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에 ‘챗GPT’ 관련 책이 몇 종 나와 있을까요?”

지난 8월 7일 만난 유철균(류철균) 경북연구원장이 ‘퀴즈’를 냈다. 기자는 “100종은 족히 넘을 것”이라고 답했다.

실제 출간 종수는 기자가 자신만만하게 추산한 숫자의 2배였다. 이날 교보문고 홈페이지에서 ‘챗GPT’로 검색해 봤더니, 국내 도서만 225종에 달했다. 지난해 11월 30일 챗GPT 출시 이후 하루 1권꼴로 관련 책이 나온 것이다.

/조선DB

유 원장은 “인공지능(AI) 시대의 본질은 ‘왓이즈(What is) 지식’의 시대가 가고 하우투(How to) 지식의 시대가 온 것”이라고 말했다. 챗GPT를 활용해보니 무궁무진한 응용법이 나왔고, 이게 각양각색의 책 소재가 되었다는 설명이다. 그는 “바로 여기에 기회가 있다”면서 “경북연구원이 선제적으로 AI를 사용하고 구현하는 데 결사적으로 매달리는 이유”라고 했다.

유 원장이 이끄는 연구원은 ‘공공 기관은 느리다’는 편견을 깼다. 연구원은 지난 3월 지자체 최초로 대화형 AI ‘챗경북’을 내놓았다. 연구원들은 경북 행정 지식을 학습한 자체 거대언어모델(LLM·Large Language Model)까지 만들겠다는 야심찬 계획도 세웠다.

필명 이인화로 유명한 유 원장은 ‘영원한 제국’ ‘2061년’ 등을 쓴 소설가이자 ‘디지털 스토리 텔링의 이해’를 강의한 이화여대 교수로 잘 알려져 있다. 지난해 8월 1일 지역 개발 과제를 수행하는 경북연구원의 원장으로 취임했다. 연구원의 본원은 경북 도청 소재지 중 하나인 안동에 있다.

싱크 탱크가 아니라 싱크 넷이다

- 취임 1주년을 맞았다. 예산도 인력도 한정된 상황에서 무엇을 선택하고 집중할 것인가.

“AI, AI, AI다. AI가 뭐든 가르쳐 주는 시대에 ‘무엇을 아는 것’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AI를 제대로 활용해 문제를 푸는 ‘하우투 지식’이 더 중요하다. 하우투 지식은 해봐야 획득할 수 있다. 연구원이 ‘챗경북’에 이어 경북 자체 언어모델 ‘기름(GILLM)’을 구축하기로 하는 등 ‘AI 속도전’에 나선 이유다. 이런 경험이 축적되면 경북이 세계 지방 정부의 지능화를 선도할 수 있다. (참고로 지난 5월 경북도는 87개 세부과제에 3조2638억원을 투자하는 ‘디지털 대전환 기본 구상’을 발표했다.)

사실 ‘지능화’에 대한 공포는 지방이 더 크다. 최근 판교에 위치한 네이버 자회사 스노우가 6600원에 AI가 연출한 프로필 사진 30장을 만들어 주는 서비스를 내놓았다. 기존 사진관들이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수도권에선 (사진관이 사라지더라도) 정보기술(IT) 회사들이 채용을 늘리니 일자리 수 자체는 유지된다. 지방은 다르다. 일자리가 그냥 사라진다.”

- 1991년 대구·경북의 공동연구기관으로 운영해 온 대국경북연구원이 지난 1월 31년 만에 분리됐다. 대구·경북이 힘을 합쳐도 수도권에 밀리는 상황일텐데.

“연간 정부 예산 약 500조~600조원 중 150조원 가량이 국정 기조에 따라 프로젝트 중심으로 편성되는 이른바 ‘전략 예산’이다. 이 예산 확보가 시・도 발전에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대구와 경북의 엇갈린 이해 관계 때문에 서로 경쟁하기도 한다. 대구시와 경북도의 환경이 달라 지자체 특성에 맞는 연구 수행이 어렵다는 지적도 꾸준히 있어왔다. 두 지자체가 자연스럽게 ‘발전적 분리’를 택한 것이다.”

- 연구원 규모는 크지 않다. 채용 연구원 수가 50여명(정원 85명)정도인데.

“정책 연구소 운영 방법도 달라지고 있다. 연구원들이 한데 모여 인트라넷(내부 보안망)으로만 자료를 공유하고 결과물을 도출하던 시대는 지났다. 그렇게 해서는 세상 변화를 따라갈 수 없다. 싱크 탱크도 ‘싱크 넷(Think Net)’으로 진화해야 한다. 실제로 경북연구원은 본원과 4개의 분원(판교, 대구, 예천 2곳)으로 운영된다. 연구원이 주관한 컨소시엄(엔씨소프트·나라지식정보·시공테크·브이알크루)이 문화재청이 기획·추진하는 ‘서라벌 천년 시간 여행’ 프로젝트의 최종 사업자로 선정됐다. 본원과 분원이 원격으로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러시아 모스크바 대학 출신의 연구원(타냐 이그나토바·Tatiana Ignatova)도 사업에 참여했다. 초빙 연구원이었던 타냐와도 카카오톡으로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일했다. 구글 번역기만 있으면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다. 개인적으로 수학과 물리학이 발달한 옛소련(CSI) 지역의 공학도들이 AI 시대 중요한 인재 후보군(풀)이라고 생각한다.”

