크 기업의 독점에 칼을 대야한다는 민주당 내부의 시각을 반영한 결과다. 소비자 후생을 최우선해야 한다는 기조 아래 가격 인상이 없다면 빅테크 기업을 규제할 수 없다는 FTC의 소극적인 태도를 개혁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미 미국 하원에서 ▲미국 혁신 및 선택 온라인법 ▲플랫폼 경쟁 및 기회법 ▲플랫폼독점종식법 ▲호환성 및 경쟁증진법 ▲합병수수료 현대화법 등 아마존, 페이스북, 애플, 구글 등 초대형 온라인플랫폼 기업을 규제하려는 법안이 발의됐다. 이에 빅테크 기업들의 관심은 칸 위원장의 행보에 쏠려있다.

칸 위원장은 자신의 논문에서 "전통적 관점에서는 상품 가격에 영향이 없다면 특정 기업의 독점이 문제가 되지 않지만 아마존 같은 새로운 형태의 정보기술(IT) 기업에는 적합하지 않다"며 강도 높은 규제를 촉구한 바 있다. 대표적인 독점 폐해는 가격 담합 및 인상이므로 '최저가'와 '인수합병(M&A)' 등으로 시장을 장악하는 아마존을 규제할 수 없다는 법조계의 기존 해석과 정면으로 대치된다.

칸 위원장은 부임 이후 2개월 동안 FTC의 법 집행 원칙을 개혁하고 있는데, 최근에는 지난 2015년 도입된 '소비자 후생의 증진'을 법 집행 기준으로 삼는다는 방침을 폐지하기도 했다. 이는 특히 다면시장의 특성을 가진 온라인 플랫폼 기업들을 타겟팅한 조치다. 플랫폼 기업은 소비자에게는 공짜로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과도한 할인혜택을 제공하지만, 이를 토대로 구축한 시장 점유율을 바탕으로 소비자로부터는 데이터를, 판매업체로부터는 과도한 수수료 등을 착취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韓 공정위 내부서도 '반향'…"플랫폼규제 권한 필요"

한국의 공정위도 칸 위원장의 행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공정위가 새로운 FTC를 바라보는 시각은 두 갈래다. 소비자후생과 경쟁이라는 기존의 경제학적인 생각을 전복하는 급진적 아이디어에 일부에서는 동의를 표하면서도, 플랫폼 독점이 미국처럼 심하지 않은 한국 상황에는 급진적인 규제 강화가 오히려 플랫폼 산업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의 시각도 있다.

다만 미국의 경우 경쟁당국인 FTC가 플랫폼 규제에 전권을 임명받은 것 만큼은 공통적으로 부러워하고 있다. 공정위는 지난 2019년 선제적으로 ICT전담반을 발족한 이래 네이버 등을 제재하며 플랫폼 규제에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제도적 측면의 규제인 온라인플랫폼공정화법과 전자상거래법안 등이 방송통신위원회의 반대에 국회 문턱에 막히면서 법 통과가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공정위 내부에서는 미국의 이같은 행보를 플랫폼 규제권한을 확보하기 위한 뒷받침으로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방통위 반대로 부처간 알력 다툼으로 비화한 현재의 상황을 경쟁당국이 플랫폼 규제에 집중하는 미국의 선례를 바탕으로 타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 공정위 관계자는 "리나칸의 주장은 전통적 경쟁법에 매몰된 한국 공정위 직원들에게도 신선한 충격"이라면서 "미국의 경우 빅테크 독점에 대한 규제전권을 FTC가 맡고 있는데, 한국도 효율적인 법 집행을 위해 이런 집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