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부산, 의식을 잃은 10세 아이가 병원 10여 곳을 떠돌다 끝내 심정지에 빠졌다.
구급대원이 다급하게 전화를 돌렸지만 돌아온 대답은 한결같았다. "전문의가 없다." 이것은 비단 부산만의 비극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구급차는 병원을 찾아 도로 위를 배회하고 있다.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의 본질은 응급실 병상 부족이 아니라 '배후 진료(Back-up)'의 붕괴다. 응급 처치를 해도 수술을 집도할 의사가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세부 전공이 다른 의사가 수술을 하기도 어렵다.
실제로 응급 소아 환자를 소아외과 대신 일반 외과 의사가 수술했다가 결과가 좋지 않자, 법원이 10억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한 사례가 있다. "왜 전공 의사에게 맡기지 않았냐"는 책임을 물은 것이다. 생명을 다루는 의사들에게 사법 리스크는 흉기나 다름없다.
정부는 의대 정원 확대, 공공의대 설립 등 '의사 수 늘리기'를 해법으로 내놓았다. 부족한 필수 의료 인력을 확충하는 건 응급 의료 공백을 메울 정공법(正攻法)이다.
하지만 문제는 '시간'이다. 신입생이 입학해 전문의가 되어 현장에 투입되기까지 최소 10년이 걸린다. 그사이 위급한 응급 환자들은 끊임없이 밀려 들고 있다.
해외는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을까. 캐나다는 뇌졸중 환자가 발생했는데 병원에 담당 의사가 없으면 다른 병원과 원격으로 협진(協診)한다.
뇌졸중은 진행이 빨라 제때 치료하지 않으면 반신마비, 언어 장애 같은 후유증이 남고 심하면 사망에 이른다. 다른 병원으로 이동하자니 국토 면적이 넓고 자칫 폭설까지 내리면 시간이 지체된다. 이럴 때 차라리 원격으로 뇌 혈전(血栓)을 녹이는 용해제를 처방한다는 것이다. 환자를 길 위에서 허비하게 두는 대신, 기술을 통해 골든타임을 확보하는 것이다.
국내에서도 "병원이 응급 환자를 의무적으로 수용하게 하자"는 법안이 논의되지만, 의료 현장의 반발은 거세다. 치료 능력이 없는데 환자를 받는 건 환자에게 더 위험할 수 있다는 논리다.
결국 중요한 건 환자가 제때 치료 받는 것이다. 무작정 의사 수를 늘리거나 강제 수용을 법제화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마침 올 연말부터 비대면 진료 등 관련 제도가 본격화된다. 의사 간 원격 협진을 통해 응급 의료의 물리적 공백을 기술적으로 메우는 '플랜 B'를 적극 고민해야 할 때다. 10년 뒤의 의사를 기다리기에 지금 환자들에게 남은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