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내 기준금리 인상을 예고한 한국은행이 이르면 오는 8월에 금리를 올릴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15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다음달 금통위 회의에서 통화정책 조정 여부를 논의하겠다”는 매파적(hawkish·긴축 선호) 발언을 통해 시장에 강한 금리인상 신호를 보냈다. 코로나 확산세가 누그러지고, 사회적 거리두기 방역 단계가 완화되면 곧바로 금리인상에 나설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실제 한국은행은 최근 금리인상이 필요한 이유를 담은 보고서를 연달아 발표하면서 오는 8월 첫 금리인상을 단행하기 위한 준비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다만 국내 신규 코로나 확진자 수가 일주일 평균 하루 1500명을 넘어서는 등 확산세가 여전히 심각한 데다 7월 우리나라가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하면서 하반기 경제성장률이 둔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졌다.

시장에서도 첫 금리인상 시점을 두고 8월과 10월로 의견이 갈린다. 다음달 금통위까지 아직 한 달이 남은 만큼 한국은행도 코로나 확산 추이와 경제지표를 지켜보면서 금리인상 명분 쌓기를 지속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 연일 강해지는 한국은행 ‘금리인상’ 시그널

25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한국은행은 인플레이션(지속적인 물가 상승)과 가계부채 문제를 거론하면서 금리인상 초석 다지기에 돌입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지난주에는 이틀 연속 금리인상 필요성의 근거를 구체적으로 명시한 보고서를 발간했다.

한국은행은 지난 20일 낸 ‘주택가격 변동이 실물·경제에 미치는 영향의 비대칭성 분석’ 보고서에서 지금처럼 가계부채가 불어난 상태에서 집값이 최대 20% 하락할 경우 소비와 고용은 4%씩 감소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올해 1분기 말 기준 우리나라 가계부채는 1765조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한은은 최근 집값이 가파르게 오른 만큼 조정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에 미리 가계부채 증가 속도를 조절해 금융불균형이 누적되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융불균형이란 초저금리에 돈을 빌려 부동산, 주식, 암호화폐 등에 투자하는 개인이 늘면서 자산시장이 과열되고, 가계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현상을 뜻한다. 그간 한국은행은 연내 금리인상을 추진하는 주된 이유로 ‘금융불균형 해소’를 꼽았는데, 이 문제를 다룬 보고서를 통해 시장에 금리인상 신호를 또다시 보냈다는 해석이 나온다.

서울의 한 시중은행 개인 대출 창구 모습

앞서 이주열 총재도 “금융불균형 문제는 하루아침에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라며 “금리인상이 늦으면 늦을수록 더 많은 대가를 치르기 때문에 연내 (금리인상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말했다. 부동산 시장에 대해서는 “우리나라 수도권 주택가격이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고평가돼 있다”며 가계부채 증가 흐름이 집값 상승과 밀접한 영향이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하루 전인 19일에 발표한 ‘최근 인플레이션 논쟁의 이론적 배경과 우리경제 내 현실화 가능성 점검’이라는 보고서에서 한국은행은 “소비 회복과 원자재 가격 급등이 하반기 물가 상승을 자극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수요와 공급 측면에서 모두 물가 상승 압력이 커지면서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졌다는 설명이다. 한국은행 통화정책의 공식 목표 중 하나가 ‘물가 안정’인 만큼, 한은이 인플레이션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기준금리 인상을 앞당길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

◇ 연준, 이달 ‘테이퍼링’ 논의 착수하나

미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오는 27~28일 예정된 7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테이퍼링(자산 매입 축소) 계획을 구체화할 것이란 관측도 한국은행의 ‘8월 금리인상‘ 전망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2일(현지시각) “연준 인사들이 이번 회의에서 테이퍼링과 관련한 잠재적인 전략에 대한 공식 브리핑을 받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올 들어 미국 경제가 눈에 띄게 회복하면서 연준이 더 이상 테이퍼링 시점과 속도 논의를 미룰 수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연준이 이달 테이퍼링 논의 수순을 밟을 경우 이르면 연말 테이퍼링에 돌입할 가능성도 커진다. 연준이 연말에 테이퍼링을 개시하면 금리인상 시점도 2022년으로 앞당겨질 수 있다.

한은 금통위는 기본적으로 국내 경기와 물가 상승 압력 등을 고려해 기준금리를 조정하지만, 연준이 금리 인상에 나설 경우에는 국내 기준금리를 한 발 앞서 올려야 한다. 금리가 미국과 같아지거나 낮을 경우 내외 금리차로 인해 외국인 투자금이 유출될 가능성을 사전에 방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15일 오전 서울 마포구보건소 선별진료소에서 시민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선별 검사를 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 변수는 코로나 확산세…3주째 확진자 하루 1000명대

다만 우리나라 경제가 코로나 대유행과 무역적자라는 난관을 만나면서 한국은행의 금리인상 시간표에도 차질이 생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금리인상 예열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는 한은도 다음달 26일까지 코로나 확산 추이를 예의주시하면서 금리인상 시점을 저울질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코로나 신규 확진자 수는 3주 가까이 1000명대를 기록 중이며 지난 22일에는 하루 확진자 수가 1842명으로 사상 최다를 경신하는 등 확산세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는 모습이다. 여기에 7월 무역수지 적자가 39억4000만달러 기록하면서 정부가 제시한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 4.2% 달성에 적신호가 커졌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한은은 연내 금리인상 전제 조건으로 금융불균형 해소 필요성과 더불어 견조한 거시경제 회복세와 코로나 확산세 완화를 꼽았는데, 8월 중순까지 방역당국의 전망대로 코로나 확산세가 진정되지 않거나 경제 성장률이 기대에 못 미칠 경우 금리인상 시점도 늦춰질 수밖에 없다.

김지나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과거 1~3차 유행 당시 확진자 수가 진정되기까지 기간은 짧으면 3주, 길면 10주가 소요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코로나 재유행이 단기간에 진압되긴 어려울 전망”이라며 “한은의 강한 의지에도 불구하고 8월 내 코로나 진정이 어려워 보이기 때문에 금리인상은 10월에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주열 총재도 “8월 인상을 결정한 바는 없고, 코로나 상황에 달려 있다”며 “백신접종 확대로 코로나 확산이 진정된다면 연내 인상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조심스러운 입장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