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전세계적인 차량용 반도체 공급 부족 사태 등에 대응하기 위해 'K-반도체 전략'을 발표하자 경제계 일각에서는 '대기업 감세 제도'인 임시투자세액 공제(이하 임투 공제)가 부활한 것이나 다름 없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지난 2011년에 일몰이 종료된 임투공제는 기업의 시설투자에 일정 수준 이상 법인세 공제 등 세제혜택을 부여하는 제도다.

이런 반응이 나오는 이유는 반도체 등 핵심전략기술에 특정해 시설투자 세액 공제율을 6~16%로 대폭 끌어올리는 방향으로 통합투자세액공제 제도를 개편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대기업 기준 시설투자세액 공제율이 최대 6배까지 확대된 것이다. 반도체 연구개발(R&D) 비용에 대해 대기업, 중견기업은 최대 40%, 중소기업은 최대 50%까지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게 됐다. 핵심전략기술 기준의 추가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의 반도체 시설투자 공제는 현재보다 2배 이상 늘어나게 됐다.

이같은 반도체 등 핵심전략기술에 대한 투자세액공제 확대는 지난해 제도 도입이 확정됐고, 사실상 내년부터 시행되는 통합투자세액공제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통합투자세액공제는 기업의 설비투자에 네거티브 방식의 세액공제를 실시하지만, 공제율을 최소 3%에서 1%로 낮추는 효과가 있다. 대기업 기준 6% 세액 공제 항목이 등장하면서 기업들이 반도체와 마찬가지로 핵심전략기술로 지정해 달라는 요구를 하기 시작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통합세액공제 첫해, 시험대에 오르다

이번 K-반도체 전략으로 핵심전략기술 시설투자에 6% 이상 세액 공제를 제공하기로 한 조치는 사실상 내년부터 본격 시행되는 통합세액공제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7월 세법개정에서 당시 ▲연구시험용 및 직업훈련용 ▲에너지 절약 ▲환경 보전 ▲근로자 복지 증진 ▲안전 ▲생산성 향상 등 9개 시설 투자에 대해 혜택을 줬던 '특정시설투자세액공제'를 폐지했다. 중소기업 등 투자세액공제와 통합해 1개로 단순화하고, 공제율도 단일화했다. 종전 9개 항목에 대한 투자세액공제 제도는 올해까지만 유지되고 내년부터는 시행되지 않는다.

정부가 지난해 세법개정을 통해 도입한 통합세액공제는 특정 공제 대상 시설을 지정하는 대신 모든 사업용 유형자산에 대한 투자에 세액공제 혜택을 부여하는 '네거티브' 방식이다. 기업들의 모든 시설 투자로 세액 공제 대상을 넒혔지만, 기존 투자세액공제를 받았던 기업 입장에서는 세액 공제율이 최소 3%에서 1%로 낮아지게 된다. 정부는 시행령을 통해 신성장·원천기술로 지정된 몇몇 업종에 제한적으로 세액 공제율을 최소 3% 이상으로 높여 운용하고 있다.

K-반도체 전략으로 도입되는 핵심전략기술에 대한 6~16% 세액 공제는 1982년 처음 도입됐다가 2011년 종료된 임시투자세액공제와 유사하다는 평가를 듣는다. 임투공제가 마지막으로 운용된 2011년 당시 ▲제조업 ▲건설업 ▲도소매업 ▲전기통신업 등 29개 업종에 대해 설비투자금액의 최대 7%를 법인·소득세에서 공제해줬다.

이 제도는 투자액 지출 규모가 큰 대기업일 수록 세금 혜택이 늘어난다는 맹점 때문에 대기업 감세 제도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2012년부터 임투공제가 사라진 것도 이런 지적 때문이었다. 현재의 집권 여당인 민주당이 야당 시절 임투제도의 종료를 강력하게 요구했다. 일각에서는 "K-반도체 전략으로 도입되는 통합투자세액공제상 핵심전략기술에 대한 세액공제 또한 삼성전자(005930)SK하이닉스(000660)가 투자를 늘릴 수록 세수감면액이 커지는 구조"라고 지적한다.

반도체 기술 투자 세액공제 기준 /기재부

◇ "기업들 '너도나도' 핵심전략기술 지정해달라" 요구할 수도

이번에 도입하는 핵심전략기술 기준 추가가 결국 임시투자세액공제의 부활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반도체 공급 대란과 같이 이유가 생길 때마다 지원 명분으로 핵심전략기술에 다양한 산업을 포괄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가령 전세계적 '탄소 배출량 감축'을 명분으로 대규모 전력을 소비하는 산업시설을 보유한 산업들도 핵심전략기술로 해석될 여지가 있고, 스마트팜도 미래 먹거리라는 이유로 핵심전략기술로 포함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한 회계법인 관계자는 "핵심전략기술은 통합투자세액공제를 임시투자세액공제화하는 시작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며 "해석에 따라 많은 산업을 핵심전략기술에 포함시킬 수 있는 것이고, 여기에 일단 포함되면 대기업이어도 추가 공제를 받을 수 있게 된다는 점이 상당히 유사"하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통합세액공제를 야심차게 내놓았던 기재부 세제실은 이 같은 지적에 대해 아무 산업이나 핵심전략기술로 포괄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시행령을 통해 엄격하게 공제 대상 산업을 정할 것"이라며 선을 그었다. 한번 핵심전략기술 산업으로 포함되면 쉽사리 배제하기도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과거 임시투자세액공제 해당 업종이 30개에 육박했던 점을 고려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법인세율은 높은데 공제율만 늘려서는 땜질식 처방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장기적으로 기업 활력을 되살릴 수 있는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비판이다. 정부는 문재인 대통령의 법인세 인상 공약에 따라 2018년 법인세 최고세율을 22%(지방세 포함 시 24.2%)에서 25%(27.5%)로 올렸다.

36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지난 10년 동안(2010년 대비 2019년) 법인세 최고세율(지방세 포함)을 올린 나라는 한국을 포함해 9개국뿐이었다. 20개국이 법인세를 내렸고, 7개국은 유지했다. 한국의 법인세 최고세율은 2016년까지 OECD 평균보다 낮았지만 지금은 OECD 평균보다 높아졌다.

한 기재위 소속 야당 의원은 "법인세 명목 세율을 다른 나라보다 훨씬 높은 수준으로 올려놓은 상황에서 특정 산업에 대한 세액 공제를 비정상적으로 높이는 것은 특혜 시비를 낳을 수 밖에 없고 조세형평성 관점에서도 맞지 않다"면서 "세액공제 방식보다는 재정지출을 통해 기업들에 필요한 인프라 투자를 확대하거나, 아예 법인세 명목세율을 낮추는 게 맞는 방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