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의 다정으로 보통의 마음을 보듬는 우리 시대 소통의 아이콘 나태주 시인. 76살의 노시인은 풀꽃문학관, SNS, 강연, 시집 등 다양한 방식으로 청년들과 접속한다./사진=나태주 제공

공주에 갔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도시에 기차를 타고 갔다. 풀꽃문학관에 있는 나태주 시인을 만나기 위해서다. 종이책이 고전하는 시대, 몰락한 귀족처럼 시인의 설 자리조차 좁아지는 시대에, 나태주라는 이름이 지닌 ‘번식력’이 놀랍고 희귀해서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너도 그렇다’

2012년 광화문 교보 빌딩에 걸린 시 ‘풀꽃’은 그가 교장 하던 시절에 아이들을 보며 쓴 시다. 풀꽃이 거름이 되어, 청년들이 모여 사는 SNS 들판에 몇 년간 내내 나태주의 시꽃이 무성하게 피어났다. 40권이 넘는 창작 시집을 냈으나 무명이었던 그는, 일흔이 넘어 내는 책마다 베스트셀러를 만드는 국민 시인이 됐다.

76살의 노인은 어떻게 MZ세대가 열광하는 소통의 아이콘이 됐을까?

나태주는 소통과 공감이 대단한 게 아니라고 했다. ‘두렵냐? 나도 두렵다’고 먼저 고백하는 일, 그럼에도 ‘꽃을 보듯 너를 본다’고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마라’고, 울고 싶은 군중을 ‘너’라고 애틋하게 불러주는 일이라고.

풀꽃문학관은 기차역에서 택시로 한참을 들어간 공주 구도심 산 밑에 있었다. 시골 간이역처럼 작고 정다운 얼굴이었다. 호랑나비가 가는 비를 피해 들꽃 사이를 날아다녔고 처마 밑 부삽 위엔 빗방울이 고여 동심원을 만들었다. 마당엔 아무 꽃이나 와서 핀다고 했다.

쇠똥구리가 굴려 온 공처럼, 둥근 얼굴로 그가 미소 지으며 들어왔다. 억지 부리지 않고 착실하게 길 따라 잘 굴러온 것 같은 온유한 인상이었다. 매번 떨어지는 바위를 지고 벼랑을 오르는 시시포스처럼, 울분으로 가팔라진 내 얼굴과 비교되었다.

"시는 남을 위해 써요. 모자도 남을 위해 쓰죠."

나태주는 ‘유명한 시인이 아니라 유용한 시인이 되고 싶다’고 했다. 시인은 서비스맨, 희극배우라고. 책 팔아 번 돈은 다 남 주고, 자신은 8천만 원짜리 집에 산다.

-요즘엔 모두가 유명해지길 바랍니다.

“늙은이도 젊은이도 사람을 기다려요. 오래 기다리지 못해 유명세를 찾아 나서죠. 젊은이는 유명세를 찾아 나서도 괜찮아요. 하지만 늙은이는 안돼. 노인은 있던 자리도 내려놓고 양보하고 비워줘야 해. 그걸 못하면 노추고 노욕이에요. 늙을수록 실수를 만회할 기회도 사라져요.”

-선생은 70대에 이르러 유명세를 누리고 있지 않습니까?

“그건 내 힘이 아니라 독자의 힘이죠. 자력이 아니라 타력이었어요. 천명은 하늘에서 수직으로 주어진 명이고, 인기는 자기 노력으로 들어온 인간의 세운이죠. 수직과 수평이 만나야 베스트셀러가 나옵니다.

저는 무명 시인이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광화문 교보 빌딩에 걸린 내 시 구절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너도 그렇다’가 사람들 마음을 움직인 거예요. 그 5~6년 사이에 세상의 흐름도 바뀌었어요. 집단에서 개인 담론으로. 그전에는 출판사에 책을 내달라고 해도 안 내줬어요.”

첫 시집은 서울 출판사에서 내고 싶었으나 머리 둘 곳이 없어, 자비로 700부를 발간했다고 했다. 제작비 16만 원, 쌀 열 가마니값은 아버지가 농협에서 빌려줘서 할부로 갚았다. 기차로 운송된 첫 책은 어머니가 사주셨다. 책값은 700원. 애처로운 시절이었다.

