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원자재 가격의 가파른 상승이 인플레이션(지속적인 물가 상승)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원자재 가격이 추세적으로 약 10% 상승할 경우 올해 4분기 이후 국내 소비자물가는 최대 0.2% 오르고, 이 충격의 여파가 장기간에 걸쳐 지속될 것이란 설명이다.

한국은행은 9일 발표한 ‘국제원자재가격 상승배경 및 국내경제에 대한 파급영향 점검’이라는 ‘BOK이슈노트’ 보고서에서 “최근 국제 원자재 가격의 가파른 상승으로 인해 글로벌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고 있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철강 업종은 원자재 수입단가 하락으로 수혜가 기대되고 있다. 충남 당진 현대제철 제2고로에서 근로자가 쇳물 작업을 하고 있다(조선일보 DB)

최근 유가, 구리, 철광석, 곡물 등 국제 원자재 가격이 치솟고 있다. 이날 국제유가는 WTI(서부텍사스산원유) 기준으로 2년 8개월 만에 배럴당 70달러를 넘어섰고, 구리 가격은 연초 대비 30% 뛴 톤(t)당 9848달러를 기록했다.

세계 경기 회복에 따른 수요 증가, 일부 품목의 공급 차질, 투기수요 유입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원유는 주요국의 경제 활동이 재개되고 이동 제한 조치가 완화되면서 수요가 늘었다. 금속은 제조업 정상화, 목재는 코로나 이후 주택 관련 지출이 늘어난 점이 영향을 미쳤다.

이처럼 원자재 수요는 급증한 가운데 빚어진 수급차질이 원자재 가격 상승을 부채질하고 있다. 원유는 코로나19 이후 누적된 과잉재고 해소를 위해 석유수출국기구(OPEC) 플러스(+) 산유국들이 강도 높은 감산을 단행했고, 알루미늄과 철강의 경우 중국과 호주의 갈등이 고조되면서 공급 부족 우려가 커지는 양상이다.

시장에서는 이같은 원자재 가격 상승 흐름이 일시적일지, 아니면 장기 상승 국면으로 접어드는 이른바 ‘슈퍼사이클(Super Cycle)’로 발전할지 여부에 주목하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세계 주요국이 기후변화에 대응해 추진하는 친환경 정책의 일환으로 관련 인프라 투자를 확대하는 과정에서 구리, 니켈 등 관련 원자재 가격의 상승세가 이어질 수 있다고 전망한다. 일례로 전기차 생산이 늘면 전기차에 전선 형태로 들어가는 구리와 주요 부품인 배터리(이차전지)의 핵심 소재인 니켈, 코발트, 망간, 알루미늄 등의 수요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반면 신흥국 경제가 고성장세를 회복할 가능성이 크지 않아 슈퍼사이클로 진입할 가능성은 낮다고 주장도 나온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현 시점에서 원자재 가격의 슈퍼사이클 진입 여부를 판단하기엔 불확실성이 큰 상황”이라며 “향후 원자재 가격은 주요국의 친환경 정책과 원자재 생산국의 생산능력 확충 등의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원자재 수입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원자재 가격 상승이 국내 경제에 미치는 비용 충격이 예상보다 크다고 보고서는 평가했다. 원자재 가격 상승은 시차를 두고 중간재 가격을 올리고 최종적으로 소비자물가 상승을 초래한다는 설명이다. 대표적으로 원유 가격이 상승하면 통상 2~3주의 시차를 두고 휘발유·등유 가격이 올라 교통비와 난방비 인상으로 이어지는 식이다. 옥수수와 밀, 콩 등 곡물 가격이 오르면 중간재인 밀가루, 전분 등의 가격이 상승해 결과적으로 외식비와 가공식품 가격이 오른다.

또 원자재 가격 오름세가 지속될 경우 경제 주체의 물가상승에 대한 자기실현적 기대가 형성되면서 실제 물가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서는 분석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원자재 가격이 추세적으로 약 10% 상승할 경우 소비자물가는 4분기 이후 최대 0.2%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원자재 가격 급등이 일시적인 현상에 그칠 경우에도 소비자물가는 0.05% 오를 것으로 집계됐다. 원자재 가격 상승 흐름이 슈퍼사이클로 진입할 경우 파급효과는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김정성 한은 조사국 물가연구팀 차장은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충격의 여파가 장기에 걸쳐 지속되는 것으로 분석됐다”면서 “향후 경제활동 정상화 과정에서 생산자물가나 기대인플레이션 경로를 통해 물가상승 압력이 예상보다 커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만큼, 물가 추이를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