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키운 8할은 친구였다”는 말은 청년 시절 나의 단골 멘트였다. 험난한 가정사 덕에 일찍 가슴에 바람구멍이 뚫린 나에게, 친구는 안전한 병풍이었고 신나는 유원지였다. 첫 등교, 첫 출근, 낯선 여행지에서조차 순진한 동류를 찾아내는 생존본능, 곧잘 위험을 무릅쓰고 도움을 거절하지 않는 결핍의 기질 덕에 생의 고비마다 지금까지 넘치도록 우정의 수혜자로 살았다.
그래서일까.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나 ‘슬기로운 의사생활’ 심지어 영화 ‘탑건;매버릭’을 볼 때도 내 눈에 잡히는 부러운 것은 죄다 훈훈하고 인심 좋은 친구들이었다.
서로의 목숨을 지켜내는 제주 해녀 삼춘들도, 바닷가 한집에 같이 살며 늙어가던 김혜자와 고두심도, “내가 부르면 달려오는 제일 만만한 친구”라던 엄정화와 이정은도, 그 벼락 치듯 정신없는 생사의 틈바구니에서도 신나게 수술하고 노래하던 ‘슬의생’의 5인방 의사 친구들도, 한때 경쟁자였다 둘도 없는 동반자가 된 발 킬머와 톰 크루즈도 한결같이 보여준다.
‘친구와 우정이 인생의 전부’라고. 결국 ‘다정한 인간이 살아남는다’고.
그렇게 ‘적자생존’은 결국 ‘선자생존’이었다는 다윈의 최종 팩트는, 고도로 불안한 인간 생태계에 친구와 우정의 가치를 극적으로 부활시켰다. 경영사상가 찰스 핸디 경조차 생애 마지막 인터뷰에서 여러 번 반복했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건 친구라고. 부디 정직한 친구에게 시간을 투자하고, 그에게 일찌감치 장례식 추도사를 부탁하라고.
코로나 후유증으로 외로움 경제가 폭발할 거라는 ‘고립의 시대’에, ‘그럴수록 우리에겐 친구가 필요하다’라는 책으로 고요한 반향을 일으키는 독일의 심리전문가 이름트라우트 타르를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함부르크 대학에서 음악과 신학을 공부한 이력답게, ‘그럴수록 우리에겐 친구가 필요하다’는 거의 모든 문장이 오페라의 노랫말처럼 리드미컬하다.
35년간 유럽인의 마음을 치유해온 타르 박사는 “코로나 팬데믹은 우정에도 큰 시련”이었지만, “우리는 친구의 도움으로 죽기 전까지 ‘자기됨’을 이뤄간다”고 강조했다.
-영국의 경영사상가인 찰스 핸디 경을 인터뷰하며 ‘인생의 대부분은 우정에 관한 것’이라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친구란 어떤 존재인가요?
“친구를 보면 우리가 어떤 사람을 내 인생의 무대에 초대했는지 알 수 있어요. 친구는 내가 직접 캐스팅한 인생극장의 공동 주연입니다. 내가 지금의 나인 것도 친구들 덕분이죠.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우정을 누리고 있지요. 우정 없이 사는 사람은 없어요. 우정은 가족과 친척, 사랑과 지인 그 중간쯤에 자리해요. 진정한 우정은 인간이 누린 성과 중 가장 위대합니다.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성취죠.”
-왜 친구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성취죠?
“인간은 평생 소속감을 나눌 수 있는 거울 같은 존재가 필요해요. 그게 친구예요. 부모는 먼저 세상을 떠납니다. 직장, 돈, 젊음, 성공도 언젠가는 의미를 잃어요. 화목한 가정도 소중하지만, 불확실성으로 낙차가 큰 인생의 고비마다 기적처럼 나타난 친구가 우리를 끌어줍니다.
나이가 들수록 친구의 중요성이 제대로 보여요. 남편이 죽었을 때 저를 구원해준 이도 친구들이었어요. 친구는 또 다른 자유, 더 활짝 열린 귀, 따뜻한 손길로 다가왔죠. 일례로 손자를 키우거나 고양이를 기르는 사람보다 친구가 많은 사람이 더 건강하고 행복하다고 해요. 작가 볼테르의 통찰이 탁월했어요. ‘우정을 빼고 나면 삶에 중요한 것은 별로 없다’고요.”