지금 그의 책은 나오는 것마다 베스트셀러다. BTS 제이홉이 추천했던 ‘꽃을 보듯 너를 본다’는 중국, 대만, 인도네시아 등으로 70만 부가 넘게 팔렸고, 최근 출간된 시집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마라’도 순항 중이다. 계절마다 ‘나태주’의 이름을 달고 나오는 책들이 차고 넘치는데도 청년들은 왜 질리지도 않고 그의 언어에 빠져드는 걸까?

-어떻게 늘 젊은 기세를 유지하세요?

“저는 30대 젊은 에디터의 말을 잘 들어요. 시키는 대로 다 해요. 거부를 안 하죠(웃음). 제 책은 떫고 서툰 것 같은 젊은 여성과 노인이 만나서 함께 만든 거예요. 노인이 만든 책은 멋은 있을지 몰라도 안 팔려요. 나는 편집자를 존중해요. 우리 집사람은 내 마음속의 쓰레기통을 모르지만, 에디터는 알잖아요. 그래서 에디터가 남 같지 않아요.”

나태주의 시는 품이 넓고 그늘이 시원해, 잦은 좌절에 식은땀을 흘리는 젊은이들이 쉬기에 좋다.

-어떤 글이 널리 읽히는 걸까요?

“핵심은 감정이에요. 마크 로스코의 그림을 보면 놀랍잖아요. 감정을 직면하면 그림에 시가 있고, 시에 그림이 있어요. 바탕은 음악이지만, 표현은 이미지로 나오니까. 윤동주도 김소월도 폼 잡지 않고 감정을 썼어요. 반면 백석은 이국정서가 강했고, 박목월은 너무 높이 올라가서 읽히지 않았죠.”

-항상 대중의 눈높이를 생각하십니까?

“그럼요. 너무 높이 올라가도 너무 깊이 내려가도 안 돼요. 접근할 수 있는 만큼만 표현해요. 그 눈높이를 가장 잘 맞춘 사람이 윤동주, 김소월입니다. 잘난 척 거룩한 척하면 큰일나요. 다 도망가 버려. 허허.

그래서 내 시는 시인들이 높이 평가하지 않아요. “저런 것도 시냐?” 대놓고 말하고 싶을 거예요. ‘저 촌놈은 초등학교 교사만 오래 했고, 이론적인 공부도 덜 됐고, 본성이 철이 덜 들었어’하는 거지. 그런 거 일절 따지지 않아요. 나는 불한당이거든. 불한당은 땀을 안 흘리는 사람이라는 뜻이에요. 독한 놈이지. 하하.”

불한당 나태주가 크게 웃음을 터뜨리는 모습을, 나는 땀 흘리며 바라보았다.

나태주의 시는 품이 넓고 그늘이 시원해, 잦은 좌절에 식은땀을 흘리는 젊은이들이 쉬기에 좋았다. 그는 가파르고 고매한 시어로 높은 건축물을 짓지 않고, 보통의 청년들이 SNS 저잣거리에서 쓰는 말을 곱게 접어 순하고 정직한 시로 내놓았다.

‘저런 것이 시가 되는 이유’는 못나고 모난 ‘저런 것들’에 대한 나태주의 애틋한 마음 때문이었다. 갑남을녀 중 하나인 나를 한없이 어여삐 보는 눈길 때문이다. 타인을 향한 가장 심오한 마음인 ‘친절’이 그의 생활에 소금 간처럼 배어있기 때문이다.

-누구를 위해 쓰십니까?

“남을 위해 써요. 시인은 희극배우예요. 속으로 울어도 겉으로는 웃어요. 속에 상처가 있고 자기가 형편없이 느껴져도 다른 것으로 풀죠. 독자들은 힘이 드니, 나한테 뭐든 달라고 해요. 유쾌함, 아름다움, 소망 같은 것들. 시인은 그런 게 없어도 만들어서 줘야 합니다.

가령 이 모자 같은 거야. (모자를 가리키며)나는 모자도 남을 위해 쓰거든요. 모자도 시도 남 좋으라고 쓰는 거죠. 하하. 나는 남 위해 쓰는 모자는 30~40개가 넘는데, 신발은 없어요. 검정 운동화 이거 한 켤레예요.”

-돈은 벌어서 다 어디다 쓰세요?

