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세를 손질한 올해 세법 개정안은 중산층의 세대 간 ‘부(富)의 이전’을 촉진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 ‘보통 사람’ 중산층의 상속세 부담을 덜어주고, 그 경감 효과를 자녀가 많은 집일수록 더욱 극대화해 경제의 선순환을 꾀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상속세 경감 효과가 대부분인 올해 세법 개정안의 세금수입(세수) 감소 효과는 연간 4조4000억원에 달한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3년 내리 나온 ‘감세안’이다. 2년 연속 ‘세수 펑크’ 위기가 가시화하는 상황에서 이런 행보가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 ‘부자 세금’ 아닌 ‘중산층 세금’ 된 상속세 손질
정부가 25일 세제발전심의위원회에서 확정한 ‘2023년 세법개정안’에는 상속·증여세 부담 적정화 방안이 주요하게 담겼다. 상속세·증여세의 최고세율을 50%(30억원 초과)에서 40%(10억원 초과)로 조정하고, 최저세율 10%가 적용되는 과세표준 구간을 1억원 이하에서 2억원 이하로 바꿨다. 1인당 5000만원이었던 상속세 자녀공제 금액이 1인당 5억원으로 확대된 것 역시 큰 변화였다. 한도가 인상될 것으로 예상됐던 ‘배우자 공제’는 건들지 않았다.
이번 상속 증여세 개편은 25년간 물가와 자산 가치가 몇 배로 뛸 동안 제자리였던 낡은 틀을 손봤다는 데 의의가 있다. 여기엔 시대가 변화하며 상속세가 더 이상 부자의 세금이 아닌 ‘중산층의 세금’으로 변모했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참고로 정부가 고소득자와 중산층을 가르는데 설정한 기준은 총급여 8400만원(2023년 근로자 평균임금 200%) 이하 여부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22일 진행한 관련 브리핑에서 “이제는 부자뿐 아니라 중산층도 상속세의 대상이 됐다”며 “상속세가 가진 가업 승계 영향과 우리 경제에 대한 선순환 효과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정부는 시대가 변하며 상속세가 가지는 의미가 변화했다고 보고 있다. 1950년 제정된 상속세는 당시 부자들을 타깃 해 ‘부의 대물림’을 끊고 자산의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한 세금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납세 대상자가 중산층까지로 확대된 데다 과세율도 높은 수준이기 때문에, 상속세가 되레 세대 간 부의 이전을 과도하게 막고 있다는 문제가 지적됐다.
이 때문에 상속세 부담을 완화해 부의 세대 간 이전 ‘물꼬’를 트고, 경기를 살리는 중요한 경제정책 수단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돼 왔다. 기업인들의 상속세 부담 요소였던 ▲최대주주 할증 평가 제도 폐지 ▲중소기업과 일부 중견기업 적용 가업상속·승계 제도 개선(밸류업·스케일업·기회발전특구 요건에 대해 혜택 확대) 등 개정 내용도 그 일환이다.
정정훈 기재부 세제실장은 “도입 당시 취지(부의 대물림 방지 및 사회적 자산 격차 완화)가 여전히 유효한 부분이 있긴 하지만, 시대의 변화에 따라 과세에 대한 의미도 조금씩 변하는 것 같다”며 “궁극적으로 우리 경제에, 국가에 도움 되는지를 따져봐야 한다”고 언급했다.
◇ “稅부담 경감, 부자·대기업보단 중산층·서민·中企에”
기재부는 이번 상속세 부담 경감이 비단 부자만을 위한 혜택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이번 개정으로 영향을 받는 과표 구간은 상속 재산 ‘1억~2억원 이하’(20→10%)와 ‘30억원 초과’(50→40%)에 해당하는 상속인이다. 정 실장은 “기존 30억원 초과 상속재산에 해당한 사람은 2023년 기준 2400명에 불과했다”며 “이번 과표구간 조정에 따른 혜택을 보는 인원은 전체 8만3000명에 달한다”고 말했다.
소수의 부자보단 다수 중산층의 세 부담이 덜어진단 취지다. 다만 세수 기준으로는 과표·세율 조정에 따라 약 2조3000억원의 경감 효과가 발생하는데, 이중 최고세율 인하(30억원 초과·2400명)의 혜택 규모가 전체 80%인 1조8000억원에 달했다.
상속세 개편을 비롯해 올해 세법 개정안에 따른 세부담 귀착을 보면, 고소득자(-1164억원)와 대기업(-917억원)보다는 서민·중산층(-6282억원)과 중소기업(-2392억원)에 경감 효과가 더 큰 모습이었다.
한편 당초 완화가 예고됐던 ‘종합부동산세’가 이번 개정안에 담기지 않은 점은 세수 감소 효과를 축소한 측면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종부세는 지난해 기준 4조6000억원 걷혔는데, 이는 전체 국세수입의 1.3%를 차지한다.
최 부총리는 “종부세를 근본적으로 개편하려면 지방 재정 영향이나 재산세와의 관계 등 종합적인 고민이 더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다만 정부는 세법 개정안과 별도의 계기로 종부세 완화는 계속 추진해 나갈 것임을 시사했다.
◇ 尹 3년 ‘감세, 감세, 감세’… “세수 기반 고민 안 보인다”
이번 세법 개정에 따라 예상되는 향후 세수 감(減) 효과는 연간 4조3515억원이다. 윤석열 정부 첫해 시행했던 대대적인 ‘세제 개편안’ 당시(-13조1000원)보단 작지만, 지난해 내놓은 ‘미니 감세안’(-5000억원)보다는 큰 세수 감소 폭이다. 결론적으로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이후 3년 내내 감세안이 발표된 셈이다.
지난해와 올해 2년 연속 ‘세수 펑크’가 발생할 것으로 우려되는 상황에서, 일부 세수 보충 방안이 포함될 것으로 기대됐지만 미미했다. 이번 세법 개정안에서 세수 증가 요인의 규모는 1조2000억원에 그쳤다. 세수 감소 요인이 5조6000억원 규모인 것과 비교된다. 세수 증대 방안 중에는 신용카드 사용에 따른 부가가치세 세액공제 공제율 축소(+2000억~3000억원 효과)가 대표적이다.
세수 결손이 반복되는 상황에서 또다시 감세안을 내놓은 것이 적절한지에 대해 최상목 부총리는 “작년과 올해 세수 부족은 2022·2023년 경기 둔화에 따른 결과물”이라며 “내년 이후로는 수출 증가에 따른 기업 실적 호조가 예상되며, 투자·소비 촉진을 위해 그간 추진해 온 정책 효과가 나타난다면 전반적으로 세입 여건이 개선될 것으로 전망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향후 세입 여건의 회복을 경기 회복에만 기대는 것은 안일한 인식이라고 비판한다. 류덕현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한해 관리재정수지 적자가 100조원에 육박하는데, 이를 어떻게 메꿀 건지에 대한 대안도 없이 미래에 들어올 세수를 더 깎아주기만 하겠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작년 세수 결손의 충격이 여전한데 성찰이 없다”고 했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번에도 영구적인 세수 감소 방안이 개편안에 들어가 세원이 대폭 축소됐다”며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도입을 전제로 이미 증권거래세를 단계적으로 낮추는 중인데, 금투세도 이번에 폐지하기로 하면서 간극을 메우지 못했다”고 했다. 이어 “세수 감소 효과가 굉장히 과소 추계돼 있는 것”이라며 “재정 운용에 대한 정부의 판단이 굉장히 안일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