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를 규제하는 특금법이 금융위 소관이기에 가장 가까운 부처는 금융위가 아닌가 싶다.”

지난달 27일 세종시 기획재정부 기자실을 찾아온 홍남기 국무총리 직무대행 겸 기재부 장관은 ‘가상화폐 정책 주무부처가 아디냐”라는 질문에 이같이 말했다. 기획재정부가 아니라 금융위원회가 가상화폐를 다룰 주무부처가 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그간 마스크 수급 부족 문제, 부동산 대책 등을 만들 때마다 경제총괄 부처라는 점을 강조하며 기재부의 주도권을 앞세우던 평소 태도와는 상반된 모습이었다.

하지만 홍 부총리가 바통을 넘기려고 했던 금융위는 “가상화폐에 화폐 기능이 있으니 기재부가 맡아야 한다”며 철벽을 치고 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가상화폐가 제도권으로 안 들어왔으면 좋겠다면서 부정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가 펼친 반(反)가상화폐론에 분노한 20·30대 수만명이 은 위원장의 사임을 촉구하는 청와대 청원에 동의하기도 했다.

가상화폐 주무부처를 둘러싼 기재부와 금융위가 핑퐁게임에 금융계에서는 ‘한심스럽다'라는 반응이 나온다. 전형적인 관료들의 복지부동 행태를 보이고 있다는 평가다. 미국이나 일본 등 주요국이 가상화폐를 순차적으로 제도화하면서 투자자 보호에 나선 마당에 우리 정부는 책임떠넘기기에만 급급하기 때문이다. 여론을 의식한 국회에서 입법 움직임이 나오고 있지만 정부는 여전히 부처 간 신경전 속에서 주무부처를 정하지 못하고 있다.

홍남기(오른쪽)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과 은성수(왼쪽) 금융위원장이 지난해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갖고 있다.

◇美·유럽·日 등 주요국은 가상화폐 단계적 제도화…韓은 지지부진

지지부진한 한국의 상황과는 달리 미국이나 일본 등 주요국은 가상화폐를 단계적으로 제도화하고 투자자 보호에 나서고 있다. 미국은 투트랙으로 가상화폐를 규제하고 있는데 연방 기구인 증권거래위원회(SEC)와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가 증권형 가상화폐를 금융·증권 상품으로 규제하고, 가상화폐 거래소 같은 유통시장은 개별 주법으로 관리·감독한다.

일본은 2014년 가상 화폐 거래소 ‘마운트곡스’ 해킹 사건을 겪으며 가상화폐 관련 규제 법안을 도입했다. 법안 개정을 거쳐 현재는 가상화폐 교환업자 당국에서 인허가를 받도록 규정했고, 거래소는 가상화폐 불법 유출을 막기 위해 자산을 안전하게 보관해야 할 의무도 지닌다. 또 거래소에 가상 화폐를 상장하려면 금융청의 사전 심사를 거쳐야하한다.

홍콩과 싱가포르도 가상화폐를 투자 상품으로 규정하고 제도화했다. 지난해 11월 홍콩 재무국은 증권선물위원회가 모든 가상 화폐 거래를 감독하도록 하는 내용의 규제안을 발표했다. 싱가포르는 지난해 1월부터 ‘지불서비스법’을 통해 블록체인 및 가상화폐 사업자가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영업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유럽연합(EU)은 2024년까지 포괄적인 가상화폐 규제안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반면 한국 정부는 “과세는 하되 보호는 하지 않겠다”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가상화폐가 화제가 됐던 2018년부터 꾸준히 제재 필요성이 제기됐지만 관련 규제 법안도 도입되지 않았고, 부처별로 가상화폐에 대한 개념 정리조차 되지 않은 상황이다. 지난 3월부터 시행된 개정 특정거래금융법 역시 가상자산사업자에게 자금세탁방지 의무를 부여할 뿐 가상화폐 시장을 제도화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가상자산으로 얻은 소득에 대해서 과세만은 하겠다는 태도로 시장의 원성을 사고 있다.

<YONHAP PHOTO-2464> 비트코인 6천800만원대 거래…이더리움 클래식과 비트코인 캐시 등도 급등 (서울=연합뉴스) 윤동진 기자 = 6일 오전 국내 거래소에서 가상화폐의 대표주자 격인 비트코인이 6천800만원대에서 거래되고 있다. 알트코인(비트코인을 제외한 대안 가상화폐) 가운데 이더리움 클래식과 비트코인 캐시 등도 급등했다. 사진은 서울 빗썸 강남센터 시세 전광판에 표시된 코인 시세. 2021.5.6 mon@yna.co.kr/2021-05-06 10:29:38/ <저작권자 ⓒ 1980-2021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여론 분노에도 정부는 ‘제도화' 여전히 부정적…”혁신과 위험관리 위해 필요”

여론이 최악으로 치달은 것도 정부의 이런 이중적 태도 때문이다. 투자자 보호는 없이 세금 부과만 결정한 것이 이해할 수 없는 처사라는 반발이다. 파장이 예상보다 크자 정치권에서도 이를 의식해 여야를 막론하고 가상화폐 관련 법안 발의에 나섰다. 대표적인 것이 정무위원회 여당 간사인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예고한 업권법이다.

김 의원이 마련한 법안에는 가상자산 시장을 ‘산업’으로 정의하고 가상화폐 투자자 보호, 업계 운영형태, 투명한 시장환경 조성을 위한 내용이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시행 중인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은 자금세탁 방지에만 초점을 맞춘 법으로 투자자와 사업자를 보호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업계 반응을 반영했을 것이라는 예상이다.

국회에서의 입법 논의는 본격화되고 있지만 입법화까지의 여정이 순탄치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가상자산 제도화에 부정적인 입장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부겸 국무총리 지명자는 인사청문회 서면 답변서를 통해 “가상자산은 기초자산이 없어 가치 보장이 어렵고 가격변동성이 매우 높아 화폐나 금융상품으로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업계와 가상화폐 전문가들은 정부가 가상화폐를 제도권 안에 편입시킬 필요성을 인지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투자자들이 마주할 위험을 관리하면서 블록체인 기술 등 혁신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제도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박종백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기술은 장려하지만 가상자산업은 억제하는 분위기로, 제도와 법률 관련 논의는 광범위하게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면서 “정보 비대칭성으로 인한 시장 왜곡 가능성, 가상자산 사업자의 운영 위험 등이 있다. 혁신을 장려하고 위험을 관리하려면 제도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업권법에 대해서는 가상화폐 시장에 특혜를 줄 여지가 있다는 반대 목소리도 나왔다. 아직 내용이 명확하지 않은 만큼 이해관계가 섞일 경우 자본시장에 준하는 규제를 가하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형중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암호화폐연구센터장)는 “기존의 법으로도 사기 등을 충분히 보호할수있는데 굳이 업권법을 제정한다는 것은 가상화폐 업계에 대한 특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