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제 대학을 졸업해 봐야 엄청난 빚만 쌓이고 특별한 직업 기술 없이 졸업하게 되므로 가치가 없다.’

미국에서 대학 졸업장의 가치를 부정하는 응답자가 긍정하는 경우를 처음으로 넘었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지난 3월 나와 전 세계에 신선한 충격을 줬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시카고대학 여론조사센터와 미국 성인 1000여명을 대상으로 공동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56%가 4년제 대학 졸업장의 가치를 부정했다. 이 비율은 같은 질문을 한 2013년 조사 때 40%, 2017년 47%에서 꾸준히 상승했다.

이 같은 대학 회의론의 배경에는 1인당 억 단위인 학자금 대출 부담이 있지만, 무엇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기간 대학을 졸업한 화이트칼라 직종의 직업 안정성에 대한 의구심과 블루칼라의 임금이 빠르게 오른 사회 변화가 자리하고 있다. 아마존, 페이스북 등이 사무직 직원 중심으로 대규모 구조조정에 나선 반면 식당, 호텔, 테마파크 등 레저·접객업에선 사람 손이 부족해 시간당 임금이 3년간 30% 가까이 치솟아 전체 노동자 임금 상승률(20%)을 웃돌았다.

이런 인식 변화가 일시적인 지를 두고 미국 학계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지는 동안, 지구 반대편 한국에선 여전히 대학 졸업장을 갖기 위해 수험생과 그 가족이 전쟁을 치르는 중이다. 일년에 한 번 치러지는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서 상위 0.001%가 되기 위해 가구가 지출하는 사교육비가 작년 역대 최고인 26조원에 달했다. 수능에 BIS 비율(국제결제은행 자기자본 비율), 바젤 협약 등 대학 전공자들이나 관심을 가질 만한 경제 개념들을 이해해야 풀 수 있는 문제들이 ‘킬러 문항’이란 이름으로 출제되는데, 학교에서 배우는 수준으로는 맞출 수가 없어서다.

교과과정을 벗어난 ‘킬러 문항’은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라 자녀의 학업 성취가 결정되도록 함으로써 계층 이동 사다리를 걷어찬다. 킬러 문항을 제한 시간 내에 풀려면 문제 해결 능력에 앞서 비슷한 문제를 많이 풀어 본 경험이 필요하다. 서울 대치동 학원가에는 수능 출제위원 경력을 내세우면서 “킬러 문항에 완벽하게 대비하게 해주겠다”고 홍보하는 사교육 업체들이 존재한다. 이 업체들이 요구하는 고가의 학원비를 감당할 수 있는 고소득 가구의 자녀들은 킬러 문항에 익숙해질 기회를 얻고 수능이란 레이스에서 우위를 점한다.

대입을 위한 투자 비용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것과 달리 한국 대학 졸업장을 땄을 때 돌아오는 경제적 보상 수준은 다른 국가 대비 낮은 편이다. 2019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분석에 따르면 고졸자 대비 대졸자의 임금 프리미엄은 20%로 나타났는데 회원국 평균의 절반 수준이다. 취업하려면 최소한 대학 졸업장은 있어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으로 고등학교 졸업생 4명 중 3명이 대학에 진학하는 학력 인플레이션이 팽배해서다. 대학 졸업장의 가치를 투입한 비용 대비 소득을 기준으로 평가한다면 천문학적인 사교육 비용과 등록금 지출을 고려할 때 상당수 대학생은 사실상 마이너스일 수도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낮은 보상을 받고 힘들게 일하는 대신 그냥 ‘쉼’을 선택하는 고학력 청년들이 늘어나는 기형적인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통상 미국, 유럽 등 주요국의 청년 니트족(NEET·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 일하지 않고 일할 의지도 없는 청년 백수) 대부분이 고졸 이하 학력을 보유하고 문해력이 낮은 반면 한국은 45%가 대학 졸업장을 가지고 있다. 청년 니트족 증가는 경제 전체의 산출량을 감소시킬 뿐 아니라 결혼, 출산 시기를 지금보다 더 늦추는 심각한 사회 문제다. 주로 부모의 소득에 의존하는 청년들은 누적된 자산이 소진되면 국가의 사회보장제도에 기댈 가능성이 높으므로 국가 재정 건전성에도 악영향을 준다.

미국처럼 ‘4년제 대학을 졸업해 봐야...’라는 이야기가 대화 주제라도 오를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그러려면 대학 졸업장의 가치가 지금보다 떨어져야 한다. 학문 탐구와 취업 그 어느 쪽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대학은 스스로 소멸할 수 있도록 졸업생의 직업이 전공과 일치하는지, 연봉은 얼마나 받는 지, 만족도는 어떤지 등을 투명하게 밝히도록 정부가 강제하면 어떨까. 동시에 여전히 신화라는 타이틀이 붙는 고졸 인재의 성공 사례가 더 많아질 필요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