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거 법이 없어 당장 규제하거나 책임을 묻기는 어렵습니다."

가상 자산 거래소 해킹이나 소비자 피해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금융 당국이 반복해 온 설명이다. 실제 현행 법 체계에서 당국이 즉각 개입하기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답변이 수년째 반복되는 상황에서 이제는 질문을 바꿔야 한다. 왜 여전히 근거 법이 없는가.

한국의 가상 자산 거래 시장은 세계 최상위권 규모다. 국내에서 거래가 본격화된 시점은 2017년, 시장 규모가 폭발적으로 커진 시기는 2020~2021년이다. 금융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2021년 하반기 국내 가상 자산 거래량은 약 2073조원, 하루 평균 거래액은 약 11조3000억원으로 집계됐다. 같은 시기 코스닥 시장의 하루 평균 거래 대금은 약 11조8600억원으로 코스닥 시장에 준하는 규모의 가상 자산 시장이 형성됐다.

가상 자산을 일부 투기 성향이 강한 사람들만 이용하는 시장으로 보기도 어려워졌다. 작년 상반기 가상 자산 사업자 실태 조사에 따르면 거래 이용자 수는 약 1077만명에 달한다. 2024년 말 한국예탁결제원이 집계한 상장 법인 주식 소유자 수가 약 1400만명인 점을 감안하면, 가상 자산은 이미 상당수 국민에게 주식과 크게 다르지 않은 투자 자산으로 인식되고 있다.

시장은 급격히 커졌지만, 여전히 규제는 사각지대나 불확실한 부분이 많다. 최근 가상 자산 거래소 빗썸이 62조원 규모의 비트코인을 잘못 지급했다가 수십 분 뒤 지급 취소하는 일이 있었는데, 현재 가상 자산 거래소를 규율하는 법 체계에는 과징금 기준은 물론 영업 정지를 내릴 명확한 근거조차 마련돼 있지 않다.

작년 초부터 논의돼 온 가상 자산 2단계 입법(디지털자산 기본법)은 작년 10월에 발표될 예정이었으나 계속 늦어지고 있다. 시장이 주식시장 못지않게 커지는 동안 규제 공백이 이어진 것에 대해 정책 방향을 제시해야 하는 금융 당국이나 법안을 만들 국회 모두 책임에서 자유롭기는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