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김범석 이사회 의장이 대기업 오너처럼 회사를 지배하는 쿠팡을 ‘총수없는 대기업’으로 지정했다. 쿠팡은 자산 5조원이 넘어 대기업 관련 규제를 받게되지만, 김범수 의장은 미국 국적이라는 이유로 그룹 총수에 해당되는 동일인 관련 규제를 피하게 됐다. 현행 공정거래법상 외국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할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대해 경제계 안팎에서는 공정위가 왠만한 대기업 총수 못지않는 영향력으로 쿠팡을 지배하는 김범석 의장의 ‘황제 경영’에 면죄부를 줬다고 비판한다. 김 의장이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총수일가 사익편취 규제를 피한 것은 ‘검머외(검은머리 외국인의 줄임말)’에 대한 특혜'라는 지적도 나온다.

다만 공정위는 동일인 제도 개선을 예고하며 이번 지정이 ‘일시적’인 조치라는 점을 강조했다. 기업 환경 변화로 외국인을 기업 총수로 판단할 수 있는 사례를 실효적으로 규제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겠다는 것이다.

김재신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이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하고 있다.

공정위는 29일 올해 자산총액 5조원 이상인 공시대상기업집단(대기업집단)과 동일인(총수) 지정 결과를 발표하고 쿠팡의 동일인을 쿠팡 법인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쿠팡을 사실상 지배하는 주체는 자연인 김범석 이사회 의장이지만, 공정위가 외국인을 총수인 동일인으로 지정한 사례가 없다는 점을 감안해 쿠팡 법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한 것이다.

쿠팡은 자산총액이 5조원을 넘어서 올해부터 대기업집단에 편입됐다. 당초 쿠팡을 ‘총수 없는 대기업집단’으로 지정하기로 가닥을 잡았던 공정위는 형평성 논란이 제기되자 김 의장을 총수로 지정할지를 놓고 고심해왔다.

공정위는 그간 외국계 기업이 대기업집단이 되면 법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해왔다. 에쓰오일은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의 자회사가 최대주주라 에쓰오일 법인을, 한국지엠은 미국 제너럴모터스가 최대주주라 한국지엠 법인을 동일인으로 각 지정한 것이다. 이에 쿠팡 역시 ‘총수 없는 대기업’이 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그러나 시민단체와 업계, 정치권 등에서 쿠팡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김 의장을 총수로 지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고 공정위는 방향을 선회해 김 의장 총수 지정을 검토한 바 있다. 김 의장은 쿠팡 지분을 10.2% 보유했으나 주당 29배 의결권을 가져 실질적 의결권은 76.7%에 달해 쿠팡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다. 시민단체 등에서는 김범석 의장이 쿠팡 내에서 다른 재벌기업 총수와 비슷한 황제경영을 하고 있다는 점도 지적하고 있다.

실제로 경제계 안팎에서는 김 의장의 황제경영이 수차례 회자된 바 있다. 김범석 의장은 회사가 수조원대의 적자를 보고 있음에도 회사 명의로 빌린 수십억원대의 주상복합을 사용했다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전형적인 회사 이익 편취의 한 유형이다. 김 의장의 독단적인 의사결정 등으로 인해 쿠팡 임원들의 재직기간이 1년 남짓이라는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가족을 쿠팡 직원으로 취업시켜 급여를 받게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한다.

이같이 쿠팡 김범석 의장의 황제경영에 대한 비판이 제기됐음에도, 공정위는 최종적으로 모험보다는 안전을 택했다. 쿠팡 창업자인 김 의장이 미국법인(Coupang Inc)를 통해 국내 쿠팡 계열회사를 지배하고 있음이 명백하다고 판단했지만, 외국 국적자를 동일인으로 지정한 사례가 없다는 점을 넘어서지 못했다. 또 김 의장을 동일인으로 지정하더라도 현행법으로 외국인을 제재하는 것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판단도 작용했다.김 의장을 동일인으로 판단하든 쿠팡을 동일인으로 판단하든 계열회사 범위에 변화가 없는 점 등도 감안됐다고 공정위는 설명했다.

이같은 결정으로 공정위는 ‘검은머리 외국인’ 특혜 논란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시민단체와 업계에선 김 의장을 총수로 지정하지 않을 경우 2017년 이해진 네이버 최고투자책임자(GIO)를 총수로 지정한 사례와 달리 ‘외국인 특혜’가 될 수 있고 불공정행위 감시가 어려워진다고 반발하고 있다. 공정거래법상 총수 지정에 명확한 국적 규정이 없고, 김 의장이 실질적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는데도 쿠팡을 ‘총수없는 대기업’으로 지정한 것은 불공정하다는 것이다.

동일인은 공정위에 제출하는 집단지정 자료 관련한 모든 책임을 진다. 자료를 허위제출하면 검찰 고발 대상에도 오른다. 공정위가 동일인을 누구로 지정하느냐에 따라 기업집단 범위와 총수 일가 사익편취 대상 회사가 바뀔 수도 있다.

김재신 공정위 부위원장은 외국인 특혜가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쿠팡의) 동일인 지정 관련 차이점은 김 의장이 지정될 경우 공시의무와 본인이나 친족회사가 사익편취 규제 대상에 적용이 된다는 점인데, 쿠팡 제출 자료를 면밀히 검토한 결과 김범석 개인 소유 국내 회사나 친족 소유 국내 회사가 전혀 없다”면서 “쿠팡을 지정하든 김범석 의장을 지정하든 계열집단에 범위에 전혀 변화가 없고, 사익편취 발생 가능성이 없어서 특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만 공정위는 동일인 지정 제도 개선을 예고하며 이같은 판단이 ‘일시적’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외국인도 동일인으로 판단할 수 있는 사례를 효율적으로 규제할 수 있는 방안 등을 강구하겠다는 것이다.

김 부위원장은 제도 개선 후에 김 의장을 동일인으로 지정할 가능성이 있느냐에 대한 질문에는 “지금 단계에서 말씀드릴 수 있는 사항이 아니다”면서 “먼저 우리 지정제도의 기준 과 요건, 절차 등을 보다 정밀하게 다듬고, 외국인을 지정했을 때 법집행이 가능한지, 문제점은 없는지를 고려해 제도 개선에 나서고, 그 이후에 기준과 요건에 맞는다면 지정할 수도 있지만, 현 단계에서는 김범석 의장 지정 문제를 논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공정위는 향후 동일인 정의·요건, 동일인관련자의 범위 등 지정제도 전반에 걸친 제도개선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연구용역 등을 통해 동일인의 정의・요건・확인 및 변경 절차 등 동일인에 관한 구체적인 제도화 작업을 추진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