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풍담'이라는 새로운 단편소설 장르를 만들어낸 덴마크 작가 요른 릴. 그린란드 시절.

여름이 오고 있다. 올여름엔 그린란드 북동부에 가서 북극 사냥꾼들과 개 썰매 좀 타고 달려볼까, 싶다. 그곳에는 코로나바이러스나 원숭이 두창 같은 건 없을 것이다. 눈 위에 대 자로 뻗어 마스크 없이 뻥 뚫린 눈과 코로 얼어붙은 공기와 흐린 하늘을 흠뻑 빨아들이면 기분이 끝내주겠지. 극야의 어둠 속에 동면 같은 평화를 누리다, 눈 뜨면 휘몰아치는 북극성과 마주치겠지.

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북극만큼 외롭고 웃기고 잡일 많고 소란스럽고 황당한 곳이 없다. 북극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요른 릴의 ‘북극 허풍담’을 읽어보라. 배꼽 잡다 뒷골이 서늘해지는 북극 시트콤 연작에 탄복할 것이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1 사냥꾼 얄이 죽었다. 경우가 없어도 너무 없는 죽음이었다. “이건 반칙이야.” 로이비크가 소리쳤다. " 네가 밥을 할 차례잖아. 일어나서 점심 준비를 해. 진정한 사냥꾼이라면 그래야 해.” 동료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 해야 할 일이 많았다. 로이비크는 툴툴대다 죽은 얄을 썰매에 태워 동료 사냥꾼의 오두막으로 가서 시끌벅적한 장례를 치른다.

사냥꾼들은 장례를 위해 십시일반 술을 모으고 관을 짜고, 얼어붙은 얄을 식탁 의자에 앉히고 파이프까지 물려 거나하게 건배를 한다. 그러나 주정뱅이 사내들이 관 뚜껑을 덮어 빙벽 아래로 밀어버린 것은 시신이 아닌 곯아떨어진 동료 사냥꾼. 심각한 실수를 깨달은 다음 날 아침, 바다에 떠오른 관에서 깨어난 동료는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말한다. “정말 즐거운 장례식이었어. 안 그래?”-’북극 허풍담1 즐거운 장례식’

‘북극 허풍담’ 속의 사냥꾼 친구들의 소동극에 대해 작가 요른 릴은 ‘거짓말일 수 있는 실화’라고 했다. 대한민국 영토 반 정도의 크기에 30명 정도가 흩어져 사는 동토의 파견 사냥꾼들은 대자연의 일부로서 본능에 충실한 괴짜 철학자들이다. 말을 하기 위해 며칠을 썰매를 달려 동료의 오두막을 찾고, 겨울잠에서 깨어난 곰과 맞서다 발가벗고 줄행랑을 치는가 하면, 뜨개질에 빠져 두문불출하고, 상상 속의 여인을 차지하기 위해 난동을 부린다.

총 10권의 중 4권이 나온 ‘북극 허풍담’ 시리즈를 읽고 나면, 인간과 자연에 대한 신랄한 관찰을 담은 이 북극 꽁트의 문학적 뿌리가 무엇인가 궁금해진다. 19살에 그린란드 북동부에 갔다가 북극의 매력에 푹 빠진 요른 릴은 그곳에서 16년을 보낸다. 사냥꾼들과의 경험담에 살을 붙인 그의 허풍 섞인 일기를 북극에 책 팔러 온 상인이 훔쳐다 출간하면서, 그는 일약 덴마크의 스타 작가가 된다.

하드보일드와는 거리가 멀지만 ‘북극 허풍담’에는 자연의 혹독함과 사냥 노동, 기지 생활에 대한 묘사가 매우 치밀하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의 황당한 해프닝과 감동, 철학적인 그물이 촘촘한 이 북극 활극의 창조자를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요른 릴은 파킨슨병으로 투병 중이었고, 인터뷰는 그의 아들이 아버지의 침대 머리맡에서 도와주었다.

파이프를 물고 사는 요른 릴. 탐험가이자 천혜의 이야기꾼.

