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 피규어, 건담 프라모델, RC카를 직구로 사면 싸다. ‘김치 프리미엄’이 붙어 비싸진 수입품을 누가 사겠나. 공산국가도 아닌데 취미 생활이 이렇게 막힐 줄 몰랐다.” (키덜트 커뮤니티 모임에 올라온 글)

해외 직구족(인터넷·애플리케이션을 통해 해외에서 직접 제품을 구매하는 소비자)들이 뿔났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해외 직구 대책에 거세게 반발했다. 정부는 지난 16일 어린이용 제품과 전기·생활용품, 생활화학 제품 등 80개 품목의 직구를 금지하겠다고 밝혔다. 안전성이 입증되지 않은 중국산 저가 제품들이 해외 직구를 통해 대거 수입되면서 생긴 피해를 막기 위해서였다.

국민 안전과 국내기업 보호에만 초점을 맞추면 적절한 대책이었을 수도 있다. 알리·테무·쉬인 등 중국의 직구 플랫폼(C커머스)을 통해 국내에 유통된 일부 제품에서 인체 유해 물질이 다량 검출됐다. 국내 유통기업과 소상공인은 중국산 저가 제품을 유통하는 C커머스의 공세와 외국산 제품에는 적용되지 않는 한국 세제·인증 규제로 이중고에 시달렸다.

그러나 정부는 소비자 선택권은 보장하지 않았다. 직구 금지로 규정된 80개 품목 중 국가인증통합마크(KC)를 받은 제품에 한해 반입을 허용한다는 조건은 있었지만, 그간 싼값에 해외 직구를 해왔던 소비자에겐 ‘자유롭게 구매할 권리’를 부정당한 것과 다름없었다. 특히 국내엔 출시되지 않아 해외 직구를 통해서만 구입할 수 있는 제품도 제한되면서 반발은 거세졌다. 결국 정부는 발표 사흘 만에 대책을 보류하기로 했고, 대통령실은 혼란과 불편을 준 것에 대해 사과했다.

이번 논란은 정부가 해외 직구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하면서 벌어졌다. 지난해 해외 직구 거래액 규모는 6조8000억원이다. 올해 1분기에는 전년 동기 대비 9.4% 증가한 1조6476억원을 기록했다. 해외 직구 이용자도 많다. 관세청에서 지난 2021년 발표한 20~50대 해외직구 이용 인원은 1308만 명으로 해당 연령대 전체 인구의 43.2%다. C커머스 사용자 수가 쿠팡에 이어 2~3위를 차지한 현시점에서 직구족은 더 많아졌을 것이다.

물론 해외 직구 제품의 안전성 문제는 여전하다. 소비자에겐 선택할 자유를 보장하되 정부가 강한 안전 규제 대책을 마련하는 게 돌파구가 될 수 있다. 유럽연합(EU)은 알리가 가짜 의약품과 건강보조식품 등을 판매한 것과 관련, 디지털서비스법(DSA)을 위반했는지 조사 중이다. DSA는 빅테크·온라인 플랫폼 기업에 안전하고 투명한 온라인 환경을 만들 의무를 부과하는 법안이다. DSA를 위반한 것으로 결론이 나면 해당 제품의 위해성은 유럽 전역에 공지되고, 알리는 전 세계 매출의 최대 6%에 해당하는 과징금도 내야 한다.

이처럼 우리 정부도 해외 직구 물품에 대한 위해성 검사를 강화하고, 유해 물질이 발견된 경우엔 소비자에게 관련 내용을 신속히 알리고 제재해야 한다. 또 문제 있는 물품이 세관에서 걸러지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해당 플랫폼에는 즉각 판매 중지를 요청해야 한다.

초저가로 무장한 C커머스 공세에 맞설 대응책도 필요하다. 정부는 중국과의 통상 마찰을 이유로 관세 대응엔 신중한 입장이다. 그러나 이미 해외에서는 관세 장벽으로 맞대응한다. 미국은 직구 수입품 중 800달러 이하인 경우 관세를 붙이지 않는 무관세 혜택에서 중국과 러시아를 제외하는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가 이번 논란으로 ‘일단 다 막고 보자’식 규제의 위험성을 알았기를 바란다. 국내 유통업계에 대한 역차별 해소와 국민의 안전, 소비자의 편익 모두를 아우를 대책에 대한 깊은 논의가 절실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