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오는 8월부터 민간기업과 손잡고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모의실험 연구에 착수한다. CBDC는 중앙은행이 직접 발행하는 전자적 화폐로, 비트코인 등 암호자산과 달리 가격 변동이 없어 현금처럼 사용이 가능하다.

오는 12일 입찰이 마감되는 한은 CBDC 사업에 당초 참여 의사를 밝힌 네이버, 카카오, LG CNS 외에도 삼성SDS, SK C&C 등도 참여를 긍정적으로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져 치열한 경쟁이 예상된다.

15일 한국은행의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법률자문단이 출범했다.

◇ 네이버·카카오 이어 삼성SDS 입찰 참여 유력

8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SDS는 한은 CBDC 모의실험 연구 사업 입찰을 준비 중이다. 이미 삼성SDS는 회계·컨설팅 법인 EY한영의 협력업체로 한국은행이 지난해 11월부터 진행한 ‘CBDC 파일럿 시스템’ 컨설팅 용역사업에 참여했다. 한은은 이 사업을 통해 CBDC 구축에 필요한 업무프로세스 분석과 외부 컨설팅을 마쳤으며, 이를 토대로 올 하반기부터 가상환경에 작동하는 시스템을 구현해 테스트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그간 업계에서는 삼성SDS가 EY한영을 통해 간접적으로 한은의 CBDC 파일럿 시스템 컨설팅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만큼 이번 ‘CBDC 모의실험’ 사업에도 출사표를 내밀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이에 대해 한 IT 업계 관계자는 “아직 확정된 바 없지만, 삼성SDS가 입찰 참여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모의실험은 한은의 CBDC 도입을 위한 준비 과정이다. 한은은 먼저 가상 환경에서 CBDC가 화폐로서 제기능을 하는지 실험한 뒤 상용화 여부를 검토한다는 계획이다. 한은은 이달 5일부터 오는 12일까지 사업신청자 입찰을 받은 뒤 기술평가를 거쳐 이달 말 사업자를 선정한다. 오는 8월부터 약 10개월간 한은은 2단계에 거쳐 가상환경에서 CBDC 발행부터 결제까지 실험할 예정이다.

사업 규모는 49억6000만원으로 크진 않지만, 전 세계적으로 암호자산(가상화폐) 대응 차원에서 중앙은행의 CBDC 연구가 활발해지는 추세라 미래 시장 발굴에 나선 IT·금융 업계의 반응은 뜨겁다.

◇ 블록체인 플랫폼 기술 선점 경쟁 치열할 듯

실제 한은이 지난달 14일 개최한 모의실험 비공개 설명회에는 30여개 기업이 참여해 큰 관심을 보였다. 국내 주요 IT·금융 기업은 블록체인(분산저장) 기반 디지털 금융서비스를 비롯한 핀테크 사업을 미래 성장 동력으로 키우고 있는데, 한은의 CBDC 프로젝트 사업자로 선정될 경우 향후 해당 경력을 토대로 국내외 관련 사업 수주전에서 유리한 입지를 점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입찰 참여를 준비 중인 것으로 분석된다.

국내 IT 업계 한 관계자는 “CBDC가 블록체인 생태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데다 우리나라 3대 IT 서비스 회사 모두 블록체인 플랫폼을 보유하고 있고 이미 은행, 보험사, 증권사 등을 고객사로 두고 있을 정도로 사업 경험도 있다”면서 “참여를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앞서 네이버와 카카오, LG CNS는 입찰 참여를 이미 확정했다. 네이버는 자회사인 라인플러스와 네이버파이낸셜이 컨소시엄을 이뤄 한은의 CBDC 모의실험 연구에 도전장을 내민다. 카카오에서는 블록체인 기술 계열사인 그라운드X가 참여한다. 양사는 별도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입찰을 준비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LG CNS 측은 “이미 한은 CBDC 3차 기술검증을 수행했고, 한은 CBDC 업무 프로세스 분석과 외부 컨설팅 사업, 신한은행 디지털 화폐 시범 플랫폼을 구축하는 등 CBDC 관련 사업 경력을 보유했다”면서 입찰 참여 의사를 밝혔다.

한국은행 CBDC 설계방안

◇ 중앙은행 CBDC 연구 활발…도입은 “아직 지켜봐야”

최근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을 중심으로 암호자산 투기 열풍이 불면서 각국 중앙은행의 CBDC 연구와 도입 논의를 본격화하는 추세다. 민간에서 발행하는 암호자산의 영향력이 커지면 그간 중앙은행이 독점해온 화폐 발권력을 흔들 수 있다는 우려에 중앙은행들도 선제 대응에 나선 것이다.

한은도 ‘현금 없는 사회’라는 미래 지급결제 환경 변화에 대비해 지난해부터 CBDC 연구를 진행해왔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달 창립기념사에서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중앙은행 CBDC 도입할 필요성이 더욱 커질 수 있는 만큼 이에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3월에는 “향후 CBDC가 도입되면 지급수단으로서의 암호화폐 수요는 감소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아직까지는 도입 여부를 놓고 찬반 논쟁이 치열하다. 중국은 지난해 10월부터 베이징, 선전 등에서 ‘디지털 위안화’ 사용 실험에 돌입했고 스웨덴 중앙은행은 2017년부터 CBDC 전담조직을 꾸려 디지털화폐 모의실험을 추진해오는 등 CBDC 연구를 활발히 진행해왔다. 반면, 미국은 아직 CBDC 도입에 신중한 입장이다. 최근 미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주요 인사들은 잇따라 CBDC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을 드러냈다. 토마스 바킨 리치몬드 연은 총재는 “우리는 이미 ‘달러’라는 디지털화폐를 보유하고 있다”고 했다. 랜들 퀄스 연준 부의장도 “달러가 이미 고도로 디지털화 됐다”면서 “새로움에 이끌리기에 앞서 신중한 비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한은 역시 이번 연구가 CBDC 발행을 전제로 한 것이 아니라고 재차 강조했다. 한은 관계자는 “지금의 연구와 준비단계는 현금 이용 비중이 급격하게 줄어드는 등 지급결제 환경이 변할 상황을 대비하는 차원”이라면서 “그 시점이 언제 도래할지는 가늠할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