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고유가 지원금을 '모든' 주유소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고 30일 밝혔다. 지역화폐로 고유가 지원금을 지급하겠다고 한 지 49일 만이다. 지역화폐는 연매출이 30억원이 넘는 업소에서 사용할 수 없게 돼 있다는 게 애초부터 걸림돌이었다. 전국 주유소의 58%, 수도권 주유소의 88%는 연매출 30억원을 초과해 기름값을 지역화폐로 내는 게 불가능하다.
이번 정책 결정 과정을 보면 의문이 하나둘이 아니다. 명색이 고유가 지원금인데 대다수 주유소에서 사용할 수 없는 지역화폐로 지급하도록 설계한 것부터 이해하기 힘들다. 연매출 30억원 제한을 먼저 풀어놓고 고유가 지원금을 지역화폐로 지급하기로 했다면 "정책 목표와 수단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비판은 받지 않았을 것이다.
기자는 지난달 초 이재명 대통령이 "고유가 부담 직접 지원을 지역화폐 형태로 하라"고 했을 때 지역화폐를 사용할 수 없는 주유소가 훨씬 많다고 지적하는 기사를 낸 바 있다. 정부도 문제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정책 조율은커녕 혼선만 드러냈다.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7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면 관계 부처 간 협의를 해보겠다"고 했다. 나흘 뒤 지역화폐 주무 부처인 행정안전부는 반대 입장을 밝혔다. 11일 추경 정부 합동 브리핑에서 "소상공인 지원과 지역 경제 활성화라는 취지도 있기 때문에 연매출 30억원 이하 주유소로 (지역화폐) 사용처를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원칙을 지킬 것"이라고 한 것이다.
결국 문제가 터졌다. 고유가 지원금이 27일부터 지급되기 시작했는데 지역화폐를 들고 주유소에 갔다가 퇴짜를 맞은 경우가 잇따라 나온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나섰다. 이 대통령은 28일 "국민이 직관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고유가 피해 지원금'이니까 기름 정도는 넣을 수 있게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할 것"이라며 "풀어주는 방향으로 검토해 보라"고 했다. 그제야 정부가 고유가 지원금을 모든 주유소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고 발표했다. 불과 이틀이면 해결될 수 있는 문제였는데 무려 49일이 걸린 것이다.
건물을 짓는데 설계가 잘못됐다면 설계를 바로잡는 데 시간을 지체할 이유가 없다. 다 지어진 건물에 불편한 부분이 있다면 제때 고치는 게 옳다. 이번에 정부는 이렇게 당연한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국민에게 불편을 끼치는 관료주의는 모두 사라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