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슬라 차량 가격 인상은 산업 전반의 공급망 압박 때문이고, 특히나 원자재(공급 문제)가 심하다.”(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지난 1일 트위터에서)

미국 전기차 업체 테슬라의 주력 제품인 모델3의 가격이 올해 들어 2000달러 넘게 올랐다. 머스크는 원자재 가격 상승을 모델3 가격의 가장 강력한 인상 요인으로 지목했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전기차 1대당 50kg~83kg에 달하는 구리가 필요한 것으로 보고 있는데, 구리 가격은 지난달 11일 1만557달러로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다. 이후 조정을 거쳤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런 구리 가격 급등이 테슬라의 전기차 가격을 밀어올렸다고 머스크는 강변하고 있는 것이다.

테슬라 모델3 가격 인상은 최근 글로벌 인플레이션 동향을 파악할 수 있는 한 단면이다. 코로나19 충격을 벗어나며 경제가 회복세에 들어선 가운데 미국과 중국 등 주요국들이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탄소중립 및 그린경제 관련 인프라 투자를 가속화하면서 전세계적인 원자재 가격 상승세가 나타나고 있고, 이로 인한 인플레이션 압력이 전방위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린경제라는 글로벌 경제의 패러다임 변화가 원자재 슈퍼 사이클로 이어지고, 이로 인해 인플레이션이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을 증폭시키는 요인으로 부각되고 있다.

특히 제조업 국가인 한국 경제에서 원자재 슈퍼사이클로 인한 인플레이션은 경기회복에 치명타가 될 수도 있다. 국제 원자재가 상승은 시차를 두고 수입 중간재 가격 상승을 거쳐 최종적으로 소비자 물가를 밀어올린다. 유가 상승은 교통비, 난방비, 전기요금, 합성수지 등 석유화학제품 가격, 항공요금 등으로 이어지고, 철광석 및 동괴 가격은 자동차 등의 가격 상승 요인이 된다. 뿐만 아니라 원자재 가격 상승은 공급 차질을 초래할 수도 있다.

머스크 트위터 2021. 6. 1

◇'그린경제'가 만들어낼 구리수요, 2000년대 중국 고도성장 때와 비슷

지난 주말 기준 런던금속거래소에서 구리 1메트릭톤의 가격은 9993.25달러를 기록해 지난해 같은 날 5751.00달러보다 73.77%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올해 상반기에 구리 가격이 1만2000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구리는 전도성과 연성이 뛰어나고 가공이 쉬워 주요 전력 관련 제품에 필수적인 광물이다. 전기차 배터리의 음극재, 반도체 배선의 원료, 신재생 에너지 발전 시설 및 송전 설비, 에너지 저장장치 등 모든 전력 관련 제품에 널리 쓰인다.

신재생 에너지 분야에서 구리는 필수재나 다름 없다. 해상풍력의 경우 MW당 10.5톤, 태양광은 MW당 5.5톤의 구리가 필요하다. 이에 따라 친환경 분야 구리 수요는 지난해 153만4000톤으로 전체 구리수요 2335만4000톤의 6.6%였지만 2025년에는 전체 2682만2000톤의 11.7%인 313만4000톤까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국제에너지기구(IEA)는 파리기후협정 목표 충족을 가정해 만든 ‘지속가능개발 시나리오’에서 구리 수요가 향후 20년 동안 두 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중국 경제 성장에 따라 구리 수요가 급격히 증가한 2000년대와 비견되는 가격 상승이 나타날 수 있다는 전망이다. 2000년 190만톤이었던 중국의 전기동 수요가 2010년 740만톤으로 380%이상 증가하면서, 구리 가격은 2011년 1월 1만190달러까지 상승한 바 있다.

진종현 삼성증권 연구위원은 지난달 12일 보고서에서 “친환경 산업의 구리 수요 증가 역시 구조적인 변화이며 대규모 신규 수요를 창출한다는 측면에서 구리 가격의 상승압력으로 작용하기에는 충분하다”고 진단했다.

원유생산설비 모형이 오펙 로고 앞에 전시돼 있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커지는 OPEC+ 목소리…”올 여름엔 유가 80달러” 전망 나와

화석연료인 원유 가격도 ‘탄소중립’ 정책으로 인해 상승압력을 받고 있다. 과거 저유가의 바탕이 된 미국 셰일 업체들이 코로나19 충격과 바이든 행정부의 정책 전환 대응 등을 이유로 투자 규모를 줄이면서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비(非)OPEC 주요 산유국들의 모임인 OPEC+(오펙플러스)의 가격 통제력이 강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서부텍사스산중질유(WTI·7월물) 가격은 지난 11일 뉴욕상업거래소에서 배럴당 70.91달러를 기록하며 2018년 10월 이후 최근월물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날 36.34달러와 비교해도 95.13% 상승했다. WTI 가격은 코로나19 충격에 지난 해 4월 20일에는 사상 처음 마이너스인 배럴당 –37.63달러까지 떨어진 뒤, 이후에도 36~42달러 사이를 오르내렸지만, 코로나 백신 접종이 본격화되면서 배럴 당 70달러선까지 올라왔다.