“남 주는 데 써요. 단체나 남한테 주죠. 그런데 갈수록 잘 나눠주는 것도 쉽지가 않아요. 사실 나는 궁해(웃음). 우리 집도 8천만 원이에요. 그래도 살 만하죠. 풀꽃문학관 아래 집필실도 하나 구했고요. 시인은 평생 서비스맨으로 살아야 해요.”

-본질은 서비스업이로군요!

“그렇지요. 감정의 서비스맨. 그렇게 노력하지 않고 독자가 떠나면 시를 멀리한다고 세상을 한탄해요. 아낌없이 줘야 합니다. 우리집 앞에는 일주일이 멀다 하고 과일 바구니, 떡 바구니가 와요. 독자들이 고마움을 그렇게 돌려줘요. 그 바람에 우리 집사람 김성예가 좋아하지. 허허.”

나태주와 배우 이종석은 함께 '모두가 네 탓'이라는 시집을 발간하기도 했다. 나태주가 시를, 이종석이 짧은 글을 썼다.

-연을 맺은 연예인들이 많지요?

“(미소 지으며)소녀시대 태연, 박보검, BTS 제이홉, 임영웅, 유재석, 이종석 같은 분들이 많이 읊어줬어요. 걸스데이 출신 배우 유라와는 시화집도 냈고, 이종석과도 책을 냈어요. 임영웅은 단독 리사이틀에서 ‘들길을 걸으며’를 낭송했죠. BTS의 노래 ‘작은 것들을 위한 시’로는 제가 노래산문집도 냈고요.”

-시인은 고독을 자처한 사람으로 알았는데, 떠들썩한 시장 한가운데 계십니다.

“내 시의 기본이 너와 나의 이야기라 그렇죠. 약한 건 마이너스가 아니에요. 나 혼자 자력갱생이 안 되니 네가 필요하다는 호소죠. 사회학적으로 자력과 타력! 제 시의 주제는 한결같았어요.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 잘할 테니, 너도 나한테 잘해라’.

담론이 거대했던 운동권 시대는 그런 얘길 시로 못했어요. 그런데 큰 이야기로 노벨상 고대하던 K 시인도 거대 담론이 깨지는 순간 공중분해 됐잖아요.”

상은 너무 욕심내면 안 된다고 했다.

“폭탄 만든 사람이 미안해서 주는 상이 노벨상이잖아요. 안달복달할 일이 뭐가 있어요. 밥 딜런은 공연 중에 노벨상 수상 소식이 화면에 뜨니까 ‘내려라! 지금은 노래할 시간’이라고 노여워했어요. 귄터 그라스도 치과에서 피 흘리다 전화 받고 ‘어어’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죠. 명예, 돈, 사람은 기다리면 오지 않아요.”

-그럼 언제 옵니까? 돈, 명예, 사람은.

“어느 날 갑자기 오죠. 안 오는 건 내 몫이 아니에요.”

시인은 돈과 권력을 가까이 가면 안 된다고 했다. 그 자신, 값비싼 물건은 보기만 해도 불편하다고.

가난한 작가들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그가 자비로 시작한 문학상(풀꽃문학상, 해외풀꽃시인상, 공주문학상, 신석초문학상)이 이미 여럿이다. 근근이 살림 꾸리느라 앓는 소리 하는 지방의 문학 단체, 공주 풀꽃문학관도 그의 수중에서 밑천이 나갔다. 인터뷰 와중에도 빗길을 뚫고 찾아온 지인이 기어이 책을 상자째 들고 그와 내가 있는 제민천 앞 찻집으로 찾아왔다.

그의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을 나태주는 공들여 소개했다.

찻집을 나와 다시 산 아래 풀꽃문학관에 오르기 위해 다리를 건너갔다. 검은 우산에 불룩한 배낭, 닳은 운동화를 신은 키 작은 노인이 사뿐사뿐 앞장서 걸었다. 여기저기 나태주의 시와 그림이 골목길 담벼락마다 가득했다. 늙은 공주는 풀꽃 시인 나태주의 도시로 젊어졌다. 개천을 내려다보며 그가 말했다.

“나는 청둥오리 발밑에서 물고기 잡으러 다니며 컸어요. 지금도 저 오리들이 나는 너무 재밌어. 사람이 지나가니 긴장한 오리들이 꼼짝도 하지 않잖아. 여전히 신기해요. 물속의 물고기가 흰 구름 사이로 지나가도 왜 흰 구름은 부서지지 않는지. 세상은 이렇게 아름다운데, 사람은 왜 이리 안타까운지. 만나지 못해 아파하고 만나서 미워하는지.”

