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르면 8월부터 시작될 전망이었던 ‘국민상생지원금(재난지원금)’ 지급과 ‘상생소비지원금(신용카드 캐시백)’ 사업이 암초를 만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확진자수가 1500명대를 유지하는 등 4차 대유행이 장기화 되면서, 언제부터 지원금 지급 등을 시작해야 할 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자칫 소비를 유도하는 재난지원금과 캐시백 사업이, 방역을 느슨하게 만들고 확진자 감소에 어려움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반복된 코로나 확산으로 ‘사업 추진 발표→중단→재개→재중단’을 거듭했던 소비쿠폰 사업의 재판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11일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재난지원금과 캐시백 사업의 효과를 극대화 하기 위해 “추석 이전에 시작하겠다”는 큰 그림을 가지고 있지만, 구체적인 추진 일정에 대해서는 아직 확정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추석 전에 예산이 집행되기 위해서는 8월 말이나 늦어도 9월 초에는 시행이 돼야 한다. 기재부는 재난지원금 사용처 등 세부 계획을 다음주 공개할 것으로 알려졌지만, 신용카드 캐시백은 세부안 공개 시점도 잡지 못한 상태다. 정부 관계자는 “현재 재난지원금은 관계부처와 지급대상을 조율하고 있고, 캐시백 사업도 카드사 등과 협의를 하고 있다”며 “구체적인 안에 대해 윤곽은 나왔지만, 방역상황에 따라 시행 시점이 달라질 수 있다”고 했다.

서울 화곡동 한 물놀이용품 판매점이 코로나19 관련 수영장 영업 제한 등으로 한산한 모습이다. /연합뉴스

◇ 코로나 전국 확산으로 휴가 시즌 종료…소비 진작 극대화 무산

전국에 적용 중인 거리두기 단계가 기존과 동일한 수준으로 지난 9일부터 2주 연장됐다. 이에 따라 수도권은 4단계, 비수도권은 3단계가 22일까지 적용된다. 하지만 연일 코로나19 확진자수가 네자릿수를 기록하는 등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소비심리가 위축된 상황에서, 거리두기 단계까지 연장되면서 국민지원금이 실제 내수 진작에 기여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이런 가운데 전국민 88%를 대상으로 1인당 25만원씩 주는 5차 재난지원금의 지급 시기를 놓고 장고(長考)에 들어갔다. 당초 정부는 재난지원금, 캐시백 등 소비진작책을 휴가철에 맞춰, 소비효과를 극대화하겠다는 목표였다.

하지만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사실상 여름 휴가철이 조기 종료되는 분위기라 소비 효과를 낼 수 있을지 미지수다. 이미 해운대 등 주요 해수욕장의 경우, 코로나19에 따라 조기폐장을 결정했다. 부산시는 요양병원, 전통시장발 코로나 집단감연에 방역단계를 4단계로 상향하고, 해운대·광안리·송정 등 부산 내 해수욕장 7곳을 조기 폐장하기로 했다.

다른 휴양지 지자체들도 방역수칙 강화를 분위기다. 강원 속초해수욕장과 인천 옹진군도 관내 해수욕장 23개소도 조기 폐장했다. 서해안 해수욕장도 확진자가 증가하거나 거리두기가 상향될 경우, 조기폐장을 검토하겠다는 분위기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물론 지급을 안 하는 것보다는 효과가 있겠지만 실제 들인 예산 만큼의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면서 “코로나 확산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는 지원금을 받더라도 사용이 쉽지 않기 때문에 사실상 위로금의 성격이 짙다고 봐야한다. 오히려 방역에 악영향을 끼치는 최악의 상황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신중하게 봐야한다. 지금은 방역에 집중할 때”라고 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연합뉴스

◇ 코로나 장기화 국면에 소비 진작?…”방역에 구멍 낼 것”

