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3월 9일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여야 정치권에서 후보군이 가시화되는 가운데, 경제부처들이 차기 정부의 조직개편을 대비해 자체 안(案)을 마련하느라 바쁘다. 산업통상자원부, 공정거래위원회 등 곳곳에서 부처 및 산하 조직의 현황 진단 및 개편 방안 연구 용역을 단기 과제로 발주하고 있다. 대선 앞 정치권의 조직개편 공약이 굳어지기전에 선제적으로 비전을 제시하기 위해서다.

이와 관련 “챙겨야할 현안이 산적해 있는데 벌써 밥그릇 챙기기를 하느냐”라는 자성의 목소리와 함께, “각 부처 입김이 반영된 연구 용역 결과가 난무할 바에는 차라리 임기 말에 총리실 등에서 다양한 관점을 담아 조직 개편안을 제시하는 것이 낫다”는 제안도 나온다.

문승욱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왼쪽)이 9일 서울 영등포구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중소기업인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공룡부처 산업부, 산업정책-통상교섭 재조정 가능성

18일 조달청 나라장터에 따르면, 산업부는 지난 5일 ‘산업통상자원부 조직진단을 통한 조직개편 방안 연구’ 용역을 발주했다. 산업부는 과업지시서에서 “산업경쟁력 강화 및 변화하는 통상 환경 대응·에너지 전환정책 추진 등 정책기능 확대에 대비한 효과적인 정책 추진체계 및 조직 개편방향 제시하라”고 요구했다. 간단한 표현이나, 자세히 보면 차관급 3명(1·2차관, 통상교섭본부장)을 둔 공룡 조직의 위기의식이 보인다.

우선 소속이 자주 바뀌는 통상 기능 문제다. 박근혜 정부는 2013년 통상교섭 기능을 외교통상부에서 산업부로 이관했다. 그후 통상 조직을 운영한 산업부 내에서는 각국에 파견되는 ‘손발’ 격인 경제공사를 확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아졌다. 이와 관련, 국무총리 출신인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는 산업부 통상교섭본부를 국무조정실로 이관하는 방안을 차기 정부 조직개편안으로 제시한 바 있다, 외교부가 통상 기능을 다시 요구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현정부 실세인 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외교부의 통상 기능 회복에 관심이 큰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청에서 부로 승격하면서 이원화된 산업정책 추진 체계도 고민이다. 그러나 홍종학, 박영선, 권칠승 장관 등 힘있는 정치인 출신 장관이 거쳐가며 중기벤처부는 조직과 역할을 키웠다. 산업부가 반도체 산업의 전체 밸류체인을 고민해도, 소재·부품·장비 분야 업무는 중소기업은 중기벤처부 몫이었다. 이 때문에 지난 6일 산업부와 중기벤처부 간 정책협의회처럼 산업정책 추진을 위해 두 부처가 정례 회의를 해야 하는 비효율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 출범 후 전세계적으로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탈(脫)탄소'가 산업정책의 핵심 키워드로 부각되고 있다는 점도 차기 정부 조직개편의 고민거리로 부각되고 있는 상황이다. 한 관계자는 “부처의 덩치와 권한을 키우는 것보다는 나라의 백년지계인 미래성장동력을 만드는 데 어떤 조직체계가 더 효율적인지를 우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은 편”이라면서 “선택과 집중을 통해 역량을 집중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자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2차 추가경정예산안에 대해 제안설명을 하기 위해 발언대로 나가며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 與 재집권 시 기재부 예산 기능 분리 논의 촉발될 듯

현 정부 집권 기 동안 여권 인사들에게 자주 공격을 받아 ‘샌드백’ 신세가 된 기재부는 대선 결과에 따라 기획, 예산, 세제, 금융 영역을 담당하는 정부 조직이 또 쪼개질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적지 않다. 기재부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조직형태가 크게 바뀐 경험이 있다. 재무부와 경제기획원으로 출발한 현 기재부는 김영삼정부 때 재정경제원으로 합쳐졌고, 김대중정부 때 다시 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처로 나뉘었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두 부처는 다시 기획재정부로 합쳐졌지만, 금융 분야는 금융위원회로 독립했다.

더불어민주당 등 여권에서는 예산분야를 다시 분리해서 기재부 권한을 약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퍼주기성 재정 지출에 반기를 들 수 있었던 예산편성권을 빼앗는 데 관심이 쏠린다. 기재부는 전국민지원들을 둘러싸고 이낙연 전 대표와 대립했고, 정세균 전 총리와는 ‘자영업 손실보상제 법제화’에 대해 상반된 목소리를 냈다. 이재명 경기지사의 기본소득, 기본주택 공약에 대해서는 공개적으로 반대 의견을 낸 바 있다.

공정위는 데이터 기반 플랫폼 기업에 대한 연구를 강화하며 역할 확대를 고민하고 있다. 지난 5월 이후 ‘데이터 분야의 경쟁·소비자 이슈와 공정거래질서 구축 방안’, ‘개인정보 활용분야 표준약관(전자상거래, 온라인․모바일게임) 개선방안 연구’, ' 디지털 광고시장 실태조사 연구'등 세가지 용역을 잇따라 발주했다. 공정위 안팎에서는 “시대 변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고민”이라는 평가와 함께 “재벌개혁 등 ‘지배구조’ 이슈를 넘어선 새로운 먹거리를 찾고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농식품부는 지난 5월 ‘농식품 정책환경변화 대응 조직 발전 방안’ 용역을 발주하는 등 식품, 축산 방역 분야에서 역할 확대를 모색하고 있다. 최근 급부상하고 있는 반려동물 관련 기능 강화 목소리가 큰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밖에 산림청은 탄소중립 과제 이행을 위한 조직 정비방안,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마스크 수급 관리, 국내 백신 개발 및 신속 출하 승인과 관련된 조직개편에 대한 연구 요역을 발주했다.

◇ “국무조정실이 개편안 가이드라인 제시 필요”

각 부처에서는 용역 이외에도 각 정당의 대선 공약 확정전은 물론 주요 대선 후보군들이 정책 비전이나 공약을 발표하기 전까지 자체 조직비전을 마련하기 위해 서두르고 있다. 정부조직개편을 통해 권한과 기능을 조정하는 것은 개별 부처 입장에서는 인원과 예산, 규제권한 등이 늘어나거나 줄어들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통상 연구용역이 6개월 이상의 기간을 주는 것과 다르게, 최근 각 부처에서 발주하는 조직개편 연구용역은 오는 9월 이전까지 결과물 제출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각 부처 움직임과 관련한 반성의 목소리도 있다. 한 경제 부처의 과장은 “현안 챙기기에도 바쁜데 공개적으로 용역을 발주하면서까지 밥그릇 챙기기에 나서는 건 보기 민망하다”고 개탄했다.

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이와 관련 “각 부처가 자신들의 이해 관계를 반영한 용역 결과를 객관성을 가장해 마련하면서 진짜 공정하고 객관적인 평가와 연구, 그에 따른 조직 개편은 없었다고 볼 수도 있다”면서 “국무총리실에 있는 정부업무평가실 같은 곳에서 각 정부 임기 4년차에 그간의 경험을 범정부 차원으로 종합해서 정부의 기능을 재조정하는 방안을 내놓고 대선 국면에서 선택할 수 있게 하는 게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