매무새가 정겹고 단아한 풀꽃문학관.

-선생 안에서 아이다움과 어른다움은 어떻게 조화를 이룹니까?

“나는 늙은 아이예요. 시를 쓰려고 늙은 아이가 됐어요. 그런데 아이 늙은이는 곤란해요. 젊은 꼰대는 매우 위험해. 지금 70~80대 꼰대는 30~40대부터 꼰대였어요. 정치 뉴스에 빠진 노인들을 보세요. 편향이 갈수록 심해져서 반 실성한 상태라고.

좋은 본은 김수환 추기경이 보여줬어요. 그분은 석굴암의 대불을 보면 가슴이 뜨거워진다고 했죠. 솔직했고, 두려움을 그대로 나타냈어요. 그랬기에 명동성당에 전투경찰이 치고 들어올 때 “나를 밟고 가라”고 할 수 있었어요.”

-솔직함이 두려움을 이기는 ‘선방’인지요?

“영화 ‘명량’을 보면 이순신 장군이 그러잖아요. “두렵냐? 나도 두렵다. 이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만 있다면…” 누군가, 그 말을 해줄 때 신비가 일어나요. ‘두렵냐? 나도 두렵다.’ ‘힘들지요? 나도 힘들어요.’ 나한테는 그게 시예요. 이 힘듦을 너와 내가 조금만 더 편안하게 바꿀 수만 있다면.”

시를 쓸 때는 쓱 가볍게 쓴다고 했다. 오히려 대중 앞에서 말해야 할 때 신중하게 탐색한다.

-불특정 다수를 향해 말을 한다는 건 에너지가 많이 드는 일인데요. 대중 강연이 버겁지 않은지요?

“강연할 때는 말하는 나와 생각하는 내가 분리해서 머리가 막 돌아가요. 80명 정도 청중이 한눈에 잡혀서 좋아요. 10명은 너무 사적인 사이가 돼서 두렵고, 150명 정도는 너무 멀어서 애매해요. 30~40명은 돼야 서로 좀 꿈지럭거릴 수 있어. 환하게 보이면서 딴짓도 좀 해도 되는… 그런 강연에서 저는 에너지를 많이 받아요.”

나태주의 수수한 유머 감각이 빛을 발했던 tvN '유퀴즈 온더 블럭'의 한 장면.

-말할 수 없는 것, 쓸 수 없는 것들은 무엇인가요?

“기계나 육식동물은 못 써요. 가로수, 가로등, 버스 정도는 쓰는데 지나친 물질문명은 쓰기 어려워요. 사자도 못 써요. 고양이, 염소, 닭, 비둘기는 쓸 수 있죠. 내 시에 하이에나가 딱 한 번 나와요. 서울 문인들 욕 좀 하려고 썼어요(웃음). 딸에게 ‘너는 서울 하이에나 되지 말아라’는 문장이 나오죠.”

-기초는 어떻게 닦았습니까?

“젊을 때는 박목월 선생에게 배웠어요. 1971년 신춘문예로 등단했을 때 ‘소곡풍’이라는 시를 목월 선생이 ‘대숲아래서’로 바꿔주셨죠. 서정주 선생의 시는 블랙홀 같은 서정의 매력이 있어요. 끈끈이주걱 같은 사람이었죠. 윤동주 선생은 나이 먹을수록 더 좋아져요. 젊은 사람이 어떻게 그 정도로 큰지, 무서울 정도예요.

‘내를 건너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김소월 선생은 애당초 넘을 수 없는 산이었어요. 언어의 리듬과 상생력을 보면, 한국말에 기적 같은 존재죠.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홀로 피어있네. 산에서 우는 작은 새여,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이것이 정말 사람의 말일까, 얼이 쏙 빠져요. 요즘 말로 ‘약 빨고’ 쓴 미친 사람인 거죠. 하하.”

숨기는 것도 없고 부끄러운 것도 없는 어른의 말은 앞뒤의 어긋남이 없어 편안하고 향기로웠다. 동석한 내내 곁들여진 다과처럼 단 웃음이 배급됐다.

-나이 들면 저도 선생님처럼 남을 좀 웃길 수 있을까요?

