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중립은 더 이상 먼 미래의 논쟁이 아니며, 이미 무역의 기본 조건이 됐다. 유럽연합(EU)은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올해 본격 시행 단계에 진입했고, 글로벌 공급망 실사 의무도 강화하고 있다. 주요국은 환경 규제를 시장 진입의 전제 조건으로 설정하고 있다. 국내 수출기업, 특히 중소기업은 이러한 변화를 피할 수 없다.
중소기업 대표들과 현장 대화를 나누다 보면 흔히 듣는 말이 있다. "탄소중립, 필요성은 알겠는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것이 적지 않은 중소기업이 직면한 현실이다. 탄소 배출량 측정 시스템도 없고, 고효율·저탄소 설비로 전환할 초기 투자 여력도 부족하다. 전문 인력과 데이터 기반 관리 역량도 마찬가지다. 이런 중소기업의 한계는 개별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산업 경쟁력 약화의 근본적인 원인이 된다.
원인 해결을 위해 어떤 전략이 필요할까. 필자는 2024년 11월, 에너지밸리기술원이 주관한 탄소중립·에너지 효율화 정책 설명회에서 실마리를 찾았다. 광주 지역 중소기업과 에너지 기술 공급자, 관련 정책 기관이 다수 참여했던 해당 설명회에서는 중소기업의 실질적인 부담을 낮추는 설비보조금 지원, 에너지 효율화 컨설팅 사업 등이 소개됐다.
이때 함께 참여한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과의 협업은 중소기업 탄소중립 전환의 핵심 과제인 금융과 전문 인력 부족을 해결하는 좋은 사례였다. 저금리 정책자금 지원, 전문 컨설팅이 결합한 유기적인 지원 구조는 현장 실행력과 정책 효율성을 동시에 높이는 역할을 했다.
광주에 소재한 한 중소기업은 탄소중립 설비투자 지원사업과 연계된 정책자금을 활용해 생산성 저하 없이 전력 소비량을 획기적으로 줄이며 제품 경쟁력 향상과 해외 인증 대응 역량 확보라는 성과를 달성했다. 이 사례는 개별 기업을 넘어 지역 산업 생태계 전체에 긍정적인 혁신의 신호로 볼 수 있다.
지속 가능한 혁신을 위해서는 탄소중립 전환 지원이 설비투자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산학협력 포럼 등을 통해 국내 에너지 분야 전문가와 기업, 정책 기관이 주기적으로 한자리에 모이는 활동이 필요하다. 차세대 태양전지 모듈, 수전해 전지 기술 등 탄소중립 전환과 관련된 신산업 분야 기술정보를 공유하고, 중소기업에 도입할 수 있는 지원 정책 방향을 논의해야 한다. 일련의 활동은 지역 산업 생태계를 활성화하고, 나아가 탄소중립 전환 역량 강화에 직접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탄소중립 전환은 단순한 선언만으로 달성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중소기업이 현장에서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실행력과 생태계 구축이다. 신기술 도입을 위한 정책 지원이 현장에서 '실행 가능한 동력'으로 작동하고, 산학 중심 지역 생태계 내에서 탄소중립 전환에 성공한 중소기업이 배출되는 선순환 체계가 필요하다.
앞으로 '탄소 장벽'은 더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EU에 이어 미국은 청정경쟁법(CCA)을 논의하고 있다. 영국과 캐나다도 탄소국경조정제도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주요 수출국이 환경 기준을 강화하고 있다. 이제 중소기업의 탄소중립 전환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 전략이다. 국가 경쟁력의 한 축을 담당하는 중소기업의 탄소중립 전환 체계 구축에 전념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