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자는 그것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스페인 출신 철학자 조지 산타야나가 한 말이다. 개인이든 사회든 과거의 실패와 오류를 제대로 성찰하지 않으면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게 된다는 의미다. 이는 기업도 예외가 아니다. 기업 역시 사회가 공유하는 기억 위에서 브랜드를 운영하기 때문이다.
조직 감수성도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브랜드가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지나치는지가 오랜 시간 쌓여 형성된 결과다. 이렇게 형성된 감수성은 결국 조직의 판단과 직결된다. 최근 스타벅스코리아(이하 스타벅스)의 '탱크데이' 마케팅 논란은 그 감수성이 어떻게 작동했는지 보여준 사건이다.
스타벅스는 지난 18일 텀블러 제품 할인 행사인 탱크데이를 열었다. 행사일인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과 탱크라는 표현이 겹치자, 신군부 시절 국가 폭력을 연상시킨다는 지적이 나왔다. 소셜미디어(SNS) 홍보 게시물에 담긴 '책상에 탁' 문구도 논란을 일으켰다. 1987년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 당시 치안본부의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발표를 떠올리게 한 것이다.
스타벅스는 즉각 게시물을 삭제하고 행사를 중단했다. 그럴 의도가 없었다며 공식 사과문도 냈다. 하지만 논란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소비자들은 이를 단순한 마케팅 실수보다 5·18을 둘러싼 역사적 맥락과 감수성 문제로 받아들였다. 한국에 진출한 지 27년 된 스타벅스가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과 '탱크', '책상에 탁'이라는 표현을 거르지 못한 사실 자체가 공분을 산 이유도 여기에 있다.
논란의 핵심은 '의도' 여부만이 아니다. 사회가 쌓고 공유해 온 기억과 맥락 속에서 충분히 걸러져야 했을 것들이 왜 끝내 걸러지지 않았는지에 있다. 누군가는 문구를 만들었고, 누군가는 디자인했으며, 누군가는 행사일을 정했다. 그리고 누군가는 이를 확인했다. 그런데도 논란이 터지기 전까지 아무도 이를 멈추지 못했다.
역설적으로 오늘날 기업은 어느 때보다도 소비자를 잘 안다.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인공지능(AI)으로 소비자 취향을 예측한다. 덕분에 마케팅도 더 정교해졌다. 하지만 사회가 공유하는 기억과 역사적 맥락은 데이터만으로 읽기 어렵다. 결국 사람이 살펴야 한다.
마케팅 검수 체계도 마찬가지다. 법무 리스크, 표현 규정, 브랜드 톤 앤드 매너는 꼼꼼히 점검하지만, 역사·문화적 감수성은 상대적으로 후순위로 밀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문제없겠지", "설마 그렇게 해석할까"라는 판단이 반복되면, 위험 신호는 쉽게 묻힌다.
이 같은 판단 구조는 미국 사회심리학자 어빙 재니스가 제시한 '집단사고'로 설명된다. 집단사고는 조직 내부 동조 압력이 강해질수록 비판적 검토가 약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조직이 비슷한 판단을 공유할수록 위험 신호를 감지하는 질문들은 사라진다.
이번 스타벅스 논란은 실무자의 실수로만 치부할 문제가 아니다. 기획부터 디자인, 마케팅, 홍보, 결재에 이르기까지 누군가는 한 번쯤 멈춰 세워야 했다. 기업 문화는 매뉴얼이나 교육 자료보다 무엇을 중요하게 보느냐에서 드러난다. 무엇을 지켰고 무엇을 흘려보냈는지가 중요하다. 조직 감수성은 거창한 데서 드러나지 않는다. 누군가 한 번 더 "이거 정말 괜찮은가"를 묻는 데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