“개그맨 같죠? 하하. 그런데 나이 들어서 웃기는 게 아니라 은혜를 받아야 웃길 수 있어요. 한 번쯤 죽었다 살아나야 해. 송해 선생이 그랬잖아요. ‘땡을 맞아봐야 딩동댕의 가치를 안다’고. 마이너 없는 메이저 없어요. 고통 없는 웃음이 어디 있어요.

그래서 살아날 보장이 있다면 젊어서 한 번쯤 죽을병에 걸려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62살 때 나는 쓸개가 터져서 뱃속이 다 썩었어요. 10만 명 중의 한 명 정도 살아날 병이었는데, 명의를 만나 살아났어요. 그후에 ‘너와 함께 라면 인생도 여행이다’라는 시집에 이런 말을 썼어요.

‘버림받은 마음일 때에만 들리는 소리가 있다/힘들고 지치고 고달픈 날들/너도 부디 나와 함께/인생은 ‘고행’이 아니라/여행이라고 생각해주면 좋겠구나’”

고행을 여행으로 바꾸는 작은 정성에 독자들은 감동하고 지지를 보낸다고 했다.

서점가 베스트셀러 코너를 휩쓸며 독자들을 사로잡는 나태주의 시집과 산문집.

-최근에 나온 시집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마라’도 제목 그 자체의 울림이 크더군요.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고 하죠. 제목은 세운과 관계가 있어요. 사람들은 하고 싶은 대로 해요. 오고 싶은 대로 오죠. 방금도 풀꽃문학관에 누가 수박 갖다 놓았다고 전화가 왔어요.

시는 풀죽은 사람을 일으켜요. 정호승, 안도현, 김용택, 도종환… 시대와 소통했던 시인들이 다 그랬어요. 그런데 시가 끝까지 살아남으려면 결국 시인의 삶의 뿌리가 튼튼해야 해요. 그래야 당장 시들해도 나중에 새 꽃을 피울 수 있어요.”

돈 벌어서 문화 사업하는 곳에 나눠주는 이유도 시인들로 인해 우리 사회의 뿌리가 튼튼해지길 바라서라고 했다. 자녀에게 돈 물려주면 서로 분쟁만 일어나니, 번 돈은 사회에 다 뿌리고 가겠다고.

인스타그램, 풀꽃 문학관, 강연 등 시대에 최적화된 브랜딩을 부러워하던 사람들, “시 같지도 않은 시 써서 책만 많이 판다”고 그를 불편해하는 사람들에게도 그는 웃으며 시로 응대한다.

‘예쁘지 않은 걸 예쁘게 보는 게 사랑’이라고. 그 자신, 연애편지 쓰듯 독자의 마음을 얻기 위해 애를 쓴다고.

-마음을 얻는 게 가장 힘든 일이지만, 너무 저자세는 비굴하다는 느낌도 듭니다만.

“불특정 다수를 향한 사랑의 마음. 그게 보편성이죠. 가히 미친 마음이에요. 윤동주는 그 보편성이 뛰어났기에 지금도 읽혀요. 보편성이 있으면 적의 마음도 얻어요. 윤동주, 이순신은 일본 사람도 존경하잖아요. 김광섭의 시 ‘성북동 비둘기’나 ‘저녁에’도 그래요.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얼마나 보편적이고 아름다워요?

그래서 처음부터 시인들이 수위를 어디까지 정하는가는 매우 중요해요. ‘질투는 나의 힘’을 쓴 기형도는 섬뜩하고 섬세하지만, 보편적으로 스며들진 못했어요. 그의 꺾임을 아는 고급 독자는 있지만요. 그러면 나는 뭐냐? 저는 결혼식 주례를 해도 저자세를 가르쳐요. ‘상대가 나에게 과분한 사람이라는 것만 기억하라’는 거죠.

언젠가 일본 절에서 유리 안에 있는 반가사유상을 본 적이 있어요. 어두운 큰 공간에 홀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모습이 왠지 우울해 보이더라고. 그런데 자세를 낮춰서 불상을 밑에서 올려다보니 웃고 있었어요. 그때 충격이 ‘윌든’ 한 권 읽은 것보다 생생했어요.

세상 사람들은 고자세로 다 굽어보려고 해요. 우울하죠. 아래에서 보면 아름답지 않은 것, 귀하지 않은 것이 없어요. 쓰러지고 비천한 것도 무릎 꿇고 보면 다 예뻐.”