시장에서는 당분간 유가 상승이 멈추지 않을 것으로 본다. 올 여름 배럴 당 80달러선에 이를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국제유가(WTI) 80달러대는 2014년 10월 31일이 마지막이었다. 이같은 유가 상승은 코로나 백신 접종 확산에 따른 석유 수요 증가에도 불구하고, 오펙플러스가 증산에 속도를 내지 않기 때문이다. 오펙플러스는 코로나로 인한 수요 위축을 이유로 지난해 줄인 생산량을 크게 늘리지 않고 있다. 코로나19 이전보다 적은 글로벌 재고로 유가를 높게 유지하고, 이를 통해 코로나19 대응 재정지출과 감산에 따른 손실을 메우려 하고 있는 것이다.

오펙플러스는 코로나19 충격으로 석유 수요가 줄자 2018년 10월 산유량 대비 하루 970만 배럴을 감산하기로 지난해 4월 합의했다. 이같은 2018년 10월 산유량 대비 감산 규모는 지난해 8월 하루 770만 배럴, 올해 1월 하루 580만 배럴로 단계적으로 축소할 계획이었다. 지난해 8월부터 하루 생산량을 200만 배럴 늘리고, 올해 1월부터 하루 생산량을 다시 190만 배럴 더 늘리겠다고 예고한 것이다.

그러나 오펙플러스는 지난해 12월 말을 바꿔 올해 1월부터 추가로 증산할 물량은 기존에 공언한 ’190만 배럴'이 아닌 ’50만 배럴'이라고 발표했다. 코로나19로 인한 수요 감소세가 개선되지 않아 공급 과잉이 우려된다는 이유였다. 이에 올해 1월부터 감산폭은 2018년 10월 산유량 대비 720만 배럴이 됐다. 오펙플러스는 이후 1~2개월 주기로 회의를 열면서 생산량을 조금씩 늘려 2018년 10월 산유량 대비 감산 규모를 6월 620만 배럴, 7월 580만 배럴까지 축소했다. 그러나 이는 지난해 4월 감산 때 약속한 시간표보다 반 년이 늦어진 것이다.

그나마 최근 이뤄지고 있는 감산폭 축소도 실질적인 공급 확대로 이어지기 힘들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감산량 축소로 나타나는 증산효과가 코로나 충격을 극복하고 회복중인 세계 석유 수요 증가폭을 메우기에는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여름철 발전용 원유 수요 증가분만 해도 하루 평균 50~60만 배럴에 이르기 때문에, 최근 증산 규모는 주요 산유국의 여름철 냉방을 위한 발전용 수요가 늘어나는 것을 충족시킬 정도”라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국제유가동향(WTI, 달러/배럴)/출처=NYMEX

◇수압파쇄법 논란, 공유지 석유개발금지...시련의 美셰일업계

국제 유가 상승에도 원유 공급의 또 다른 주체인 미국 셰일업체들은 생산을 늘리기 어려운 상황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주(州)는 지난 4월 23일 3년 후부터 수압파쇄(프래킹) 공법에 대한 신규 허가를 중단한다고 밝히는 등, 셰일 업체들 앞에 놓인 정책 리스크가 크기 때문이다.

수압파쇄법은 지하 퇴적층인 셰일층에 화학물질과 모래를 섞은 물을 고압으로 쏴 셰일 가스를 채취하는 방식이다. 채굴 후 폐수로 인한 지하수 오염 및 지반 침하 등의 우려에 반대 목소리가 커졌다. 지난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기간에는 버니 샌더스, 엘리자베스 워런 후보 등이 수압파쇄법 금지를 공약으로 내걸기도 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대표적 경합주이면서 에너지 산업 비중이 큰 펜실베이니아 여론을 의식해 수압파쇄법을 용인하고 있지만, 공유지 석유개발금지 행정명령으로 업계에 부담을 줬다.

더 큰 문제는 미국 셰일업체들의 생산능력 증가세가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글로벌 수요가 오펙플러스의 여유 생산능력에 의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주요 산유국에서 지정학적 이유 등으로 공급 충격이 발생할 경우, 시장 변동성이 극대화될 수 있다.

이정성 한국석유공사 석유동향팀 과장은 이와 관련 “장기간의 상류부문(탐사, 시추, 생산 등) 투자 부족과 팬데믹으로 인해 공급능력이 현저히 약화된 상태에서 단기간 내 수요가 폭발할 경우, 오펙플러스의 잉여생산능력에만 의존해야 한다는 리스크를 마주하게 되는 것이 포스트 팬데믹 시대 석유시장의 모습”이라고 말했다.

