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한 잔 마시기가 이렇게 어려워서야 원…”

지난 26일 정오 무렵 서울 광화문의 한 프랜차이즈 카페. 중절모를 쓴 노인 네 명이 키오스크(무인단말기) 앞에서 우왕좌왕 한참을 헤맸다. 손님이 몰릴 시간대라 직원들은 카운터에서 주문을 받지 않고 음료를 만드는 데만 집중하고 있었다. 이들은 뒤에서 기다리던 기자의 도움으로 겨우 주문을 마쳤다. 아메리카노 네 잔을 시키는 데 걸린 시간은 10분이 넘었다. 노년의 신사들은 혀를 차며 신세한탄을 늘어놨다.

패스트푸드점이나 프랜차이즈 카페 등 요식업 곳곳에 키오스크가 들어서 있다. 고물가와 임금 상승, 구인난 등 복합적인 악재가 겹치면서 인건비 부담을 절감하기 위한 결과다. 효율의 논리로는 불가피한 흐름일지 모르지만 노인이나 장애인 등 디지털 취약 계층은 이런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소외되고 있다.

실제 서울시가 올해 만 55세 이상 고령층을 대상으로 디지털 역량 조사 결과를 실시한 결과 절반 이상(56.2%)이 키오스크를 아예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이 키오스크를 이용하지 않는 이유는 ‘사용방법을 모르거나 어려워서(33.8%)’ ‘필요가 없어서(29.4%)’ ‘뒷사람 눈치가 보여서(17.8%)’ 등이었다. 자기 돈으로 뭘 사 먹으려고 해도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다.

시각장애인에게도 키오스크는 ‘유리 장벽’이다. 점자 패드나 음성 안내 기능이 있는 ‘배리어 프리’ 키오스크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 터라 무인화된 매장에서 장애인들은 혼자 힘으로는 음료수 한 잔도 주문할 수 없다. 휠체어를 탄 사람들에게도 키오스크 모니터 화면이 너무 높아 이용할 수가 없다.

헌법에서는 모든 국민이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차별을 받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실생활에선 이런 식의 차별이 만연하다. 소수자와 약자를 배제하고 차별하는 방식의 변화는 진보가 아니라 퇴보가 아닐까. 카페의 키오스크는 노인이나 장애인에게 생존의 문제가 될 수 있다.

정부가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변화 속도에 비해 너무 느리고 소극적이다. 올해 장애인차별금지법 개정으로 내년부터 장애인이 동등하게 이용할 수 있는 무인 단말기를 설치해야 하지만 강제성이 없고, 취약계층을 위해 접근성을 강화한 국가표준도 만들고 있지만 가이드라인에 불과해 실효성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우리 사회의 지향점을 보여준다. 현실의 우영우들을 위해 우리 사회가 할 수 있는 작은 첫 걸음은 ‘모두를 위한 키오스크’ 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