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 확산으로 인한 ‘대봉쇄’를 겪은 글로벌 경제가 살아나고 있다. 코로나 백신 접종이 본격화되면서 주요국 경제가 빠르게 정상화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IMF(국제통화기금) 등 국제기구들은 올해 세계경제가 6.0% 수준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경제활동이 정상화되면서 전세계적으로 인플레이션에 대한 시각이 바뀌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0년 이상 지속된 ‘저성장·저물가'라는 뉴노멀(New normal)에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는 전망도 고개를 들고 있다. 이에 인플레이션에 대한 최근의 논의 흐름을 짚어보고, 주요국 정부와 중앙은행의 대응 방향에 대해 짚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최근의 물가 상승은 일시적(transitory)이며, 우려할 수준의 인플레이션을 유발하지 않을 것이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 3월 22일 하원 금융위원회 청문회)

“올해 물가상승률이 3% 안팎으로 비교적 높게 나타날 것으로 예상한다. 개인적으로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보지만, 앞으로 상황을 예의주시하겠다.”(재닛 옐런 미국 재무부장관, 6월 6일 블룸버그 인터뷰)

미국을 포함한 주요 선진국의 물가가 뛰면서 인플레이션이 ‘뜨거운 감자’로 부상하면서, 미국 경제를 책임지는 최고위층 당국자들의 시각도 바뀌고 있다. 미국의 4월 물가상승률이 예상치를 웃도는 4.2%를 기록한 데 이어 유로존 5월 소비자물가도 1년 전보다 2% 올라 유럽중앙은행(ECB) 물가 목표치를 넘어섰다. 우리나라 5월 소비자물가도 2.6% 상승해 9년 만에 최대폭으로 오르는 등 세계 곳곳에서 인플레이션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시장에서는 중앙은행들이 최근의 물가 상승을 ‘인플레이션’으로 보고 즉각 대응할지, 아니면 관망할지 여부를 놓고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미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와 유럽중앙은행(ECB)은 “인플레이션은 일시적”이라는 진단을 유지하고 있지만, 여기저기서 인플레이션을 우려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재닛 옐런 장관은 지난달까지만 해도 ‘물가상승이 일시적'이라고 일축했지만, 최근에는 인플레 대응을 위한 긴축 필요성에 지지를 나타내고 있는 상황이다.

주요국이 경기부양책을 추진하고 백신 접종을 서두르면서 물가도 상승 국면에 접어들 것이란 의견도 힘을 얻고 있다. 경기 회복에 힘입어 물가 상승세가 가팔라지면 중앙은행들도 기준금리 인상 시점을 예정보다 앞당길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 건물. /EPA 연합뉴스

◇ 옐런 “금리 올라가더라도 美 경제에 도움”

미국에서는 4월 소비자물가 발표 이후 연준과 재닛 옐런 미 재무부장관이 엇갈린 신호를 보내고 있다. 연준은 최근의 물가 상승세는 기저효과와 산업 전반에서 나타난 공급 병목현상으로 인한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하기 때문에 지금의 저금리 기조를 유지하고 월 1200억달러 규모의 채권 매입을 지속하는 완화적 통화정책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고수 중이다.

반면 지난달만 해도 “인플레이션 위험은 크지 않다”고 했던 옐런 장관은 지난 6일(현지시각) 바이든 정부의 돈풀기 정책으로 인플레이션이 내년까지 지속되고 금리를 올리게 되더라도 “이는 미 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든 정부의 4조달러(약 4466조원) 경기부양책에 힘입어 경기가 회복되면 물가가 급등할 가능성이 있고, 이 경우 금리를 인상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내비친 것이다. 사실상 금리인상을 용인하는 ‘긴축 신호’를 보냈다는 분석이 나온다.

월가 전문가들은 오는 10일 발표되는 미국의 5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전년동기대비 4.7%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하반기에는 물가상승률이 2~3%대로 완화될 것이란 시각이 지배적이지만, 일부 비판론자들은 대규모 경기부양책이 지속적인 물가 상승을 부채질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유로존에서는 독일이 인플레이션 조짐을 보이면서 ECB의 테이퍼링 논의를 부추기고 있다. 독일의 5월 소비자물가는 2.5% 상승해 2011년 이후 10년 만에 최대 상승폭을 기록했다. 독일 중앙은행인 분데스방크는 연말이면 독일 물가상승률이 4%까지 치솟을 수 있다며 긴축을 준비해야 한다고 시사했다. 옌스 바이트만 분데스방크 총재는 앞서 지난 2월부터 “물가상승률이 지난해 수준으로 낮게 유지되는 일은 앞으로 없을 것”이라며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를 드러냈다

유로존의 5월 CPI 역시 전년 동기 대비 2% 상승해 2018년 이후 처음으로 ECB 목표치인 ‘2% 미만’을 웃돌았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는 지난 3월 “유로존 물가상승률이 연말이면 2%까지 오를 수 있다”고 전망했는데, 예상 시점보다 빨리 2%대 상승률을 기록했다.