지난 3월 24일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철근 공장 직원들이 전기로에서 생산된 쇳물이 연속 주조 설비를 거쳐 가래떡처럼 뽑아져 굳어진 제품(빌릿)을 하나하나 검수하며 품질을 확인하고 있다. 현대제철은 지난 2009년 이후 8년 만에 처음으로 명절 연휴에 철근 공장을 돌렸다. /연합뉴스

◇공사 멈춰세운 ‘철근난’, 중국 ‘탄소 줄이기’ 영향

중국은 올해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해 철강 생산감축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철강산업은 생산과정에서 석탄 및 천연가스 등 탄소계 환원제를 쓴다. 철강 1톤을 생산할 때 약 2톤의 이산화탄소가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업계에서는 탄소 발생 없는 수소환원제철 기술을 연구중이나 먼 미래의 일이다. 이에 중국은 아예 생산량을 줄이는 조치를 취했다.

이같은 조치가 코로나19 충격 회복에 따른 철강 수요 증대와 맞물렸다. 미국과 일본 등의 철강생산 회복속도가 더뎌 수급 문제가 생겼는데, 중국이 내수 공급을 위해 수출 억제책을 내놓으면서 생산량도 줄였기 때문이다. 이에 유통사나 수요자들이 물량 확보전쟁을 시작하면서 가수요가 폭발했다. 결국 지난달 미국 열연강판의 전년동기 대비 가격 상승률은 216%까지 치솟았다. EU도 199%에 달한다. 사상최고 수준의 철강 가격이다.

국토교통부 등에 따르면 올해 1월 이후 전국 369개 공공공사 현장에서 철근이 없어 지연된 평균 공사기간은 40일이다. 더 큰 문제는 다가오는 장마철 등에 발생할 수 있는 수해복구용 철근 수급에도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철근 공급난을 풀기 위해 통상 여름철에 진행하던 국내 철강사들의 설비 보수일정을 미뤄 가동률을 높이는 고육책까지 꺼냈다.

독일 프라이부르크 시(市)에 위치한 한 빌딩 지붕에 설치된 대형 태양광 패널. 고유가에 따른 에너지 가격 폭등이 현실화되면서 세계 각국이 태양광, 풍력, 바이오 연료 등 재생에너지 개발에 적극 나서고 있다.

◇美테이퍼링 여부도 원자재 가격 중요 변수

글로벌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조기 테이퍼링 가능성이 제기되는 것도 원자재 슈퍼사이클 가능성에 주요 변수가 될 전망이다. 연준이 테이퍼링에 대한 의지를 강조할 경우 원자재 가격 상승을 부추긴 달러 약세가 진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주요 외신에 따르면, 미 연준은 이미 테이퍼링(자산 매입 축소)에 대비하도록 만드는 작업의 초기 단계를 시작했고, 이르면 가을이 오기 전에도 테이퍼링 결정을 발표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연준은 이미 이달 초 지난해 유통시장 기업신용기구(SMCCF)를 통해 매입한 회사채와 ETF를 올해 연말까지 모두 매각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 때문에 오는 15~16일 열릴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 결과가 원자재 가격 방향성에 중요한 단초를 제공할 수 있다.

하근철 전 국제금융센터 부원장은 이와 관련 “만약 이달 FOMC에서 조기 테이퍼링에 대한 시그널을 제시하게 된다면 글로벌 달러 약세가 강세로 전환하고, 이런 점이 원자재 가격 상승을 제어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면서 “이 경우 원자재 가격은 수급 요인만으로 움직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은행이 지난 9일 발간한 ‘국제원자재가격 상승배경 및 국내경제에 대한 파급영향 점검’ 보고서에 따르면, 원자재 가격이 추세적으로 약 10% 상승할 경우 소비자물가는 4분기 이후 최대 0.2% 상승하고, 이후에도 장기간에 걸쳐 충격의 효과가 이어진다고 분석했다.

현재의 원자재가 상승이 수퍼사이클로 가는 추세적인 흐름인지, 아니면 일시적인 상황인지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의 견해가 엇갈린다. 다만, 과거 원자재 수퍼사이클이 주요 경제권의 산업화, 기술혁신 등에 따라 촉발됐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친환경 산업의 동향 및 파급 효과를 주시하면서, 에너지와 관련된 인플레이션 대응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의 원자재 가격 상승을 ‘일시적 현상'으로 단언할 수 없다는 얘기다.

한은 관계자는 “원자재 가격이 가장 최근의 사이클 저점에서 소폭 반등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이에 기반하여 수퍼사이클 진입여부를 명확히 판단하기에는 아직 불확실성이 큰 상황”이라면서도 “그린경제(Green Economy)가 향후 원자재 수퍼사이클을 결정짓는 주요 동인이 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