-우정은 어떻게 시작되나요?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서죠. 비슷하게 느끼고 소중한 경험을 나누며 떠오르는 대로 떠들 수 있는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사실, 그 자체가 주는 희열이 대단합니다. 그런데 그 문이 더 활짝 열리는 때가 있어요. “나 혼자서는 안 돼. 네 도움이 필요해!” 정직한 고백이 관계에 스파크를 일으키지요.”
도움을 청하면 상대의 애정을 잃을 것이라는 믿음은 오해라고 했다. 폐 끼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잘못된 전략이라고. 진정한 친구라면 상대를 배려 있는 인간으로 거듭나게 도와주어야 한다고.
-현대인은 신세 지기 싫어서 웬만한 일은 스마트폰으로 처리하는 소심한 사람들이죠. 부탁하면 관계에 부담이 되지 않을까요?
“모든 우정은 ‘상호 주고받기’로 유지됩니다. 어떻게 주고받을 것인가? 어떻게 나를 지키고 네 곁에 있어 줄 것인가? 그 과정에서 나도 몰랐던 그릇의 크기가 드러나죠. 물론 예의가 필요해요. 가령 친구가 의사라면 디스크가 문제일 때 도움을 청할 수 있어요. 그 정도의 부탁은 괜찮아요. 하지만 자동차 판매를 하는 친구에게 주말에 차를 무료로 빌려달라고 하는 것은 과하죠.
중요한 건 상호 간에 ‘네가 필요해’라는 신호가 오가는 겁니다. 신뢰를 보여주되 너무 많이 기대하지는 마세요. 자신에게도 상대에게도 너무 큰 기대는 금물입니다. 친구는 가족이나 상사가 아닙니다. 서로 돕는 존재지만 또 자유로운 존재죠.”
-인생 시기마다 친구의 영향력이 달라지는 듯 해요. 특히 청소년기의 우정은 매혹적이고도 아슬아슬해서 평생 가는 것 같습니다. 저만 해도 친구 손을 잡고 부모의 세계에서 나의 세계로, 무리의 세계로 껑충껑충 나아갔지요.
“10대 시절엔 궁금한 게 너무 많고 이해 못할 일이 너무 많아요. 한 인간이 되어가는 기쁨이 크고 확인받고 싶은 욕망이 강하죠. “너도 그래?” “응 나도 그래.” 친구들과 집 밖을 싸돌아다니지 않는다면 우리는 넘치는 감정과 감각을 소화하기 힘들 겁니다. 이해하기 힘든 게 많은 나이기에 마음을 나눌 친구가 꼭 필요한 거죠.
그렇게 교환 일기를 쓰고 엉터리 밴드를 결성하던 시절이 지나가면 우리를 이어주는 것들도 달라져요. 화려하고 북적였던 시간,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뒤의 상실과 공허의 감정이 또 서로를 이어줍니다. “다 지나갔다”는 우정의 속삭임이 쓸쓸함을 달래주죠.”
책에는 괴테와 실러의 편지를 예로 들며 과거의 사람들이 얼마나 정성을 다해 우정을 가꾸었는지를 이야기한다. 머나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감수했고, 감정을 잘 다스렸고 특히 대화에 많은 시간과 공을 할애했다고.
-우정이란 끊임없이 이어지는 대화라는 표현이 인상적이었어요. 생각해보면 자주 끊어지는 대화만큼 진땀 나는 관계도 없지요.
“니체가 결혼이 긴 대화라고 한 것처럼 우정도 아주 오랜 대화입니다. 진정한 우정이란 대화를 멈추고 싶지 않은 마음과 같아요. 때로는 들어주고 때로는 독려하고 상대에게 건너갈 다리를 짓는 거죠. 그래서 만났을 때 “잘 지내?”라는 닫힌 말보다 “요즘 어때? 무슨 생각해?”같은 호기심 어린 질문을 하는 게 좋아요.
