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나간 동기들을 보고 ‘너무 성급한 것 아닌가’했는데, 이제 이직 준비를 하려는 내가 늦은 것 같다.” “부산시도 산은 유치로 금융중심지가 된다고 하고, 서울시도 여의도를 금융중심지로 조성한다는데 무슨 장단에 맞춰야 하나.”

현재 릴레이 퇴사가 이어지고 있는 산업은행 직원들의 말이다. 산은은 부산 이전을 추진하는 회사와 이에 반대하는 노조의 대립 속에 지난해에만 100명 가까운 퇴사자가 발생했다. 올해 들어선 매월 10명가량 이탈하는 직원이 나오면서 내부적으론 올해 자발적 퇴사자가 100명을 넘어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와 달리 극심하게 대립 중인 여야가 최근 이례적으로 원팀을 이룬 곳이 있다. 부산시가 제안한 산은 부산 이전 민·관·정 협력 태스크포스(TF)다. 그동안 산은 이전 의제는 국민의힘이 이끌어왔는데, 결국 야당이 합세해 초당적으로 산은법 개정을 위해 힘쓰겠다는 것이다. “산은 부산 이전 과제에는 여야가 없으며 부산 정치권이 함께 힘을 모아나가기로 결심했다”는 게 민주당 서은숙 부산시당위원장의 말이다.

부산은 공공기관 지방 이전 등 지역 균형 발전 정책의 혜택을 가장 많이 받은 곳으로 꼽힌다.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역대 정권은 수도권 다음으로 인구가 많은 PK 지역의 표심을 얻고자 금융 공기업 이전을 내세워 왔다. 산은 이외에도 수출입은행, 예금보험공사, 서민금융진흥원 등도 추가 이전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지역 균형 발전이라는 목적은 좋다. 금융 공기업을 유치하면 세수 확보, 채용 문제 해결 등 이점을 누릴 수 있다. 그러나 부산을 비롯해 금융공기업 이전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는 지자체를 보면 내년 총선을 앞두고 표에 목마른 정치인을 이용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IBK기업은행의 경우 부산은 물론 경남, 강원, 대전, 대구 등이 유치에 뛰어들었다. NH농협은행이 있는 농협중앙회와 Sh수협은행을 보유한 수협중앙회는 전북, 전남, 강원, 부산 등이 점찍은 상태다. 김진태 강원도지사는 아예 한국은행 본점의 춘천 유치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표심을 위한 유치전은 오히려 금융 공기업 경쟁력 약화라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우선 서울·수도권에서 멀어지자 핵심 인력이 이탈하고 있다. 기존 직원들은 줄줄이 회사를 나가고, 지원을 포기하거나 합격해도 서울에 있는 다른 직장을 선택하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일례로 산은의 예년 퇴사 인원은 1년간 40여명에 못 미쳤다. 그러나 올해 들어선 4개월 만에 30명이 넘는 직원이 회사를 떠났다. 2016년 전북 전주시로 이전한 국민연금도 지금까지 같은 문제로 고충을 겪고 있다. 높은 연봉과 직업 안정성으로 채용 시험이 ‘A매치’라고 불릴 정도로 인기였던 시절은 과거가 된 셈이다.

비효율 문제도 있다. 금융업은 모여 있어야 잘되는 집적도가 높은 특성이 있다. 기업 본사가 집중된 곳으로 모일 수밖에 없는 산업이다. 특히 산은·기은·수은 등은 시장형 정책금융기관으로 대부분 수도권에 있는 기업·기관과 업무상 소통이 필요하다는 게 금융권의 중론이다.

공교롭게도 서울시는 지난 24일 현재 산은이 있는 여의도를 ‘국제 디지털금융 중심지’로 키우기 위한 개발 가이드라인을 공개했다. 용적률을 최대 1200%까지 확대해 초고층 건물이 즐비한 세계적인 금융도시인 미국 뉴욕 맨해튼처럼 바꾼다는 청사진이다. 그러나 금융공기업 맏형 격인 산은이 빠진 여의도가 제2의 맨해튼이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