나태주에게 풀꽃 시인이라는 타이틀을 안겨 준 '풀꽃'의 시비. 읽을 때마다 새롭다.

-지금은 뭐가 특별히 더 예쁜가요?

“지금, 너, 꽃… 이런 단어들. 나는 어떤 시를 쓰겠다는 계획도 없고, 인생 계획도 없어요. 그때그때 발견해요. 꿀벌의 꿀은 본래 꽃의 것이잖아요. 시도 사람 마음 밭에 있는 것을 줍는 거예요. 본래 주인은 세상이죠. 길에서 버려진 쓰레기에서 보석을 줍듯, 누구에게나 있는 시어를 캐서 독자에게 돌려줘요.

아이 엄마가 ‘나도 꽃필 날 있을까’하면 그 마음이 안쓰러워 쓰고, 노인이 ‘정년퇴직하니 넥타이 맬 일도 없어’하면 또 그 마음이 철렁해서 써요. 나는 거대 담론이 이끌던 시대의 시인 중에 박노해 한 사람이 살아남았다고 생각해요.”

-박노해 한 사람…

“박노해를 인정하는 이유는 ‘나라가 망하는 길’이라는 시를 읽고서예요.

‘군인이 나약해지면 나라가 망한다/지성이 교만해지면 나라가 망한다/청년이 고개 숙이면 나라가 망한다/정치가 부패해지면 나라가 망한다/언론이 가짜가 되면 나라가 망한다’

중심에 생명이 있잖아요. 악순환은 안 돼요. 소월 선생은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그냥 갈까 그래도 다시 또 한 번’이라고 노래했어요. ‘하니’와 ‘다시’는 높이 떠서 고립된 말이 아니라, 낮은 채로 부추기는 말이죠. 부지런히 너와 나를 이어주는 말이에요. 상생이고 선순환이죠.”

-어떤 시가 좋은 시인가요?

“모르는 사람이 느껴야 좋은 시죠. 대학교수, 고급 독자만 아는 시를 저는 좋아하지 않아요. 노래도 성악가들끼리만 부르면 뭐 해요. 송대관이 태진아보다 잘 불러도 태진아의 대중 호소력을 못 당해요. 톨스토이가 성장하는 인간에게 3가지 목표를 제시했어요. 1소통 2 몰입 3 죽음을 기억하는 것.

소통에는 1 자기 소통 2 너와의 소통 3 세상과의 소통이 있어요. 저는 세상과의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시의 한 구절이 기억되고 남으면 그게 민요죠. 그래서 나는 유명한 시인보다 유용한 시인이 되고 싶었어요.”

무용함이 시인의 효용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여러 번 그의 말에 허를 찔렸다. 그는 ‘짤방’이 뜨는 시대에 ‘시의 가성비’를 얘기했고(소설도 더 짧아져야 한다고 했다), 시의 시대는 이미 와 있으니, 시인은 허튼 데 긁지 말고 독자들의 우울과 불안과 실패의 독을 풀어주는 ‘시침’을 놓아야 한다고 했다.

바야흐로 소통에 목숨 거는 시대. ‘시여, 침을 뱉어라’를 지나 ‘시여, 침을 놓아라’의 시대가 된 것이다.

-배설이 아니라 길을 뚫어야 한다?

“나만 시원하면 됩니까? 서정은 쏟는 것이고 서사는 펼치는 거죠. 소통하려면 정성껏 삼키고 쏟은 것에서 더 많이 솎아내고 비워내야 해요. 아는 척, 잘난 척, 성스러운 척은 소통하는 데 다 소음이에요. 소음이 너무 많으면 악음이 죽어요. 독자들이 ‘시멍’을 때리려면, 빈 곳을 많이 줘야 합니다. 넓은 논밭을 보여주듯 시집은 두껍고 표지는 산뜻해야죠.”

커브를 돌듯 이어령 선생 이야기를 꺼냈다.

“이어령 선생의 유고 시집 ‘헌팅턴비치에 가면 네가 있을까’를 보면, 그 서문이 명문이에요. 눈 감기 며칠 전 편집자에게 불러줬다지요. 나는 그분이 평생 이야기 장사꾼에 새것만 좋아하는 분인 줄 오해했는데, 그 시를 읽고 감동했어요.

