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유가와 농축산물 상승으로 4월 소비자물가가 전년 동월 대비로 3년 8개월만에 최대폭으로 상승했다. 석유류가 2017년 3월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올랐고, 파 가격도 전달보다 상승폭은 줄었지만 여전히 280% 올랐다. 당분간 국제유가와 식료품 가격의 상승세가 이어질 것으로 관측되면서, 소비자물가 상승세도 지속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보급과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로 소비심리가 일부 회복되면서 외식 물가도 2019년 6월 이후 가장 많이 올랐다. 집세도 2017년 12월 이후 가장 많이 올랐다.

코로나로 위축된 경제활동이 정상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석유류와 식료품 가격 등 공급 측면에서 물가상승이 나타나는 것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비용 상승으로 인한 체감 물가 급등이 가계의 가처분 소득을 줄여 경제 위기 극복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 국제유가 상승 등으로 4월 소비자물가 3년 8개월만에 최대 상승

통계청이 4일 발표한 ‘4월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4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07.39으로 전년 동월 대비 2.3%, 전월 대비 0.2% 상승했다. 이는 2017년 8월에 2.5%를 기록한 이후 가장 높은 것이다. 농산물및석유류를 제외한 물가지수인 근원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1.4% 상승했다. 어운선 통계청 경제동향통계심의관(국장)은 “국제유가 상승과 경제 심리 개선이라는 공급과 수요 측면에서 모두 상승 요인이 있었다”며 “지난해 국제유가가 낮았던 데에 따른 기저 효과도 있는지라 당분간 오름세는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국제유가 상승 영향으로 석유류는 전년 동월 대비 13.4%, 전월 대비 1.5% 상승했다. 석유류는 전년 동월 대비로 지난 2017년 3월(14.4%) 이후 가장 많이 올랐다. 국제유가 상승 영향으로 휘발유가 13.9%, 경유가 15.2%, 자동차용 LPG가 전년 대비 9.8%씩 올랐다. 석유류 가격이 오르면서 공업제품 가격도 전년 동월 대비 2.3% 올랐다. 이는 지난해 1월(2.3%) 이후 가장 많이 오른 것으로, 코로나19 확산 이후 최대 상승폭이다.

지난 2019년 12월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했던 국제유가는 지난해 4월 배럴당 15.06달러까지 떨어졌었다. 저점을 찍은 국제 유가는 5월 배럴당 35.49달러, 6월 배럴당 39.27달러로 상승세를 나타내면서 올해 2월에는 배럴당 61.5달러까지 회복했다. 3월 들어 국제 유가는 수요 회복 지연 우려로 배럴당 59.16달러로 소폭 떨어졌다, 4월에는 배럴당 60달러대를 회복했다.

이 같은 국제유가 상승 기조는 향후에도 이어질 것으로 관측된다. 3일(현지시각)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6월물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전날보다 91센트(1.4%) 오른 배럴당 64.49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런던ICE선물거래소에서 6월물 브렌트유 가격은 전 거래일 대비 80센트(1.2%) 상승한 배럴당 67.56달러에 장을 마감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세계 경기가 회복되면 유가가 오르는 게 당연한 방향”이라며 “전세계적 봉쇄가 완화되면 여행이 늘어날 것이고, 이는 작년에 크게 하락했던 유가를 되돌리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항공 여행이 늘어나면 항공유 가격이 오를 것이고, 국내 여행이 늘어나면 운송 수요가 늘어 기름 값이 상승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세계적으로 수요가 늘어나면 한국은 수출을 늘리기 위해 더 많은 물품을 생산할 것이고, 공장을 더 가동하는 데에 따른 석유류 수요도 늘어날 것이라는 관측이다.

‘20~`21.상 물가지수 및 상승률./기재부

◇ 농산물 가격 고공행 지속…”공급충격發 인플레, 경기회복에 부정적 영향”

농산물 가격도 작황 부진과 고병원 조류인플루엔자(AI)의 영향으로 높은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생선, 해산물, 채소, 과일 등 기상조건이나 계절에 따라 가격 변동이 큰 50개 품목의 물가를 반영하는 신선식품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14.6% 상승했고, 전월 대비로는 1.7% 하락했다. 특히 전년 동월 대비 파의 가격이 270.0% 상승하면서 여전히 세자리대 상승률을 보였다. 파는 지난달에는 305.8% 상승하며 1994년 4월(821.4%) 이후 가장 많이 올랐는데, 이달 들어 상승폭이 소폭 둔화됐다.

신선채소는 전년 동월 대비 19.4% 올랐고, 전월 대비로는 6.7% 하락했다. 신선과실은 전년 동월 대비 19.3% 상승했고, 전월 대비 2.7% 올랐다. 달걀은 전년 동월 대비 36.9%, 고춧가루 35.3%, 돼지고기 10.9% 등 올랐다. 어 국장은 “파는 지난달과 비교하면 출하가 확대되면서 상승세가 둔화되는 상황이나 달걀은 AI가 잦아들었음에도 알을 낳는 산란계가 부족해 높은 상승폭을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물가가 상승하면 가계의 비용이 늘어 가처분 소득이 줄 수 있고, 이는 경기 회복의 발목을 잡는 위험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기회복에 따른 인플레이션이 아닌 체감 물가가 급등하는 것이라서 가계의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식료품 가격의 급등이 물가상승을 견인하고 있는데, 이는 체감 물가 급등으로 이어져 국민들에게 상당한 생활고를 줄 가능성이 있다”며 “다른 나라의 인플레이션은 경기 회복에 따른 결과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유가 상승 등에 따른 공급 충격이 인플레의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기조적인 인플레이션이 시작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냐'는 지적에 정부는 단기적으로 물가 상승 추세는 이어지겠으나, 하반기에는 안정세를 찾을 것으로 내다봤다. 기획재정부는 이날 “5월 및 2분기 소비자물가는 코로나19에 따른 기저효과가 지속되면서 물가 상승폭이 2%를 상회할 가능성이 높다”며 “다만, 연간 기준 2% 상회 가능성은 제한적”이라고 분석했다. 농축수산물 가격 강세가 수확기 도래와 산란계 회복 등으로 점차 둔화되고, 석유류도 국제유가가 60불대에서 안정화될 것이란 예상이다.

이억원 기재부 1차관은 “2분기 일시적 물가상승이 과도한 인플레이션 기대로 확산되지 않도록 정부는 안정적 물가관리에 총력을 다 할 방침”이라며 “국제유가·곡물 등 원자재가격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관련업계 소통·지원을 통해 가격인상 요인을 최소화하는 한편, 시장감시도 병행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