코로나19 4차 재확산이 장기화되는 것도 문제다. 정부는 당초 1~3차의 경험으로 4차 재확산이 8월 중순쯤에 진정될 것으로 예상해, 8월 시행을 목표로 대책을 준비해왔다. 하지만 전염력이 알파에 비해 1.6배 강한 델타 변이바이러스의 전파가 좀처럼 잡히지 않으면서, 바이러스가 더 활발하게 움직일 수 있는 가을까지 장기화 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권준욱 중앙방역대책본부 제2부본부장(국립보건연구원장)은 지난 6일 정례 브리핑에서 “4차 대유행이 이제까지 겪은 유행보다 규모도 가장 크지만 정점에 올라가는 시기도 가장 오래 걸릴 것”이라고 했다.

일각에서는 재난지원금 지급에 따른 소비 유도가 자칫 방역에 ‘구멍’을 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재부는 다음주 중 재난지원금의 사용처 등 시행계획 윤곽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때까지 4차 확산세가 유지될 경우, 정부의 부담은 더욱 커질 수 밖에 없다. 여기에 미국 모더나 백신이 당초 예정된 850만 회분의 수급도 어려워지면서, 접종률을 기대하기도 힘든 상황이다.

마상혁 대한백신협회 부회장은 “거리두기 보다는 하루빨리 백신 접종을 통해 백신 방역으로 전환해야 하는데, 백신 수급이 계속해서 늦어지고 있다”며 “확진자수에 따라, 문 열다, 셧다운이 반복되는데,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괜찮다고 하면 어느 국민이 그걸 믿고 경제활동을 할지 모르겠다. 국민이 코로나에 안심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드는 게 우선적으로 필요하다”고 했다.

지난 3일 통계청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7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07.61(2015년=100)로 지난해 같은 달과 비교해 2.6% 상승했다. 사진은 이날 서울 시내 대형마트에 채소 신선식품 판매대 모습. /연합뉴스

◇ 추석 앞둔 고공행진 물가에 ‘기름’ 붓나

물가상승 압력이 커지고 있는 점도 정부로서는 부담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7월 소비자물가 동향’을 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07.61(2015년=100)로 1년 전보다 2.6% 상승했다. 하반기 들어 물가가 안정될 것이라는 당초 정부의 예상과 달리, 두 달 만에 다시 올해 최고치 상승률을 기록한 것이다. 특히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0~1%대에 머무르며 저물가 기조를 유지했던 지난해와 달리, 지금은 2%대 상승률이 넉 달 연속 이어지고 있다.

농축수산물 물가는 9.6%나 뛰었고, 유가 등 원자재 가격 상승도 강하게 이어지고 있다.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올해 초 배럴당 40달러 선에서 출발해 지난 3일 70.56달러로 70% 정도 급등했다. 여기에 전세 물량 품귀 영향 등으로 집값도 1.4% 상승해 2017년 11월 이후 가장 많이 올랐다.

문제는 2차 추가경정예산(추경)에서 재난지원금에는 11조원, 신용카드 캐시백에 7000억원의 예산이 편성됐다는 점이다. 사실상 11조7000억원의 현금이 풀리면서 시중에 유동성이 늘어날 수 있다. 최근 농축수산물 가격 상승, 국제 원자재 가격 오름세, 추석을 앞둔 수요 증가 등과 맞물려 물가 상승을 더 부추길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지난해도 전 국민에게 1차 재난지원금이 지급된 후 한우 등 농축산물 가격이 급등한 바 있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해 재난지원금 지급 과정에서도 가격이 올라, 정부가 단속을 하는 사례가 나오기도 했다”면서 “재난지원금 등 소비진작책으로 풀리는 유동성은 서민이 느낄 정도의 물가상승 압력은 충분히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확진자수가 1000~2000명대로 급증했기 때문에 재난지원금의 소비 부양 효과가 확진자수가 100명대였던 작년과는 상당히 다르게 나올 수 밖에 없다”면서 “지원금이 소비로 이어지지 못한다면 잉여 자금이 주식 등 자산시장으로 흘러갈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