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안성재 셰프가 운영하는 미쉐린 2스타 '모수 서울'에서 와인 소믈리에가 와인을 바꿔치기했다는 논란이 일었다. 논란은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게시글이 올라오며 시작됐다. 글 작성자가 모수에서 식사하며 와인 페어링을 했는데 메뉴에 적혀 있는 샤또 레오빌 바르통(Château Léoville Barton) 2000년 빈티지 대신 2005년 빈티지가 제공됐다는 것이다.
샤또 레오빌 바르통 2000년 빈티지는 밀레니엄 빈티지라는 상징성이 있는 와인이다. 게다가 기후가 완벽에 가까웠던 해여서 2000년대 들어 생산된 모든 보르도 와인 중에서도 걸작으로 꼽힌다. 26년이나 지난 빈티지여서 시중에서 구하기가 매우 어려워 희소가치가 높다.
뒤늦게 이 사실을 깨달은 작성자가 확인을 요청하자, 소믈리에는 '2000년 빈티지를 맛보게 해드리겠다', '2000년 빈티지 와인이 바틀(병)째 주문돼 1층에 있었다'는 등의 해명을 했다고 한다. 모수 측은 사과문을 인스타그램에 올렸지만 논란은 가라앉지 않았고, 사건이 일어난 지 20여 일 만에 안 셰프는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해명 글을 올렸다. 안 셰프는 "소믈리에가 당황한 나머지 매우 부적절한 대응을 했다"고 했다.
안 셰프가 올린 사과문에는 800여 개의 댓글이 달렸다. 그런데 댓글 대부분이 안 셰프와 모수를 비판하는 내용일 정도로 반응이 좋지 않다. 고객이 파인다이닝에 지불하는 비용 안에는 음식값만 포함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셰프의 철학과 진정성, 서비스팀의 전문성, 공간의 분위기 등이 포함돼 있다. 한 끼에 30만~50만원, 와인 페어링까지 더하면 1인당 100만원 가까운 비용을 기꺼이 지불하는 이유다.
혹자는 샤또 레오빌 바르통 2000년 빈티지와 2005년 빈티지가 병 당 10만원 정도의 가격 차이만 난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모수 방문객을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실망했다"고 하는 이유는 가격 때문이 아니다. 파인다이닝은 고객에게 완벽하게 준비된 미식 세계에 들어왔다는 경험과 환상을 판다. 그런데 이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고, 납득할 수 있는 설명과 사과가 제때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실망했다.
지난해에는 임정식 셰프의 미쉐린 2스타 레스토랑 '정식당'에서 와인 소믈리에가 손님이 가져온 와인을 허락도 없이 따라간 일도 있었다. 이처럼 파인다이닝 업계에서 비슷한 유형의 신뢰 이슈가 반복해서 등장하고 있다는 점은 가볍게 넘기기 어렵다. 파인다이닝은 이미 단순한 외식업을 넘어 하나의 산업으로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의 주요 파인다이닝은 예약 플랫폼, 와인 수입사, 고급 식재료 공급망 등과 연결된 산업 생태계를 만들고 있다.
파인다이닝은 럭셔리 관광 소비와도 연결된다. 여행 플랫폼 트립닷컴의 자체 조사에 따르면 여행자의 44%는 여행지 선택 시 '음식 경험'을 핵심 요소로 꼽았다. 지난 3월 기준 트립닷컴 내 미식 관련 예약은 전년 대비 43% 증가했다. 서울 파인다이닝 관련 검색량은 전년 대비 16.8% 늘었다. 파인다이닝이 '케이(K)푸드'를 고부가가치 문화 상품으로 격상시키는 역할을 하는 셈이다.
해외에선 파인다이닝의 가치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프랑스에서 파인다이닝은 오랜 시간 축적된 미식 문화와 관광, 국가 이미지가 맞물린 영역으로 발전해 왔다. 주방과 홀의 역할을 세분화한 서비스 체계도 비교적 일찍 정착했다. 일본에선 제철 식재료와 코스의 흐름, 그릇과 배치, 응대 방식까지 하나의 경험으로 엮어 식사 경험을 체계화해 왔다.
한국 파인다이닝은 넷플릭스 등 콘텐츠와 스타 셰프의 인기에 힘입어 짧은 시간 안에 빠르게 성장했다. 하지만 시장의 성장 속도만큼 서비스 조직, 와인 관리, 고객 응대, 내부 검수 시스템이 충분히 함께 성숙했는지는 의문이다.
한국 파인다이닝이 일시적 유행을 넘어 하나의 산업으로 자리 잡으려면 셰프 개인의 명성과 화려한 메뉴에만 기대서는 안 된다. 와인과 식재료를 정확히 관리하는 시스템, 서비스 인력의 전문 교육, 문제가 발생했을 때 즉시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고객에게 설명하는 대응 매뉴얼이 함께 갖춰져야 한다. 고급 레스토랑일수록 실수 자체보다 실수를 대하는 방식이 더 큰 평가 기준이 된다.
파인다이닝의 가치는 접시 위의 완성도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예약부터 퇴장까지 이어지는 모든 과정에서 고객이 '이곳은 가치가 있다'고 느낄 때 유지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스타 셰프가 아니라, 스타 셰프의 이름을 받쳐줄 단단한 운영 체계와 기본기다. 기본기를 갖추지 못한다면 한국 파인다이닝은 고부가가치 문화산업으로 도약하기 전에, 어렵게 쌓아 올린 시장 기반을 잃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