물론 침묵도 중요합니다. 압박감을 느끼지 않고 조용히 침묵할 수 있느냐로 친구인지 아닌지를 가르기도 해요. “밥 먹으러 갈까? 커피 한 잔 마실래?” 정확한 순간에 던진 작은 한마디가 넘어진 친구를 일으켜 세우기도 합니다. 어쩌면 우정에 필요한 기술은 두 가지예요. 현명하게 말하고 제때 입을 다무는 것.”
-사랑과는 어떻게 다른가요?
“저는 우정이 실천하기 수월하고 힘도 덜 드는 사랑의 변형이라고 생각합니다. 낭만적 사랑은 우정보다 복잡해요. 사랑은 에로틱한 노력과 곡예가 필요하니까요. 부모 자식 간의 사랑에도 가르침과 독립이라는 명확한 역할과 목표가 있지요. 하지만 우정은 더 개방적입니다. 가까움과 먼 거리, 친밀함과 낯섦을 오가는 춤 같죠.”
-옥스퍼드 대학교 진화심리학자인 로빈 던바 교수는 친구를 5명 15명 50명 150명 단위로 연구했습니다. 연락하고 지내는 사이는 150명, 절친은 5명 정도의 수로 정리했지요. 우정의 심리학자인 당신이 보기에 가깝게 관계 맺는 친구는 몇 명 정도가 좋습니까?
“누가 저한테 와서 친구가 25명이라고 한다면 저는 고개를 갸웃할 겁니다. 하루는 24시간밖에 안 되고 우리의 사랑 용량도 한계가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우정의 범주에는 숫자가 포함되지 않아요. 친구는 셀 수도, 계산할 수도, 순위를 따질 수도 없어요.”
-우문이지만, 나이 들수록 사랑과 우정의 갈망 중 어느 것이 더 이롭습니까?
“우리는 너무 많이 틀리고 너무 자주 균형감각을 잃어요. 다행히 나이가 들수록 잃을 것이 없어지면서 용기가 생기죠. 그렇게 얻은 평정심과 용기는 새로운 사랑보다 새로운 우정을 위해 쓸 때 더 품위 있는 결말을 맺는답니다.
실제 65세 이상의 여성의 절반가량이 혼자 살아요. 한 명의 파트너에게 의존하기보다 최대한 우정의 그물망을 넓게 짜는 것이 유리해요.”
-남녀 사이의 우정은 지속 가능합니까?
“물론이죠. 설문조사 결과 이성 친구와 우정을 나누고 있다고 응답한 비율이 50%에 이릅니다. 경험상 이성 친구는 친해질수록 애인 후보 리스트에서 멀어지죠. 저 또한 니콜라스와 오십년지기 친구로 잘 지내고 있어요. 우리는 결혼한 적이 있지만, 사랑보다 우정이 더 행복한 선택이라는 걸 깨닫고 헤어졌어요.
지금 우리의 우정은 더할 나위 없이 좋아요. 어떤 강요도 없이 익숙한 온기를 간직한 채 산책을 하죠. ‘그만 돌아가자’고 말하기 전까지 하염없이 걸으며 대화를 나눠요. 욕정의 폭풍우도 밀당의 고됨도 없기에 참으로 편안하지요. 우정에 담긴 사랑의 비밀도 지켜줍니다. 함께 비를 맞는 것도 그 비밀 중 하나지요.”
-어떻게 전 남편과 50년 간 우정을 유지할 수 있지요? 인내와 자제의 결실인가요?
“우리는 서로에게 도움이 돼요. 그걸 인식하는 게 중요하죠. 그는 나를 똑똑하게 만들어주거나 적어도 어리석은 상태에 머물지 않게 도와줍니다. 안전한 상태에서 새로운 것을 경험할 수 있도록. 제가 많은 사람 앞에서 말을 잘하게 된 것도 니콜라스와의 토론 덕분이에요. 니콜라스 덕분에 청중이 많아도 당당하게 말할 수 있어요. 가볍게, 느긋하게, 뜨겁게.”
가볍게, 느긋하게, 뜨겁게 라는 단어가 마음에 다가와 박혔다. 어른의 우정이 일으키는 다정함의 뉘앙스란 저런 것이로구나.