-그린란드, 극지, 뉴펀들랜드, 빙하, 사냥꾼, 곰… 나는 이런 말만 들어도 가슴이 뛴다. 19세 시절, 북극에 정착한 이유는 무엇인가? 16년 동안 무엇을 했고 어떤 행복과 어떤 황당함을 누렸나?

“1951년에 Dr. Lauge Kock(라우지 콕 박사)의 그린란드 원정에 합류하기 위해 2년간 교육을 받았다. 북극을 처음 경험한 후, 나는 계속 그곳에 머물고 싶었다. 운이 좋게도 항해, 전신, 측량 분야에서 많은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어느 해에는, 북극광(오로라)을 연구하고 얼음을 측량하기 위해 개와 함께 빙하에서 단둘이 시간을 보냈다. 또 어떤 환상적인 해에는 외로울 때마다 캐나다에서 온 한 남자와 모스 부호를 사용해 체스를 두기도 했다.”

-’허풍담’이라는 장르는 어떻게 나왔나?

“‘허풍담’은 거짓말일 수 있는 실화다. 아니면 진실이 될 수 있는 거짓일 수도 있고.”

-안데르센의 후예라는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내가 보기엔 시베리아의 안톤 체호프와 안데르센의 피를 반반씩 물려받은 것 같은데.

“그런 환상적인 작가와 나를 비교하는 것이 사실 주제넘게 느껴진다. 나는 그저 안데르센(혹은 안톤 체호프)처럼 좋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 뿐이다.”

-이 책이 한국에 처음 나왔던 10년 전, 나는 완전히 흥분해서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장르 소설가 정유정에게 반드시 읽어보라고 열변을 토했다. 10년이 지난 지금, 다시 읽어봐도 피가 얼어붙을 만큼 심각하게 웃긴다. 책을 쓸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유머? 캐릭터? 환경?

“나는 어렸을 때부터 글을 써왔고, 극지방 사람들을 연구할 수 있는 코펜하겐 국립 박물관에서 여러 시간을 보냈다. 가장 큰 소원은 그린란드에 가는 것이었고, 마침내 그곳에 갈 수 있게 되었다. 그린란드에서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곳의 환경이 큰 역할을 했다. 좋은 이야기를 찾을 수 있는 천혜의 조건이 가득했으니까. 내겐 캐릭터, 환경, 유머 모두 똑같은 비중으로 중요하다.”

'북극 허풍담' 시리즈. 철학자, 낭만주의자, 전직 군인, 난봉꾼... 괴짜 사냥꾼과 극지의 동물들이 등장하는 기상천외한 북극 시트콤. 북유럽식 시크한 위트로 한번 잡으면 손을 놓을 수 없다.

-극 중 안톤을 상상하면서 요른 릴의 분신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가 글을 쓰는 과정이 너무 진지하고 웃기고 공감이 됐다. 영감은 넘치는데 연필이 없어서 못쓴다니… 이것도 당신이 겪은 일화인가?

“그렇다. 안톤은 나의 분신이다. 우리는 그를 통해 그린란드의 황폐한 동해안에 있는 모든 친구들을 알게 되고, 황당해 보이는 북극 시트콤에 참여할 수 있다.”

-소설 출판이 된 계기가 북극까지 책을 팔러 온 장사꾼이 당신의 원고 뭉치를 훔쳐서 책으로 냈다고 들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책에서 안톤의 꿈은 책을 출판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책을 출판해줄 덴마크 출신의 한 남자를 만나게 된다. 나에게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북극은 그런 의외성이 가득한 곳이다.”

-탐험가와 작가 중에 어떤 정체성이 더 강한가?

“나는 작가로 ‘불리는 것’을 더 좋아한다. 하지만 내 생각엔 작가가 되는 것은 탐험가가 되는 것과 유사하다.”

-북극의 사냥꾼들은 굉장히 외로워도 하고 낯을 가리기도 하며 부지런하기도 하고 게으르기도 하다. 그들은 왜 그곳에 있나? 그리고 정말 그토록 괴짜들인가?

“대부분 사냥꾼은 자유로운 삶을 위해 그린란드로 왔다. 그들은 절대 게으르지 않았다. 그들은 혹독한 기후와 외로움과 싸운다. 멀리 떨어져 있는 동료 사냥꾼들의 오두막을 방문하는 것과 세상 소식을 싣고 오는 보급선을 기다리는 것을 낙으로 산다. 겪어보니 자유로운 만큼 힘들고 위험한 삶이었다.”

