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

지난 8월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연구센터가 20~60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인터넷 포털의 뉴스 댓글공간 정화 정책들에 대한 인식조사’에 따르면 ‘댓글 실명제’ 도입 추진에 대한 찬성 의견이 높았다. 응답자들은 ‘댓글 실명제를 도입해 모든 법적·윤리적 책임을 질 의향이 있는 사람만 댓글 작성하게 해야 한다’(62.4%)를 ‘댓글 실명제는 기본권 침해, 소통 기능 위축 가능성 등 부작용이 예상되므로 도입에 매우 신중해야 한다’(37.6%)보다 더 많이 골랐다. 또 포털 뉴스 댓글 공간에 대한 현재 상태에 대한 인식을 조사한 결과, ‘원래 취지와 달리 비방·욕설 등을 배설하는 공간이 돼버렸다’(57.4%) 쪽이 ‘역기능·부작용은 일부 있지만 소통공간·공론장으로 기능하고 있다’(42.6%)보다 더 많은 선택을 받았다.

댓글 실명제 내지 인터넷 실명제는 온라인 공간에서 글이나 댓글 작성 시 게시자의 실명을 공개하게 하는 제도로 2007년 도입됐다.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44조의5 제1항 및 같은법 시행령 제29조 등은 일일 평균 이용자수가 10만명이 넘는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는 게시판 이용자의 본인확인 방법 및 절차를 마련하도록 규정하고 있었다. 제도 도입 이후 5년이 지난 2012년 8월23일, 헌법재판소는 인터넷게시판 본인확인제도, 일명 ‘인터넷 실명제’를 위헌이라고 판단했다(헌재 2012. 8. 23. 2010헌마47등). 2007년 인터넷실명제가 전면 도입된 지 5년 만의 일이었다.

헌재는 해당 조항들이 ‘명예훼손과 모욕적 표현 감소에 효과가 없고, 표현의 자유만 제한할 뿐’이라며 위헌으로 판단했다. 또 “건전한 인터넷 문화 조성은 인터넷 이용자의 표현의 자유나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제약하지 않는 다른 수단에 의해서도 충분히 달성할 수 있다”라고 밝혔다. 헌재는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중요한 헌법적 가치이므로, 표현의 자유 제한을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그 제한으로 인해 달성하려는 공익의 효과가 명백해야 한다”라며 “해당 조항들은 국내 인터넷 이용자들의 해외 사이트로의 도피 등 문제를 발생시키고, 본인확인제 이후에 명예훼손, 모욕, 비방의 정보의 게시가 표현의 자유의 사전 제한을 정당화할 정도로 의미 있게 감소했다는 증거도 없다”라고 덧붙였다.

헌재는 “익명이나 가명으로 이루어지는 표현은 외부의 명시적·묵시적 압력에 굴복하지 않고도 자신의 생각과 사상을 자유롭게 표출하고 전파해 국가권력이나 사회의 다수의견에 대한 비판을 가능하게 한다”라며 “이를 통해 정치적·사회적 약자의 의사 역시 국가의 정책결정에 반영될 가능성을 열어 준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비록 인터넷 공간에서의 익명표현이 부작용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갖는 헌법적 가치에 비춰 강하게 보호되어야 한다”고 결정이유를 밝혔다.

또 헌재는 2021. 1. 28. 인터넷언론사가 선거운동기간 중 당해 홈페이지의 게시판을 운영하는 경우 실명을 확인받도록 하는 기술적 조치의무를 부과한 조항에 대해서도 위헌결정을 했다(헌재 2021. 1. 28. 선고 2018헌마456 등 결정).

그러나 2022년 헌재는 공공기관 등이 설치·운영하는 게시판에 대해 본인확인조치를 의무화하고 있는 정보통신망법 제45조의 5 제1항 제1호에 대해서는 다른 판단을 했다(헌재 2022. 12. 22. 선고 2019헌마654 결정). 헌재는 공공기관 등 설치·운영하는 게시판에 언어폭력, 명예훼손, 불법정보 등이 포함된 정보가 게시될 경우 그 게시판에 대한 신뢰성이 저하되고 결국에는 게시판 이용자가 피해를 입을 수 있으며, 공공기관 등의 정상적인 업무 수행에 차질이 빚어질 수도 있다. 따라서 공공기관 등이 설치·운영하는 게시판의 경우 본인확인조치를 통해 책임성과 건전성을 사전에 확보해 해당 게시판에 대한 공공성과 신뢰성을 유지할 필요성이 크며, 그 이용 조건으로 본인확인을 요구하는 것이 과도하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봤다. 심판대상조항은 청구인의 익명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결론적으로 헌재는 민간기관, 공직선거법상 인터넷언론사의 실명제에 대해서는 위헌결정을 하고 공공기관 등의 인터넷 실명제에 대해서는 합헌결정을 했다. 공적인 성격이 강한 공공기관 등과 유사한 공직선거법 상 실명제에 대해서는 위헌 결정을 한 것은 논리적 일관성이 부족하다. 특히 지난 두 차례의 대선에서 국정원의 댓글조작사건, 민주당의 댓글조작 사건(이른바 ‘드루킹 사건’) 등이 발생하면서 익명표현의 위험성이 널리 인정되었고 당선을 위해 무슨 일도 마다하지 않는 공직선거의 특성상 실명제의 필요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었다고 본다.

그럼 헌재의 최초의 위헌결정이 있었던 2012년과 비교해 현재의 인터넷 댓글 상황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연애인, 유명 스포츠인들이 악플로 극단적 선택을 하거나 자살방조 사이트가 등장하는 등 익명 표현의 부작용이 확대되고 있다. 사회적 약자의 의사 표현을 보장하기 위해 허용된 익명표현의 자유가 오히려 또 다른 약자들에 대한 공격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 인터넷의 자정작용은 실패하였으며, 따라서 인터넷 댓글에 대한 제재 수단이 필요한 것이 아니냐는 논의도 이뤄지고 있다

원칙적으로 우리 헌법상 표현의 자유에는 익명표현의 자유가 포함된다는 것이 다수 헌법학자의 의견이다. 이는 표현의 자유가 완전히 구현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의사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러한 자유로운 의사표현은 익명이 보장되는 경우에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선 조사에서와 같이 온라인 댓글이 공론장이 아닌 비방 내지 욕설 배설 공간으로 되어 가고 있어 표현에 대한 윤리적, 법적 책임을 확보하는 것이 더 필요한 상황이라는 점이 공감대를 얻고 있다면, 익명표현의 자유에 대한 일정한 제한이 불가피하다고 할 것이다. 댓글 실명제를 법적으로 의무화하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온라인 플랫폼의 자율규제의 강화 나아가 온라인 플랫폼에 대한 불법 콘텐츠 차단 의무 부과 등의 조치를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기술법정책센터 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