-요즘엔 함께 일하다 친구가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비즈니스가 끝나도 그 우정이 지속될 수 있을까요?
“물론이죠. 공통의 관심사와 목표, 전망을 만들어가면 됩니다. 저는 친구와 쓴 글을 함께 읽으며 인생관을 나누었어요. 운동이나 음악 프로젝트를 함께 해도 좋습니다. 공통의 과제를 함께 풀어나가는 것을 ‘생성력’이라고 해요. 우정이 긴 시간 활력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죠. 우정도 진화하거나 쇠락합니다. 발전의 기세 안에 함께 발을 들여놓으면 좋지요.”
-나보다 모든 조건이 뛰어난 친구, 유명한 사람과도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있나요?
“조건보다 마음의 태도가 중요해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어요. ‘친구 사이엔 누구도 상대보다 더 낫지 않다’. 우정은 권력의 격차를 참지 못하는 법입니다.”
-지금의 당신이 되는데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친구는 누구인가요?
“인생의 챕터마다 우정의 풍경도 냄새도 다 달라요. 여행 친구, 육아 친구, 독서 친구… 각각의 친구는 내 안의 다른 현을 건드려 다른 반응을 만들어내죠. 친구가 바뀌면 우리의 생각과 행동도 바뀌어요. 그 반향으로 죽을 때까지 독특한 ‘자기됨’이 완성되죠.
문득 제 친구 가비가 생각나는군요. 여행을 가도 그녀는 높은 자리에서 계획을 세우고 나는 낮은 자리에서 청소하고 밥을 지었죠. 그녀가 지시를 내리면 나는 시키는 대로 했어요. 이런 미심쩍은 역할 분담으로 우린 헤어졌어요. 하지만 가비의 불규칙한 감정을 파악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면서 저는 민감한 언어와 공감 능력을 개발할 수 있었어요. 제가 철학과 심리치료에 전문가가 된 것도, 따져 보면 그녀의 변덕스러운 기분 덕분이었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친구를 통해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다고 믿는 것 같군요.
“우리를 변화시키는 것은 딱 두 가지예요. 사랑과 고통. 이 두 가지만이 우리를 다른 사람으로 만듭니다. 우정도 사랑의 한 형태예요. 친구는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될지 함께 결정할 사람입니다.
그래서 자기 안위만 생각하는 좁은 시야의 친구들 곁에 너무 오래 머물지 마세요. 더 나은 세상으로 함께 손잡고 나갈 모험심과 아량이 있는 친구를 찾아야 합니다.”
-친구와 금전이나 사업은 금물이라는 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돈은 우정을 망칠 수 있습니다. 우정은 신뢰와 아량을 먹고 사는데 큰돈은 이성과 명확한 규칙이 필요하거든요. 물론 친구를 도와야 하는 상황도 있습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친구와 동업하지 말라고 권하고 싶군요. 돈 때문에 우정에 금이 갈 수 있으니까요.”
-요즘엔 온라인 친구도 우정의 한 부분을 형성하고 있어요. 쉽게 맺어지고 단절되지만, 그럼에도 다양한 우정의 스펙트럼을 경험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만.
“현실 친구와 온라인 친구를 비교할 수는 없어요. 우리 눈앞에는 만질 수 있고 냄새 맡을 수 있고 목소리를 내는 상대가 있습니다. 온라인에선 탈 신체화가 일어나기 때문에 관계의 구속력에 영향을 미쳐요. 일종의 전시된 인격이라 절교의 충격도 크지 않습니다. 우정은 함께 시간을 헤쳐가는 겁니다. 구경만 하는 핍쇼(peep show)가 아니에요.”
-옛 친구와 새로 사귄 친구… 친구 사이에도 경중이 생길까요?
“모든 우정엔 나름의 시간과 서사, 변화와 움직임이 있지요. 역동적이고 가변적이고 다채로워요. 어떤 경우든 과거만 탐구하는 우정은 유익하지 않아요. 현재의 적극적 경험이 중요하죠. “너 아직 기억나?”라는 질문이 반복되면 권태에 이르고 자연스레 멀어집니다.”