-친구의 시신을 소금 쳐서 빙하에 보관했다가 떠내려가서 찾아다닌 이야기 ‘보존된 시체’는 정말 기상천외했다. 이야기의 탄생 배경이 있나?

“한센 중위와 시 짓기 결투를 벌이다 죽은 레우즈 이야기 말이군! 누군가가 죽어서 매장해야 할 때, 얼음이 두껍고 지면이 얼었다면 겪는 문제였다. 부패해서 부풀어 오른 시체에 소금을 치고 잠시 빙하에 넣어두는 것은 북극의 특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데 봄이 와서 빙하가 떠내려간다면 어쩔 수 없는…”

탐험가 요른 릴.

-탐험가로 여러 나라를 다닌다는 것은 어떤 상태로 있는 것인가? 보헤미안도 아니고 원주민도 아닌 그 형태감이 궁금하다.

“내 생활방식은 남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글을 쓰는 동안에는 항상 혼자 있고 싶어 했다. 그런 나를 이해해준 가족들에게 감사할 뿐이다.”

-극지와 적도 중 어느 곳이 더 예술가들이 살기에 적합한가? 밤이 계속되거나 낮이 계속되면 이야기의 본능이 작동하나?

“극지는 덴마크의 일부이기 때문에 나에게 자연스러운 환경이었다. 만약 내가 지구 반대편에 있다고 하더라도 그런대로 잘 지냈을 것 같다. 정리하자면 극지든 적도든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공부하고 영감을 얻을 만한 흥미로운 것들을 발견할 수 있는 한!”

-곰, 바다표범, 여우, 까마귀, 벼룩, 닭, 개… 북극에서 만난 생명체 중 어떤 동물에게 호의를 갖고 있나?

“모든 동물은 그린란드에서 중요했다. 음식, 추운 기후에서의 모피… 그래서 어느 한 동물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굳이 꼽는다면 개다. 왜냐하면 우리를 운반해줄 뿐만 아니라 멋진 동반자가 되기 때문이다.”

-사이버 공간에서 연결의 노예처럼 사는 현대인들은 자발적 고립, 개성과 지혜가 충만한 북극 사냥꾼 공동체가 매우 부럽다. 다시 청년기로 돌아가도 그린란드에서 시간을 보낼 생각인가?

“그렇고 말고. 하지만 60년대가 훨씬 좋았다. 그 당시 그린란드는 알려지지 않은 모험지였다. 지금 북극은 너무 많이 변했다.”

"누군가는 피하는 길을 어떤 사람들은 굳이 걸으려 들지." 요른 릴은 다시 19세로 돌아가도 그린란드로 모험을 떠날 것이라고 한다.

-지금은 북극에서 얼마나 멀리 있나?

“그린란드에서 살았던 시간 후에 나는 운이 좋게도 또 다른 나라들을 방문했고, 그곳의 원주민들과 섞여 살았다. 예를 들어 뉴기니의 파푸아인들에게는 북극과는 또다른 느긋한 지혜를 배웠다. 지금은 가족과 함께하기 위해 말레이시아에 영구 기착했다. 여기서 남은 시간 동안 ‘해동’하는 것도 꽤 괜찮다고 생각한다.”

-작가로서 도달하고 싶은 어떤 경지가 있었나?

“나는 존 스타인벡, 조셉 콘래드 그 외의 여러 사람에게 감사하고 있다. 글을 쓰고 책을 즐기는 사람에게 항상 배운다. 그것만이 오직 내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목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지금 내 건강은 그리 좋지 않다.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다는 것이 나를 정말 고통스럽게 한다. 대신, 오디오북을 듣는다. 당신의 시력이 나빠지기 시작할 때를 대비한 아주 훌륭한 옵션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위로가 될지 모르겠지만 나는 당신이 ‘노인과 바다’를 쓴 헤밍웨이보다 용감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당신에게 모험은 무엇이었나?

“지금 나에게 모험은 살아 있는 동안의 길고 신났던 삶의 모든 기억을 떠올리는 것이다.”