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100일을 갓 넘긴 이재명 대통령의 양대(兩大) 당선 공신이 있다. '윤석열'과 '코스피 5000′ 구호다. 계엄으로 갈 곳 잃은 중도보수를 망명지로 이동시켰고, 변방의 개미였던 소액주주를 정책적 왕좌에 앉혔다. 70년 민주당의 간판인 정치적 올바름을 '주식으로 생활비 벌 수 있게 하겠다' 구호로 대체했다. 이재명표 실용의 정점이다.

100일 일성도 '자본이득 감세'였다. 이 대통령은 이날 주식 양도소득세 부과 대상인 대주주 기준을 '종목당 10억원'으로 바꾸지 않고, 50억원을 유지하겠다고 했다. 주식시장 활성화가 새 정부의 핵심 경제 정책인데, 과세 대상을 늘려 진정성을 의심 받느니 없던 일로 하겠다는 것이다. 재정 부담은 생기겠지만 투자자들이 원한다면 그냥 유지하겠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이런 조치가"원칙에 어긋난다"고 인정했다. 과세 기준을 강화한다고 주가가 떨어지거나 시장에 악영향을 준다는 건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야당도 요구하고, 여당도 놔두자는 의견이라면 굳이 (정부안을) 유지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요청했다면서 "큰 영향 없으니 뭐 이런 것 하나는 들어줘도 되겠네"라고 마음 먹었다고 한다.

다음날 코스피는 4년 만에 사상 최고치를 갈아 치웠고, '휴면 개미 대통령'의 취임 회견도 호평 속에 끝났다. 그러나 새 정부가 첫 세법에 '과세 확대'란 독배를 굳이 넣은 이유를 말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감히 코스피 지수에 방해가 될 법한 기억을 더듬지 않았다. 임기 내 코스피 5000이란 지표가 정권의 절대선(善)임을 확인한 날이었다.

대통령실은 정부 세제개편안 발표를 앞둔 7월 말 당시 "조세 형평성 회복이자 조세 정상화 개념으로 봐야 한다"고 했었다. 법인세 최고세율을 24%에서 25%로 올리고, 대주주 기준을 종목당 10억원으로 강화한 데 대한 대통령실 대변인의 답변이었다. 윤석열 정부 때 이뤄진 감세를 원상복구하는 것으로, 증세가 아니라고 여러 번 말했다.

세수 부족이 극심하지만, 민생 경제도 어려워 당장 증세를 할 순 없다는 얘기다. 대신 전임 정부의 부자 감세를 되돌리고, '조사통' 현역 의원을 국세청장에 앉혀 고액체납 징수를 강화키로 했다. 전 정부 감세 정책이 세수 결손의 주범이니, 이것을 되돌리는 게 핵심이다. 당과 정부가 '증세 없는 재원 마련'이란 국정 기조를 반영한 결과물이었다. 감세만 원하는 대중을 설득해서라도 과세 명분을 지키겠다는 의지였다. 이런 원칙이 대통령 말 한마디로 없던 일이 됐다.

정부의 세금 정책에는 단순히 '세수 얼마 벌어들이느냐' 이상의 의미가 담긴다. 누구에게, 왜 과세하느냐는 곧 대통령의 국정 철학이자, 정체성을 대변하는 가장 확실한 메시지다. 강력한 명분이 제도를 뒷받침해야, 대중을 설득하고 세금을 걷을 수 있다. 이 대통령은 복지 확대와 적극 재정을 약속했다. 나라 곳간을 거하게 열겠다는 뜻이다. 코스피가 5000을 달성하든 못 하든, 세금 내란 말을 해야 할 때는 반드시 온다. 그땐 무슨 명분으로 과세할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