-시간이 부족하고 인생조차 유한하다는 것을 깨달으면 우정도 선택과 집중이 필요할 듯 한데요. 안 만나도 될 친구를 어떻게 구별할까요?
“이 질문에는 간단히 답할 수 있는 원칙이 있습니다. 이 우정이 나를 강하게 만드는가? 약하게 만드는가? 나를 지원하는가? 나를 이용하는가? 친구는 한 사람의 삶을 더 수월하게 만들어주고 기쁨을 주어야 합니다. 이도 저도 아니라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세심하게 자문하세요. ‘그가 힘들 때 끝까지 나를 찾아와 줄 사람인가?’ ‘한밤중에 찾아가 초인종을 누르고 “문 열어, 나야!” 하면 벌떡 일어나 문을 열어 줄 사람인가?’ ‘말없이 앉아 불꽃 튀는 모닥불만 봐도 평화로운 사람인가?’ 불쑥 나타나 자랑과 하소연으로 나의 관심과 시간을 착취하고 내빼는 친구라면 멀리하세요.”
-최근 저는 안타깝지만 오래된 지인과 관계를 끝냈습니다. 우정이 저물어갈 때, 선을 넘는다는 것을 느낄 때,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좋습니까?
“우정의 종말은 항상 자신에게 상처로 돌아오죠. 그러니 친구와의 갈등을 너무 오래 묵히면 안 됩니다. 최선의 노력은 대화를 하는 거죠. 하지만 신뢰를 잃은 우정은 결국 무너지게 돼 있어요.
멀어진 관계가 꼭 회복되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화해란 고통을 긍정적으로 소화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더 성장하기 위해서예요. 그러니 너무 매달리지 마세요. “어쩔 수 없지”하고 넘겨야죠. 어느 한쪽이 일방적인 피해자도 가해자도 아니라는 사실만 인정하면 됩니다.”
-상처 입은 친구는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친구가 아플 때는 평소의 우정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아요. 시간을 내어 상대의 삶에 신중하게 머물러야 합니다. 들어주고 안아주고 나란히 앉아 음악을 듣고 이야기를 나누세요. “아무것도 하지 마. 머리 굴리지도 말고 걱정도 말고!” 제가 아플 때 찾아온 친구가 호통치며 음식을 차려줬던 일은 영원히 잊을 수 없어요.
우정도 공감처럼 배우고 훈련해야 깊어집니다. 어떤 의사도 다정의 힘을 처방해줄 수는 없어요. 어떤 약도 친구와 같은 효과를 낼 수 없습니다. 친구가 곁에 없었다면 저는 아마 정신병원에 들어갔을 거예요.”
-나이 들어서도 새 친구가 필요한가요? 영혼의 단짝 같은 ‘절친’을 또 만날 수 있을까요?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관계 맺고픈 욕망은 여전해요. 저는 요양원이나 양로원에서 처음 만난 할머니들이 절친이 되는 경우를 많이 봤어요. 제가 양로원에서 만난 세 할머니도 매일 오후 1층에 로비에서 만나 수다를 떨고 저녁이면 게임을 같이 해요. “함께하면 우리는 천하무적이야”라면서요. 한 명이 살짝 치매가 있지만, 깜빡할 때마다 누가 잘 까먹는지 내기를 하자며 웃어넘깁니다.”
-마지막으로 삶에서 우정의 잔물결이 계속 일어나려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요?
“한번은 속더라도 신뢰를 보여야 우정이 시작돼요. 핵심은 타인을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는 태도죠. 별것 아닌 말 같지만 실천하기는 힘들죠. 그 태도가 우정을 지탱하는 가장 큰 힘이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친구가 있기에 내가 수많은 고비를 넘겼다는 감사의 끈도 놓지 마세요.
친구와 함께 있기에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을 삽니다. “산책할까?” “우리 집에 와줄래?” 서로에게 도움을 청하고, 가벼운 도움이라도 자처하세요. 불안한 시대이기에 더욱 친구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모두 마음이 가난한 인간이에요. 그래도 우정에 투자할 시간이 있어서, 시간에 투자할 우정이 있어서 얼마나 기쁜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