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노형욱 국토교통부 장관 등 정부 당국자들이 부동산 대국민담화에서 한국은행의 금리인상을 지지하는 듯한 발언을 하면서 채권시장이 들썩이고 있다. 가급적 기준금리 인상을 이른 시일에 시작하려고 하는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의 구상에 홍 부총리 등 정부측 인사들이 동조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사실상 정부가 한국은행에게 금리인상을 촉구하는 모양새”라는 반응이 나온다.

앞서 한은이 “가계부채 증가로 누적된 금융불균형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금리를 올려야 한다”고 주장한 가운데 정부까지 이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첫번째 금리인상이 8월에 단행될 수 있다는 전망에 힘이 실린다. 최근 코로나 4차 대유행으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로 3분기 경제성장이 둔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면서 10월에 금리인상이 시작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지만, 이날 담화로 8월 인상 가능성도 높아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금리를 올려 가계부채 증가 속도를 늦추겠다는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의 의지가 분명하고, 대출을 억제하고 투기를 근절해 집값을 잡겠다는 정부 기조가 강해진 점을 고려하면 8월 인상이 자연스러워 보인다는 것이다. 이에 일부에서는 내달 중순까지 코로나 확산세만 진정되면 한국은행이 이르면 오는 8월 26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 인상이 시작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내놓고 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8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신길2구역 도심 공공주택 복합사업 현장을 방문해 사업 설명을 듣고 있다.

◇ 홍남기 부총리·노형욱 장관 이례적으로 ‘금리인상' 발언

29일 채권시장에 따르면, 지난 28일 국채 3년 금리는 전일 대비 3.9bp(1bp=0.01%p) 상승한 1.419%에 거래됐다. 국채 5년 금리도 전날보다 2.3bp 상승한 1.640%를 기록했다. 국채 10년 금리만 0.6bp 내린 1.862%에 거래됐다.

이날 금리상승은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8일 오전 ‘부동산 시장 안정을 위해 국민께 드리는 말씀’을 통해 집값 조정 가능성을 거론하며 “특히 한은이 연내 금리인상 가능성을 시사하는 가운데, 우리 금융당국은 하반기 가계부채관리 강화를 시행하게 되며 대외적으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조기 테이퍼링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고 말한 것에서 촉발됐다.

뿐만 아니라 노형욱 국토교통부 장관도 “통화당국이 금리인상을 시사하고 가계대출 관리가 엄격해지는 가운데 대규모 주택공급이 차질없이 이루어지면 주택시장의 하향 안정세는 시장의 예측보다 큰 폭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경제부총리, 국토부 장관 등 정부 고위 인사들이 공식 입장 표명에서 ‘한은 금리인상'을 거론하는 것 자체가 이례적인 일이다. 지금껏 정부 당국자들은 독립성 침해 시비를 피하기 위해 한은의 통화정책 방향성에 언급하지 않는 것을 불문율로 삼았다. 특히 전통적으로 경기부양을 선호하는 정부측 인사들이 금리인하를 선호하는 듯한 발언을 해서 논란을 일으킨 적은 있었지만, 정부 부처 장관 두 명이 같은 장소에서 금리인상을 요청하는 듯한 발언을 한 것은 전례를 찾아 볼 수 없는 일이었다.

이같은 발언에 대해 시장에서는 부동산 시장의 집값 상승 기대감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한은의 금리인상이 필요하다는 정부측 인식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평가한다. 홍 부총리가 “정부는 부동산 시장 안정을 정책 최우선 과제로 삼고 주택공급 확대와 대출 등 수요 관리와 투기 근절에 모든 정책 역량을 쏟아 붓겠다”고 말한 것이 대표적이다. 한은의 금리 인상을 부동산 가격 안정의 선결과제로 정부측이 판단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증권사 채권 운용본부장은 “홍 부총리 발언은 한국은행의 금리인상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 것”이라면서 “(홍 부총리 발언 이후) 시장에서는 8월 금리인상이 확실시된다고 판단하는 분위기가 강해졌기 때문에 단기 금리가 상승세로 방향을 틀었다”고 말했다. 다른 증권사 채권 운용역도 “코로나 재확산으로 8월 인상이 어려울 것이라는 인식이 많았는데, 대국민 담화 발언을 보니 정부와 한은 사이에 상당한 교감이 있었던 것 같다”면서 “부총리 발언은 ‘8월에 기준금리 인상을 하겠다’고 발표한 것과 다름 없다”고 말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 ‘부동산 시장 안정’ 압력 강화…8월 금리인상 가능성 커져

정부가 부동산 시장 안정을 위해 기준금리 인상이 필요하다고 시사하면서 한국은행이 연내 첫 금리인상 시점을 8월로 앞당길지 주목된다. 이달 들어 본격화된 코로나 4차 대유행으로 8월 금리인상이 어려울 수 있다는 전망은 후퇴하는 분위기다. 오히려 한국은행과 정부 모두 금리인상을 뒷받침하는 주장을 잇따라 발표하면서 8월 인상 가능성이 커지게 됐다.

실제 한국은행은 이달 15일 금통위 이후 인플레이션(지속적인 물가상승)과 가계부채 문제를 다룬 보고서를 연이어 발표하면서 금리를 올려야 하는 근거를 명시했다. 한국은행은 그간 연내 금리인상을 추진하는 주된 이유로 ‘금융불균형 해소’를 꼽았는데, 이는 부동산 시장과도 관련이 있다. 한은은 보고서를 통해 최근 집값이 가파르게 오른 만큼 조정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에 미리 가계부채 증가 속도를 조절해 금융불균형이 누적되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주열 총재는 “우리나라 수도권 주택가격이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고평가돼 있다”며 가계부채 증가 흐름이 집값 상승과 밀접한 영향이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부동산 시장 안정에 대한 한국은행과 정부의 뜻이 일치하기 때문에 코로나 확산세만 진정되면 한국은행이 8월에 기준금리를 인상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오는 이유다. 익명을 요구한 한 시장 전문가는 “지난 금통위부터 한은이 유독 부동산 시장을 신경쓰는 모습을 보였는데, 부동산 시장 정책에 있어 정부와의 역할분담이 이뤄졌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고 말했다.

다만 한은이 예정보다 빨리 8월에 기준금리를 인상하더라도 정부 주장대로 집값이 안정될지는 미지수다. 정부는 그동안 ‘집값 고점론’을 주장하면서 각종 정책을 발표했지만, 부동산 가격은 오름세를 이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