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서울에서 가장 뜨거운 장소 중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 '올공'이다. 잠실 올림픽공원의 준말인 올공, 그중에서도 핸드볼경기장 앞에는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20·30대뿐만 아니라 다양한 세대가 이곳에 모인다.

이들을 거리로 나오게 한 것은 6·3 지방선거 본투표 과정에서 발생한 '투표용지 부족 사태'였다.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인 참정권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았다는 문제의식이 시민들을 움직였다. 분노의 크기만큼이나 현장에서 두드러진 것은 의외로 차분한 태도였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참가자들이 유독 '순수성'과 '비정파성'을 강조했다는 점이다. 대표자가 있느냐는 질문에 돌아온 답은 한결같았다. "우리는 자발적으로 모인 시민입니다." 곳곳에는 '정치 구호를 자제하자'는 팻말이 보였다. 집회 현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괄 제작 인쇄물도 많지 않았다. 참가자들은 저마다 손글씨로 쓴 팻말을 들고 부실선거를 규탄했다. 특정 정당이나 정치 세력과 거리를 두려는 분위기가 뚜렷했다.

시위 장소를 둘러싼 논의에서도 비슷한 고민이 엿보였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있는 정부과천청사, 청와대와 가까운 광화문, 국회가 있는 여의도 등 정치적 상징성이 큰 장소로 옮기자는 제안도 현장에서 나왔다. 그러나 다수는 올공에 남자는 쪽이었다. 이번 사안이 자칫 정치적 공방의 소재로 소비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참정권 문제를 특정 진영의 구호로 좁히지 않겠다는 의지가 읽혔다.

물론 여러 사람이 모이는 현장이 늘 차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경찰관을 향해 "중국인 아니냐"고 따져 묻는 참가자가 있었고, 훈련을 위해 경기장을 찾은 핸드볼 유소년 국가대표 선수들의 가방을 수색하려 한 이도 있었다.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장면이었다.

그러나 그런 행동을 말리는 시민도 적지 않았다. "책 잡힐 일을 하지 말자"는 외침이 곳곳에서 나왔다. 시위의 취지가 흐려지고, 어렵게 모인 시민들의 문제 제기가 희화화될 수 있다는 걱정에서였다. 며칠째 자원봉사자로 나서 뒷정리를 하고 질서 유지를 돕는 참가자들도 있었다. 분노는 있었지만, 그 분노를 지키려는 절제도 있었다.

정부와 선관위, 정치권은 이 절박함을 가볍게 봐서는 안 된다. 올공에 모인 시민들을 손쉽게 '부정선거 음모론자'로 치부한다면 민심을 오독하는 일이다. 현장에서 만난 다수의 시민들이 던진 질문은 거창하지 않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느냐", "누가 책임지는 것이냐", "다음 선거에서는 괜찮은 것이냐"는 것이었다. 질문의 방향은 하나였다. 소중한 한 표의 가치를 지켜 달라는 요구다.

대통령 지시에 따라 검찰과 경찰은 합동수사본부를 꾸리고 있고, 여야 역시 국정조사를 요구하고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정쟁이 아니라 속도감 있는 진상 규명과 실질적인 재발 방지 대책이다. 불신의 틈에서 음모론은 자란다. 국가가 먼저 사실을 밝히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래야 올공에 모인 시민들도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

올공 시위가 보여준 것은 단순한 분노만이 아니었다. 정치 구호를 자제하고, 스스로 질서를 지키려 한 주권자들의 품격이었다. 그 품격에 국가가 답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