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산지가 많고 수량이 풍부한 북유럽 국가 노르웨이는 전력의 90% 이상을 수력으로 얻는다. 전력 생산량이 풍부해 쓰고 남은 전력을 이웃 국가 스웨덴과 덴마크에 수출할 정도다. 세계적인 원자력 강국 프랑스는 전체 전력의 75%를 원전에 의존하고 있고, 독일은 풍력(30%)을 비롯해 전력 생산의 절반을 재생에너지로부터 얻는다.

전력을 생산할 때 발생되는 배출가스가 많지 않은 이들 유럽 국가에서 가장 큰 골칫거리는 가솔린·디젤 등 화석연료를 태워 달리는 내연기관차였다. 유럽은 친환경적으로 생산돼 낮에도 남아도는 전력으로 자동차를 굴리면 배출가스가 크게 줄어들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자동차가 배출할 수 있는 온실가스양을 규제하기 시작했다.

유럽의 배출가스 규제는 글로벌 자동차 산업에 커다란 패러다임 변화를 일으켰다. 십 년 전까지만 해도 엔진 개발에 연간 수조원을 쏟아붓던 완성차 업체들이 내연기관차 대신 전기차 양산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고 있다. 일부 업체는 디젤 엔진 개발을 아예 중단하겠다고도 발표했다.

전기차 시대가 도래하자 우리 정부도 유럽과 같은 정책 방향을 도입했다. 2025년에 내연기관차를 완전히 퇴출하겠다고 발표했고, 국민 세금으로 전기차를 구매하는 이들에게 수백만원을 넘게 지원한다. 전기차가 내연기관차보다 친환경적이라는 인식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데이터를 보면 우리나라에서 달리는 전기차는 휘발유로 달리는 차보다 친환경적이라고 단언하기 어렵다. 2020년 기준 우리나라 전력 생산의 절반 이상은 발전 과정에서 오염물질을 배출하는 석탄(27.1%)과 천연가스(LNG·32.3%)를 원료로 한다. 전기차 주행 과정에서는 오염물질이 배출되지 않지만, 전기차 배터리를 충전하는 전력을 생산하는 과정에서는 온실가스가 배출될 수밖에 없다. 국내에서 전기차 보급 정책을 놓고 ‘조삼모사(朝三暮四)’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전기차 보급 확대가 정말 환경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려면 내연기관차를 빨리 퇴출하기보다 전력 발전원을 친환경적으로 바꾸는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국토, 자연환경을 고려하면 그 대안이 원자력 발전 비중을 늘리는 것이라고 많은 전문가가 말한다. 그럼에도 정부는 우리나라와 환경이 다른 해외의 정책을 무차별적으로 수용해 전기차 전환을 가속화하고 있다.

유럽을 비롯해 미국, 중국 등 주요국이 전기차 전환을 가속화하는 흐름을 우리나라만 거스를 수는 없다. 세계 4위(판매량 기준) 자동차 업체인 현대차가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서라도 전기차 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정책은 꾸준히 추진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전력 상황을 고려할 때 그다지 친환경적이지 않은 전기차에 막대한 보조금을 지급하면서까지 내연기관차를 퇴출하려는 정책 방향은 정교한 수정이 필요해보인다.

앞으로 환경 규제 대상은 단순히 자동차 배출가스량이 아니라 에너지 생산에서부터 차량 구동에 이르는 전 과정, 이른바 ‘유정에서 바퀴까지(well to wheel)’로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해외 정책을 그대로 베껴오기보다 우리 환경에 맞는 친환경차 보급 정책이 추진돼야 하는 이유다. 예를 들어 전력으로 배터리를 충전하지 않아도 연비를 높이는 하이브리드차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는 방안 등을 포함해 다각도로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