챗경북에 이어 자체 언어모델까지

- 지난 3월 오픈AI의 챗GPT를 활용해 ‘챗경북’을 내놓았다.

“처음엔 네이버의 ‘하이퍼 클로바’를 기반으로 테스트를 했다. 챗GPT 출시 이후 이 서비스의 응용프로그램인터페이스(API)를 활용해 챗경북을 내놓았다. 네이버보다 훨씬 적은 한국어 데이터를 학습했지만, 챗GPT의 한국어 구사 능력이 매우 뛰어났다. 현재까지 챗경북의 질의응답 건수는 6만 건에 달한다.

하지만 챗GPT나 바드(구글) 등 해외 언어 모델은 우리 입맛에 맞게 미세 조정(fine tuning)이 불가능하다. 이게 부정확한 답변의 원인 중 하나다. 연구원이 지역에 특화한 데이터를 학습한 자체 언어 모델 ‘기름(GILLM, 가칭)’을 구축하려는 이유다. 기름은 오픈 소스 기반의 언어 모델이 될 것이다. 오픈 소스 모델은 챗GPT나 바드보다 성능이 떨어지지만, 학습·운영 비용이 훨씬 적게 든다. 최근엔 오픈 소스 모델과 초거대 상용 언어 모델과의 성능 격차도 빠르게 줄고 있다.”

경북연구원이 개발한 대화형 인공지능 '챗 경북' 서비스 화면

- 고도화한 챗경북이 행정 효율화에 어떤 도움이 되나.

“‘민원 대응에 최적화한 챗봇을 만드는 게 1차 목표다. AI가 인간을 대신해 전화를 받고 민원인에게 정중히 응대하는 것이다. 사람이 개입해야 하는 복잡한 사안의 민원일 경우, AI가 담당 공무원한테 메모를 전달할 수 있다. 이때 AI가 민원인의 거친 말투를 순화해 줄 수도 있다.

최근 서이초등학교 교사 사망 사건으로 교단에서의 악성 민원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대두 되지 않았나. 교대를 갓 졸업한 20대 초반의 교사들이 각종 민원 대응으로 많은 상처를 받아왔을 것이다. AI가 단순한 민원 업무를 처리하면, 공무원들은 다른 행정 서비스를 개선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쓸 수 있다.”

“작은 권한이 지방 소멸 막는다”

- 경북도는 도청 신도시를 거점으로 고졸 인력 100명을 디지털 문화 유산 전문 인력으로 양성한다는 계획이다.

“이철우 도지사의 소신이 고졸자도 지방에서 좋은 직장을 얻고 잘 살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챗경북’ ‘서라벌 천년 여행’ 등은 우리 지역에 좋은 직장을 만드는 기반이 될 것으로 본다. 다만, 지역 고졸 인재들의 1순위 선호 지역은 서울이고 2순위는 대구, 마지노선은 구미다. 안동에 오겠다는 사람을 찾기는 쉽지않다. 하지만 (인재 확보를)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신라 왕경 상상도/경북도

- 지방 인구 소멸론까지 나온다. 해결의 실마리는 없나.

“지방에 일자리가 없는 것이 아니라 지방에 권한이 없는 게 문제다. 예산보다 더 중요한 것이 권한이다. 아산병원 강동화 교수팀이 뇌졸중 환자에 쓰면 좋은 디지털 치료제를 개발했다. 그런데 아직 승인을 받지 못하고 있다. 독일의 경우 주 정부의 결정으로 최신 디지털 치료제를 병원 임상에 적용할 수 있다. 세계 주요 디지털 치료 기업들이 독일의 해당 주로 몰려간다. 만약 도지사가 경북 5년 체류 조건으로 외국인에게 거주 비자를 줄 수 있는 권한이 있다면 경북에는 어마어마한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 안동은 외국인들이 선호하니, 해외 인재들이 올 수도 있겠다.

“맞다. 경북 봉화에는 베트남 대궐 리 왕조의 마지막 왕자였던 이용상 후손들이 아직도 살고 있다. ‘화산 이씨’들이다. 그런데 도지사가 경북에 애정을 가진 베트남 인재를 단기 체류하게 할 법적 권한은 없다. 지금 지방 정부는 인구 소멸이라는 절박한 상황에서 몸부림을 치고 있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나 혁신은 절박한 사람들에게서 나온다. 지방 정부의 아주 작은 권한이 지방 소멸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 소설가 이인화로서 AI를 주제로 장편 소설 ‘2061년’을 내놓았다(2021년 출간). 지금 AI 행정의 최전선에서 뛰고 있는데, 소설 중 수정하고 싶은 대목은 없나.

“제목⋯ 2061년. 기계 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는 시점을 너무 보수적으로 잡았다. 지금 기세라면 2030년대에 기계의 기능이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을 수도 있다. AI가 생성한 그림도 이런 추세를 보여주는 근거이다. 타냐 초빙 연구원이 AI로 생성해 낸 그림 중 최소 1%는 나의 교양으로는 표절로 볼 수 없는 창의적인 것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