‘네가 간 길을 내가 간다/그곳은 아마도 너도 나도 모르는 영혼의 길일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것이지 우리 것이 아니다.’

먼저 여읜 딸하고 아버지하고 책에서 하나가 됐어요. 그래서 올봄에 돌아가신 후, 한참 마음이 힘들었어요.”

풀꽃 문학관의 서가 하나를 이어령 선생 책으로 사서 다 채워놨다고 했다.

초록으로 둘러싸인 풀꽃문학관.

-가장 유명한 팬은 누구인가요? 가장 무명한 팬은 누구인가요?

“그건 모르겠고 가장 가까운 팬은 내 아내 김성예입니다.”

-부부가 어떻게 팬이 됩니까?

“우리는 서로 쓰는 은어가 많아요. 우리끼리 있을 때 농담도 막말도 잘해요. 저는 젊은 시절부터 아내와 산책하면서 진한 농담을 자주 했어요. 아내의 마음도 몸도 태도도 기회를 줘야 발견이 돼요. 서로 개간 하고 풍성한 말의 곡식을 심어야 부부간에도 새로워지죠.”

도움을 주는 소중한 팬은 28살 중학교 교사인 김예원이라고 했다. “그 친구가 많은 도움을 줘요. 독자지만 거꾸로 나한테 영감을 줘. 가르쳤던 제자들에게도 많이 배워요.”

-다시 초등학교 교사로 돌아간다면 무엇을 가르치고 싶은지요?

“나는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아요. 마음을 갖고 사는 건 힘든 거예요. 가난하고 무명한 시절에 서울의 메이저 출판사에서 시집들 다 ‘빠꾸’ 맞을 땐 저도 마음을 얼마나 다쳤는지 몰라요. 나는 나무로 태어나고 싶어요.

특별히 지금 아이들을 위해서 하는 건 강연이예요. 나는 강연하려고 글을 썼어요. 강연료가 적을 땐 돈 쓰면서 오가요. 중고등학교 아이들은 뇌 가소성이 높아요. 중요한 시기죠. 그래서 아이들 강연은 거절을 안 해요. 할아버지들 강연은 돈 많이 줘도 잘 안 가지. 하하.”

사람을 판단하지 않고 한없이 어여삐 보는 나태주의 눈.

-마지막으로 인생은 어떻게 살아야 좋겠습니까?

“달라이라마는 무욕이 아니라 탐욕만 안 부려도 좋다고 했어요. 세상이 번쩍거려 보여도 다 별거 없어요. 만족 못 하고 비교하면 너도나도 별수 없어요. 너무 잘하는 거 잘 되는 거 찾아 헤매지 마세요. 좋아하는 거 있으면, 그거 하세요. 보여주려는 마음이 앞서면 자존심 상하고 상처만 입어요. 좋아하는 거 하면, 하다가 그만둬도 상처 안 받아요. 자존감이 남습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 공주에 머물던 내내 가는 비가 내렸다. 풀꽃 문학관 들창 밖으로 코스모스가 한들거렸고 실내는 오래된 나무 냄새가 가득했다. 나태주가 한쪽에 놓인 풍금으로 연주하며 노래하기 시작했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올해도 과꽃이 피었습니다…’

풍금 소리는 파이프 오르간만큼 울창했고, 노인의 목청은 높고 청아했다.

인공 지능이 시를 쓰는 시대. 어떤 시인은 여전히 고급한 은유로 생의 비참과 범람을 노래하고, 어떤 시인은 슬픔의 홍수가 휩쓸고 지나간 그 우묵한 마음에 햇볕을 쬐고 바람을 쐰다. ‘너의 초록으로, 다시’ 일어서라고. 생은 순환하며 나아가고, 우리 모두 각자의 노래가 필요하다. 나태주가 그 보편의 다정으로 헤매는 보통의 마음들을 보듬어주어 고맙다.

‘아들아, 이후에도 애비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을 만나거든/함부로 대하지 않기를 부탁한다/딸아, 네가 나서서 애비의 글이나 인생을 말하지 않기를 바란다/나의 작품은 내가 숨이 있을 때도 나의 소유가 아니고 내가 지상에서 사라진 뒤에도 나의 것이 아니다…(중략)

너희들도 아름다운 지구에서의 날들/잘 지내다 돌아가기를 바란다/이담에 다시 만날지는 나도 잘 모르겠구나’-나태주 ‘유언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