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중앙은행(CBR)이 기준 금리를 연 9.5%에서 20%로 10.5%포인트 올린 것은 주변 국가들에 큰 충격이었다. 미국이나 한국에서는 0.25%P(포인트)씩 3~4번만 올려도 시장은 크게 동요한다. 우크라이나 침공 이전,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기준 금리를 한번에 0.5%P 올릴 가능성이 제기됐을 때 시장은 '빅 스텝(big step)'이라며 들썩였다.

반대로 터키는 기준금리를 확 떨어뜨린 걸로 국제 사회에 충격을 줬다. 터키 중앙은행은 지난 9월부터 4개월 연속 금리를 인하했다. 인하를 시작한 시점에 19% 수준이던 기준금리는 현재 14%다. 터키의 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9월 당시 19.6%였고, 12월에는 36.1%까지 치솟았다. 국제통화기금(IMF)은 터키의 지난해 경제 성장률을 9%로 전망했다. 경제 성장이 치솟는 물가를 따라가지 못한다. 물가가 급속도로 뛰는데 금리를 인하하는 터키의 역주행에 세계가 놀랐다.

러시아와 터키의 금리 정책은 경제가 정치 수단으로 악용되는 과정이자 결과다. 우크라이나 침공은 러시아 정부가 물가를 잡기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 러시아 기준 금리 인상은 우크라이나 침공 탓에 폭락하는 루블화를 지키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러시아가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결제망에서 퇴출되고 주요국들이 러시아 중앙은행의 해외 자산을 동결하기로 하자 허둥지둥 내려진 조치다. 세계 4위권인 6200억달러에 이르는 외환보유액을 쓸 수 없게 되면서, 루블화 가치를 지키기 위한 수단이 금리 하나로 줄어들게 됐다.

엘비라 나비울리나 CBR 총재는 지난해 11월 러시아의 인플레이션을 두고 "재앙"이라고 경고했다. 러시아의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CPI)는 1년 전보다 8.73% 올랐다. 6년 만에 최고치였다. 지난해 러시아의 경제 성장률(전망치)인 3%대를 한참 웃돈다. 가뜩이나 인플레 때문에 경제 체력에 비해 높은 금리를 감당하고 있었는데,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살인적인 고금리를 감당하게 됐다. 인플레이션과 경제 제재는 러시아 국민들의 생활을 실질적으로 망치고 있다. 미국 투자은행 제이피(JP)모건은 올해 2분기 러시아의 경제 성장률을 -35%로 전망했다.

비슷한 장면은 터키에서도 연출되고 있다. 레제프 타입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취임한 지 4개월 된 나치 아그발 터키 중앙은행 총재를 지난해 3월 경질했다. 아그발 총재는 치솟는 물가 상승률을 잡기 위해 기준 금리를 10.25%에서 19%로 끌어올린 인물이다. 아그발 총재의 임기는 4년이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중앙은행 총재들을 최근 2년 동안 네명을 갈아치웠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금리가 높으면 서민들이 고통받는다고 주장해 왔다. 지금의 터키는 어떠한가. 터키 통계연구소에 따르면 지난달 이 나라의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대비 54.4% 올랐다. 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고 리라화 가치는 1년 사이 50% 가까이 폭락했다. 자고 나면 오르는 물가 탓에 터키에서는 돈을 가지고 있는데도 '벼락 거지' 신세가 된다. 에르도안 대통령 말처럼 금리가 낮아져 터키 서민들이 살만해졌다고 할 수 있을까.

터키와 러시아의 사례는 정치가 경제를 지배한 결과다. 정치인들이 정치 논리를 들이대 억지로 경제 문제를 풀어보겠다고 나섰다. 고통을 받는 건 평범한 국민들이다. 이처럼 정치가 경제를 망치려 들 때 누군가는 목소리를 내야 한다. 러시아나 터키의 중앙은행 총재들은 그런 역할을 했다. 권력자의 횡포로 결국은 막아내지 못하더라도 꾸준히 언급해 그 절박함을 알려야 한다. 통화 정책의 최고 책임자이자 전문가인 중앙은행 총재의 역할은 금리를 올리거나 내리는 결정에 국한되지 않는다.

지난 2월 임기 마지막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의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는 대선 후보 토론에서 제기된 한국의 기축 통화 가능성을 묻자 답을 피했다. 이 총재는 "경제적 의미를 설명하기엔 이미 정치 이슈화됐다"고 말했다. 대선이 얼마 남지 않아 언급하지 않겠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었다. "기축통화국이 될 수 있는 만큼, 국가채무 비율이 100%까지 올라도 괜찮다"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발언에도 이 총재는 "아무리 경제적 측면에서 설명해도 의도치 않은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피했다.

이 총재는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를 통해 평소 "시장과의 소통"을 무척 강조한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말을 아꼈다. 대선 정국에서 신경이 쓰였을 것이다. '정치색이 없다'는 것이 그의 특징인 것을 감안하더라도, 통화 정책 최고 책임자이자 전문가로서 할 수 있는 말은 있었을 것이다.

이날 이 총재의 태도는 이 총재가 지난해 11월 했던 그 자신의 말로 반박할 수 있겠다. 그는 당시 '3월 대통령 선거가 있어 2월에는 추가 금리 인상이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에 대해 "기준금리는 금융 경제 상황을 보고 판단하는 것이지, 정치적 고려를 하는 것은 아니고 바람직하지도 않다"며 "정치 일정이나 총재 임기 등과 결부시킬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이 총재는 2월에는 기축통화국 질문을 피하며 그가 언급한 '정치 일정'과 '정치적 고려'를 아낌없이 선보였다.

9일 국민의 선택을 받는 대통령 당선인의 첫 임무는 오는 30일 임기가 끝나는 이주열 총재의 후임자를 지명하는 것이 될 가능성이 크다. 우리나라의 다음번 중앙은행 총재는 정치에 휘둘리지 않고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인물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