그래픽=박길우

◇ “美 연준. 올 연말에 테이퍼링 시작”…내년엔 금리인상 가능성도

이 때문에 완화적 통화정책을 유지하려는 연준 등 주요국 중앙은행에 대한 비판론도 거세지고 있다. “연준이 인플레이션에 너무 안이하게 대응하고 있다”는 래리 서머스 미 전 재무장관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최근에는 연준 일부 위원들 사이에서도 물가 상승 압력과 시장 과열을 이유로 테이퍼링(자산 매입 축소)을 시작해야 한다는 소수 의견이 나오기 시작했다. 로버트 카플란 댈러스 연준 총재는 지난달 부동산 과열 가능성을 비롯한 인플레이션 신호를 들어 연준이 조기 테이퍼링을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가속 페달에서 발을 천천히 떼는 것이 우리가 정책 전환을 효과적으로 하는 데 현명한 결정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오는 2023년에야 금리인상이 시작될 것이라는 연준의 ‘긴축 스케줄'도 빨라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월가에서는 연준이 올해 연말 테이퍼링(자산매입 프로그램 축소)을 단행하고, 내년 중 금리인상을 시작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제임스 고먼 모건스탠리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25일(현지 시각) 화상으로 진행된 일본 닛케이 파이낸셜 컨퍼런스에 참석해 “연준은 여러 경제지표 중 어떤 것에 의해서든 움직이게 될 것이며, 빠르면 내년 초에 기준금리를 인상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 경제전문매체 CNBC 방송은 7일(현지 시각) 지역 연준 총재 등의 발언을 토대로 연준이 시장을 대상으로 테이퍼링에 대비하도록 만드는 작업의 초기 단계에 돌입했다고 보도했다. 이 매체는 “이르면 오는 15~16일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테이퍼링 문제가 논의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또 연준이 논의를 거쳐 늦여름 또는 초가을쯤에 테이퍼링 결정을 발표하고, 실제 이를 시작하는 시점은 올 연말 또는 내년 초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래픽=이민경

◇ “물가상승 압력 커질수 있다” 한은 경고등…금리인상 시그널 곧 나올수도

지난 4월까지만 해도 “인플레이션 우려는 거의 없다”고 일축한 한국은행은 최근 소비자의 체감 물가와 기대 인플레이션이 오르고 있다는 점을 주시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5월 소비자물가가 2.6% 치솟아 9년 만에 최고 상승한 데 대해 “기저효과가 크게 작용했다”면서도 “경제활동 정상화 과정에서 수요·공급 측면의 물가상승 압력이 예상보다 커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인 만큼, 인플레이션 추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물가상승 압력이 커질 수 있다”는 한은의 평가는 ‘일시적 물가상승'을 강조한 기획재정부의 평가와 대비되기도 했다.

