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투자활성화를 위한 'SAFE(Simple Agreement for Future Equity, 조건부지분인수계약)'가 도입된 지 5년이 지나고 있지만, 일반인들은 물론 스타트업 생태계에서도 인식이 부족하고 낯선 느낌이다.

제도에 대한 홍보가 부족한 상태에서 조금씩 사례가 늘어나고 있기는 하지만 초기 스타트업 투자에서 활용되는 비율은 극히 낮다. 관련 법제 또한 미비한 상황이다.

민법상 계약으로 자유롭게 체결할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상법상 엄격한 규율이 적용되는 '유가증권'이어서 상법상의 주식 발행 절차를 지켜야 하는 것인지 등 해석을 놓고 견해가 대립하고 있다. 또한 명확한 회계처리 규정이 없다.

2020년 8월에 우리나라에 도입된 SAFE는 적정 기업가치를 산정하기 어려운 초기 스타트업 투자에 활용되고 투자방식으로, 전 세계 최대 엑셀러레이터인 실리콘밸리의 와이 콤비네이터(Y Comblnator)가 2013년 처음 선보인 이후 초기 스타트업 투자의 정석이 되었다.

일반적으로 투자를 하게 되면, 기업가치를 결정하고 투자금의 규모에 따라 주식을 즉시 받는다. 그러나 SAFE는 투자할 때 회사의 가치를 정하지 않고 유보했다가 추후 회사가 성장한 후 기관투자자로부터 후속 투자를 받을 때 기업가치를 결정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투자 방식은 초기 스타트업과 같이 객관적인 회사의 가치를 판단하기 어렵거나, 기업가치에 대해 이견이 큰 상황에서 유용하다. 어느 정도 합리적인 밸류에이션이 가능할 때까지 기업가치 평가를 늦추자는 것이다. 투자는 지금 하지만 나중에 벤처캐피털이 투자를 하게 되면 그 때 밸류에이션을 기준으로 일정 할인율을 적용하여 기업가치를 결정하는 방식이다.

SAFE 방식으로 투자를 하게 되면, 다음 투자에서 정해질 회사의 가치에 '캡(Cap, 상한선)'을 씌우거나 '할인율(Discount Rate)'을 적용하여 기업가치가 결정된다.

예를 들어, SAFE 투자자가 10억 원을 투자하면서 캡을 100억 원으로 하거나, 할인율을 20%로 하기로 약정하는 것이다. 이 경우 다음 투자에서 200억 원으로 투자를 받았다면, SAFE 투자자는 100억 원의 기업가치가 적용되어 10%의 지분을 갖게 되거나, 20% 할인된 160억 원의 밸류에이션에서 10억 원인 6.2%의 주식을 받게 되는 것이다.

캡과 할인율을 함께 적용하기도 한다. 그렇게 되면 두 조건 중 유리한 쪽을 선택하면 된다. 결국 10% 지분을 취득하게 된다.

그런데 만약 50억 원의 기업가치로 투자유치를 했다면, 캡 100억 원은 의미가 없게 되고 할인율 20%를 적용하여, 40억 원의 기업가치로 10억 원이 인정되어 25% 지분을 갖게 되는 것이다.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SAFE는 기업가치 산정을 위해 밀고 당기기를 할 필요가 없어서 투자를 받을 때까지 시간을 절약할 수 있으며, 만기가 없고 이자도 없으며 부채로 처리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유리할 수 있다.

투자자는 스타트업이 후속 투자를 받지 못하면 상환을 요청하거나 주식으로 전환하지 못하기 때문에 리스크가 크지만, 기업가치를 산정하기 위한 정량적 평가 과정을 생략하는 만큼 계약서도 심플하고 소요되는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점에서 SAFE를 선호하고 있다. 미래 전망이 좋은 스타트업에 신속하게 투자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으로 꼽히고 있다.

실리콘밸리에서 SAFE 이전에는 'CN(Convertible note, 조건부지분전환계약)'이 대표적인 투자방식이었다. CN은 전환사채(CB)와 비슷하다. CN 투자자는 약정 기한이 되면 이자를 포함하여 원금을 돌려받거나, 주식으로 전환을 할 수 있다. CN도 SAFE와 마찬가지로 캡과 할인율이 있다.

결국 SAFE나 CN은 후속 투자가 이루어지면 똑같은 결과를 얻게 되고, 투자유치가 불발되면 SAFE 투자자는 회수 가능성이 없지만, CN투자자는 이자와 원금을 돌려받을수 있다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이론적으론 원리금을 돌려받을 순 있지만, 대부분의 초기 스타트업이 후속 투자가 없는 상태에서 회사에 현금이 남아있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원금을 돌려받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래서 와이 컴비네이터는 기존에 실리콘밸리에서 사용하던 CN을 근간으로 연구를 통해 SAFE라는새로운 투자방식을 만들었다. 스타트업이 실패하더라도 창업자에게 부채를 떠안기는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것이다. 초기 스타트업이 아무리 유망해 보여도, 아직 객관적 가치를 판단되기 어려운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위험한 투자를 '안전'하게 해준다는 취지에서 'SAFE'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만들어졌다.

실리콘밸리가 고안한 안전한 투자란, 불확실성이 큰 상태에서 회사의 가치를 정하지 않고, 회사가 성장하여 규모가 있는 기관투자자로부터 투자를 유치할 때까지 평가를 유보한다는 것이다. 현재는 SAFE가 훨씬 보편화되었다.

우리나라에는 2020년 '벤처투자 촉진에 관한 법률'(이하 '벤처투자법')이 제정되면서 SAFE가 먼저 도입되었고, CN은 2023년 벤처투자법이 개정되면서 도입되었다. 도입 첫 해 11억 원에 불과하던 SAFE 투자금액은 2023년 말 기준 2103억 원으로 늘어났지만, 매년 10조 원 이상의 스타트업 투자규모를 감안하면 너무나 미미한 규모다.

SAFE는 스타트업과 벤처캐피털 간 정보 비대칭으로 인한 문제를 완화시켜 스타트업의 원활한 자금조달을 가능하게 할 뿐만 아니라, 투자자의 입장에서도 기업가치 분석에 드는 비용을 줄이고, 고평가로 인한 리스크를 낮출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혁신적인 투자 수단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SAFE 투자는 신주 발행에 대한 상법상 권리를 취득하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 간의 계약이다. 따라서 후속 투자와 연결되어 신주 발행을 해줘야 계약이 비로소 완결되는 것이다. 물론 후속 투자가 없다면 계약은 공중분해 된다. 투자를 했지만 지분 전환 전까지는 주주가 아니기 때문에 당연히 의결권이나 배당을 받을 자격은 없다.

유망한 스타트업에 안전하게 투자할 수 있게 디자인 된 SAFE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애매모호한 관련 법제나 회계처리 기준 등이 하루빨리 명확하게 정리되어야 한다. 침체에 빠진 한국경제의 희망인 혁신 기업들을 위한 획기적이고 다양한 지원제도가 더 많이 만들어지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