앞으로 경기 회복에 따른 내수 활성화, 국제유가 상승세 지속, 정부의 추가 경정예산안 편성 등 추가 재정지출의 여파로 물가 상승 압력이 커지면 한국은행이 금리인상을 서두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달 27일 “연내 금리인상 여부는 경제 상황의 전개에 달려있다”면서 “경제 회복 흐름과 속도, 강도 등을 조금 더 지켜보면서 통화정책을 운용해나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한은 내부에서도 코로나19 사태로 역사적으로 최저 수준인 연 0.50%까지 내려간 기준금리의 정상화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한은 고위 관계자는 “금리가 현재 경제 상황에서는 낮다는 평가가 나오면서 금융통화위원회 내부에서도 매파적 시각이 강해지고 있다”며 “코로나19라는 전례없는 경제 충격을 견디기 위해 필요 이상으로 기준금리를 낮춘 부분에 대해서는 정상화해야 한다는 인식에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주열 총재가 5월 금통위 기자간담회에서 ‘통화정책의 완화기조를 유지할 것'이라는 기본 방침에 ‘당분간’이라는 조건을 달았다는 점을 주목한다. 금통위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당분간’이라는 표현은 한, 두달 사이에 정책 변화가 있을 수 있음을 시사하는 표현”이라면서 “이르면 다음번 금통위부터는 금리인상 소수의견이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급증하는 가계부채에 대한 우려도 한은이 조기 금리인상을 고려하게 된 요인으로 꼽힌다. 우리나라의 가계 빚은 코로나로 인한 생활고, 내 집 마련을 위한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음)’ 대출, 주식시장 활황에 신용대출까지 끌어다 쓰는 ‘빚투(빚내서 투자)’가 겹치면서 올 1분기 사상 최대인 1765조원을 기록했다. 이 총재는 “금리를 인상하면 가계의 이자 부담이 커지는 것은 불가피하지만, 가계부채 증가세가 지속되면 부작용이 크고 다시 조정하려면 더 큰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고 했다. 가계부채 속도를 조절하고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금리를 올려야 한다고 시사한 것이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올해 경제 성장률 전망치가 4%로 경제 회복 속도가 빠를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향후 수요 측면에서 물가 상승 압력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면서 “가계부채 부담이 큰 상황에서 추가 인플레이션 압력까지 생긴다면 곧바로 금리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기준금리 추이./한국은행

◇ FT “코로나 이후 중앙은행 인플레 대응 제각각”

다만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물가를 보는 중앙은행의 시각이 달라졌기 때문에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더라도 중앙은행이 테이퍼링이나 금리인상을 서두르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중앙은행들은 한때 인플레이션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지만 코로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바뀐 경제 환경에서 안정적이고 낮은 수준의 물가 상승률을 유지하는 방법을 두고 의견을 모으지 못하고 있다”면서 “지난 몇년간 기준금리를 낮추고 물가상승률 목표치를 약 2%로 잡아온 중앙은행들은 최근 각기 다른 전략을 취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연준은 수십년간 잠재적인 인플레이션 우려에 대응해 선제적으로 금리인상을 단행해왔는데, 이런 기조를 바꿔 완전고용을 달성하는 데 집중하기로 했다. 연준은 지난해 8월 ‘평균물가목표제'를 도입하면서 물가가 목표치인 2%를 넘기더라도 일정 기간 이를 허용하는 방향으로 통화정책을 개편했다. 수년간 물가상승률이 목표치를 밑돌았기 때문에 향후 물가가 상당기간 완만하게 2%를 웃돌더라도 금리를 올리지 않는다는 방침이다. 평균물가목표제는 장기적으로 달성해야 할 물가상승률 목표치를 미리 제시하고 이에 맞춰 통화정책을 운용하는 ‘물가안정목표제’보다 유연한 제도라는 평가를 받는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2% 이상의 물가 상승률이 상당 기간 지속되기 전까지 금리를 인상하지 않겠다”고 거듭 강조해왔다.

아울러 연준은 물가안정보다 고용에 더 큰 비중을 두는 ‘완전고용 달성'을 장기 목표에 추가했다. 고용에 초점을 맞춘 전략이 미 저임금 근로자와 소외계층에 도움이 될 것이란 판단에서다. 특히 경제와 소비가 살아나 소외계층이 일자리를 구할 때까지 일정 수준의 인플레이션과 실물경제 과열을 감내하겠다는 것이다. 고용 등의 경제 지표가 지속적으로 개선되는 것을 확인한 뒤 연준이 대응하겠다는 의도다.

ECB 역시 물가상승률이 목표치인 ‘2% 근접'을 웃돌 경우 얼마나 더 용인해야 할지를 두고 논쟁에 빠졌다고 FT는 전했다. 라가르드 ECB 총재는 “최근의 높은 물가상승률은 예외적이고 일시적인 요인에 따른 것이며, 내년이면 상승폭이 완화될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장민 금융연구원 선임 연구위원은 “최근 물가 상승은 지난해 기저효과 영향이 큰 측면이 있어, 이런 흐름이 기조적인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질지가 관건”이라며 “전 세계 중앙은행들이 물가 상승에 즉각적으로 대응하는 통화정책이 사회 양극화를 조장할 수 있다는 고민을 하고 있기 때문에 한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고 각 나라의 상황에 따라 다르게 대응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